•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1 예와 수신으로 정의된 몸
  • 01. 예가 지배하는 사회, 조선
  • 남녀칠세부동석과 예비례담론
김언순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世不同席)”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함께 앉지 않는다는 이 말을 요즘은 우스개 소리로 하지만, 조선 여성의 몸을 지배하던 대표적인 유교 관념이다. 『예기(禮記)』 내칙(內則)편에 실린 이 말은 원래 ‘일곱 살이 되면 남녀가 자리를 함께 하지 않으며, 함께 먹지 않는다(七年 男女不同席 不共食).’는 문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남녀의 분리는 그 이후 남녀의 일상을 지배하였다.

조선 여성은 집 안에 머물고 바깥출입을 자제하였으며, 외간 남자와의 직접 접촉을 피하였다. 그리고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옷을 발끝까지 입었으며, 외출 시엔 너울이나 처네 등으로 얼굴과 몸을 가렸다. 집 안으로 활동반경이 제한된 여성의 역할은 자연히 집 안에서 하는 일로 규정되었다. 일곱 살에 시작된 남녀의 분리는 남녀의 직접 접촉 금지, 거주·활동 공간의 분리, 역할분담으로 이어져, 남녀의 삶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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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 행렬에 너울을 쓰고 참가한 상궁의 모습(1851)
가례 행렬에 너울을 쓰고 참가한 상궁의 모습(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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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네 쓴 여인(1805), 신윤복(1758∼?)
처네 쓴 여인(1805), 신윤복(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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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신체적 특성에 따른 유교적 관념이 어떻게 조선 여성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남녀칠세부동석이란 관념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조선 여성의 삶에 작동하게 된 원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실제 조선 여성들의 몸은 어떻게 존재하였을까? 여기에 대한 답은 조선이 예(禮)가 지배하던 사회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예는 조선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서, 정치의 원리였고, 일상의 규칙이었으며, 도덕적 수행의 도구였다.175) 김언순, 「조선시대 여훈서에 나타난 여성의 정체성 형성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p.10. 조선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한 규범들은 모두 예로 정의되었다. 이러한 예의 실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의무였다.

예가 사회적으로 강제력을 발휘하는 힘은 바로 예(禮)와 비례(非禮)의 이분법에서 나온다. 『예기』에서 인간이 금수(禽獸)와 구별되는 것은 예를 알기 때문이라고176) 『禮記』 「曲禮上」, “今人而無禮 雖能言 不亦禽獸之心乎 夫惟禽獸無禮 故父子聚麀 是故聖人作 爲禮以敎人 使人以有禮 知自別於禽獸.” 하였듯이, 유교 사회에서 예는 ‘인간다 움’의 기본 전제였다.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도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며,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며,177) 『論語』 「顔淵」,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예가 모든 행위의 판단 기준임을 분명히 하였다. 예와 비례가 바로 인간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을 구별 짓는 결정 기준이었던 것이다. 예는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길이었으며, 반대로 비례는 인간답지 못한 행위로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178) 김언순, 앞의 글, p.15.

예비례 담론은 조선 여성이 유교적 여성관을 수용하게 되는 결정적인 기제로 작용하였다. 여훈서에서 제시하는 이상적 여성은 부행(婦行)을179) 부행은 부덕, 부언, 부용, 부공을 말한다(『女誡』 「婦行第四」, “女有四行 一曰婦德 二曰婦言 三曰婦容 四曰婦功”). 충실히 수행하고, 남편과 시부모에게 순종하며, 절개를 지키고,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며, 부지런하고 검소한 여성이다. 후한(後漢)의 반소(班昭, 48∼117)는 이러한 덕목의 실천을 ‘부인의 예(婦禮)’라고 정의하였다. 예로 규정된 유교적 가치에 충실한 여성을 덕녀, 또는 예를 아는 여성, 예교적 여성이라 한다. 반면에 유교적 여성관에 배치되는 여성은 비례적 여성이며, 악녀가 된다.

예교적 여성과 비례적 여성, 덕녀와 악녀의 유형화는 유교적 여성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합법화시키는 기능을 하였다. 조선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한, 예로 규정된 유교적 여성 규범은 피할 수 없는 도덕적 강제력을 발휘하였다. 도덕적 강제력은 타율적 실천뿐만 아니라 자발적 실천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은 수신이라는 내면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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