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1 예와 수신으로 정의된 몸
  • 02. 여성 수신을 위한 기본 관점
  • 여화론(女禍論)
김언순

음양론과 내외 관념을 통해 여성과 남성은 질적으로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존재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천지가 만나야 만물이 통 하고,”202) 『周易』 「泰卦」, “天地交而萬物通也.” “천지가 서로 만나지 못하면 만물은 생기지 못한다.”고203) 『周易』 「否卦」, “天地不交而萬物不通也.” 본 유교의 세계관은 비록 남녀가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지만, 상호 작용하면서 현실 세계를 이끌고 가는 주체로 보았다. 즉, 남녀유별은 남녀의 독자적인 영역을 인정하고 상호 소통을 통해 세상을 이끌어가는 원리를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원론적으로는 상호 협조 속에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얘기되지만, 실제로 남녀의 관계는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차별적이고 수직적인 관계로 이해되었다. 음양론의 관점에서 남녀유별의 원리는 남녀가 대등한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불균형을 더욱 강화하고 고착시킨 것이 여화론이다.

여화론은 여성이 화의 근원이고, 사회 혼란은 여성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유교의 부정적 여성관이다. 전한(前漢)의 유향(劉向, 기원전 77∼6)은 악녀의 사례를 모아 『열녀전(列女傳)』 「얼폐전(孼嬖傳)」에 소개함으로써 부정적 여성관을 정립하였는데, 이 때 『시경』과 『서경』에 수록된 부정적 여성담론을 인용해 여화론을 완성하였다. 『열녀전』에서 형성된 여화론은 『안씨가훈(顔氏家訓)』, 『소학(小學)』과 여훈서를 통해 유교적 여성관으로 확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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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추(顏之推, 531∼602)의 『안씨가훈(顔氏家訓)』
안지추(顏之推, 531∼602)의 『안씨가훈(顔氏家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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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화론의 근거로 자주 언급되는 내용은 다음의 두 이야기이다.

①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 것이니,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204) 『書經』 「周書」 牧誓,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② 지혜로운 지아비는 성(城, 나라)을 이루고, 지혜로운 부인은 성을 기울게 한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부인[哲婦]이 올빼미가 되며, 솔개가 되도다.

   부인이 말을 많이 함이여, 난(亂)의 계단이로다.

   어지러움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부인으로부터 생기느니라.

   교훈이 못되며 가르칠 말이 못되는 것은 이 부인과 내시의 말이니라.205) 『詩經』 「大雅」 瞻卬, “哲夫成城 哲婦傾城 懿厥哲婦 爲梟爲鴟 婦有長舌 維厲之階 亂匪降自天 生自婦人 匪敎匪誨 時維婦寺”(성백효 역주, 전통문화연구회, 1993, p.344).

「얼폐전」에 등장하는 악녀들에 대한 평가에 이 내용을 인용함으로써 부정적 여성상과 여화론을 연결지었다. ①은 『서경』 「주서(周書)」 목서(牧誓)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을 정벌하기 전에 군사들을 고무시키기 위해 한 말이다. 무왕은 당시 은나라를 정벌해야 하는 이유로 주왕이 아름다운 왕비 달기(妲己)에게 빠져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서 암탉은 달기를 의미한다.

②는 『시경』 「대아」 첨앙편에 실린 시로서,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성[哲婦]은 주나라 마지막 왕인 유왕(幽王)의 왕후인 포사(褒姒)를 가리킨다. 이 두 이야기는 은과 주의 멸망이 미모의 달기와 포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관점에 근거하고 있으며, 여화론의 기본 인식을 잘 보여준다.

여성이 화의 근원이 되는 이유는 여성이 남성의 영역인 정치에 간여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정치 참여는 남녀의 역할과 세계를 명확하게 구별하는 유교의 세계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이며,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것이다.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 망한다.’는 비유는, 새벽에 울어 시각을 알려주는 것은 수탉인데, 암탉이 새벽에 운다는 것은 수탉의 역할을 침해한 것으로서, 수탉 중심의 질서를 깨트리는 불온하고 위험한 행위라는 인식을 깔고 있다. 「얼폐전」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가문과 왕위 계승을 위한 권력 다툼에 개입해 집안과 나라를 파멸로 이끌어 불온시 된 것이다.

또한, 유향은 여성이 정치와 집안 경영에 간여하게 되는 계기를 지혜와 말,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보았다. 「얼폐전」은 여성의 지혜가 사악하고, 여성의 아름다움이 음란하다는 도식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담론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의 지혜(지식교육), 아름다움, 성적 매력을 불온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화론은 여성의 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내외관과 결합한 것이다.

그러나 유향은 『열녀전』의 다른 부분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를 내조 차원에서 긍정하였다. 문왕의 조부(祖父)인 “태왕은 비록 현명하고 훌륭하였으나 늘 태강과 더불어 상의하지 않은 적이 없고[周室三母]”, 위(衛)나라 정강(定姜)은 남편인 정공(定公)에게 정치적 조언을 하였으며, 식견이 뛰어나 위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였다[衛姑定姜].

또한, 어머니로서 정치적 조언을 하는 예도 많았는데, 목백(穆伯)의 아내인 경강(敬姜)은 재상이 된 아들 문백(文伯)에게 치국(治國)의 요체를 베짜는 일에 비유해 설명하였으며, 자신은 베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근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다[魯季敬姜]. 즉, 유향은 여성의 정치 참여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 것이 아니다. 정치 참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참여의 형태가 남성을 돕는 수준인지, 아니면 주도하는지가 관건이었던 것이다.

또한, 여성의 지혜와 아름다움을 여성의 사적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남편, 자식, 아버지)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덕으로 간주하였 다. 이처럼 여성의 정치 참여와 지혜를 내조에 국한시켜 긍정한 반면, 내조하는 여성의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따라서 여화론은 여성의 재능을 내조에 국한시키고, 여성의 성적 매력을 통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여화론이 여성의 수신과 관련해 시사하는 것은 내외 관념에 따라 남성의 영역(정치와 지식)에 침범하는 것을 금지한 것과 여성을 불온한 욕망의 유발자로 간주한 점이다. 수신이 욕망의 극복을 주요 과제로 삼는다고 할 때, 가정과 국가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여성의 성과 몸은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남성은 수신의 주체로서 욕망을 조절하고 성인의 경지로 나갈 것이 기대되었지만, 여성의 몸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으며, 남성의 욕망을 자극하지 않도록 자제할 것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자신의 몸을 적극적인 수신의 주체로 삼기보다 남성의 수신을 방해하지 않도록 남성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집안에 거주하며 수신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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