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1 예와 수신으로 정의된 몸
  • 02. 여성 수신을 위한 기본 관점
  • 여성 성인의 특징
김언순

맹자의 성인론이 지향하는 보편성은 유교의 여성관에 의해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남녀유별의 원리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 및 세계를 달리하였으며, 여성을 남성에게 속한 존재, 순종하는 존재로 규정하였다. 남성이 욕망을 극복하는 수신의 주체로 설정된 반면, 여화론에 의해 욕망의 유발자로 정의된 여성은 화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과 성을 부정하게 된다. 여성의 활동 공간을 집안으로 제한한 것은 내외 관념에 따른 결과이지만, 남성의 욕망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의 몸을 감추고 은폐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순종하는 삶을 요구받는 여성이 수신의 주체로서 자립할 수 있을까? 또한, 화를 불러일으키는 불온한 존재인 여성이 온전한 수신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수신의 주체로서 남성과 여성의 몸이 다르게 규정되고, 그 결과 수신의 내용과 방법이 다른데, 여성과 남성이 도달하게 되는 성인의 경지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유교가 말하는 성인은 어떤 존재일까? 맹자가 언급한 성인은 요·순·우·탕·문·무·주공이다. 이들은 주로 태평성대를 이룩한 왕들로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해낸 업적으로 성인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유교의 성인 개념은 변화하였는데, 점차 내면의 도덕성을 강조해 존천리 거인욕을 실천한 내면의 도덕적 완성자를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다.

반면에 요순과 대비되어 여성 성인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태임(太任)과 태사(太姒)이다. 태임은 무왕(武王)의 아내이자, 문왕(文王)의 어머니로서 태교로 유명하다. 문왕을 임신하였을 때 반듯하고 정성스런 몸가짐과 마음가짐으로 태교를 해 문왕이 성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태사는 문왕의 비로서 수많은 후궁이 있음에도 전혀 투기를 하지 않아 문왕이 많은 후손을 얻게 하였으며, 평화롭게 왕실을 이끌어 문왕의 왕업을 돕는 등 내조를 잘해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이와 같이 태임과 태사는 문왕의 훌륭한 어머니와 아내로서 성인이 된 것이다.

여기서 태임과 태사가 성인으로 평가된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교적 여성상을 충실히 구현한 여성이 성인으로 평가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성이 실천해야 할 여러 부덕 가운데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활동이 강조된 것은 남성을 돕는 역할, 즉 내조가 성인 평가의 주된 척도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그들의 아들과 남편의 성공 역시 평가의 주요 기준이 되었다. 아무리 어머니와 아내로서 내조를 잘 하였다 하더라도 문왕이 성인이 되지 않았다면, 과연 태임과 태 사가 성인으로 평가되었을까? 이것은 여성 성인의 판단 여부가 전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여성을 평생 아버지, 남편과 자식을 좇는 존재로 규정한 유교의 여성관에 근거한 것이다. 최고의 경지인 성인조차 남성에게 속한 존재로 규정한 것은, 여성의 불완전성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으로서,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명제가 여성에게는 남성과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206) 김언순, 앞의 글, 2009, pp.70∼73. 남녀 성인 세계의 질적 차이에 대한 논의 참조.

결국 여성에게 요구되는 성인상은 여성 자신의 완성보다는 가부장제도 유지라는 사회적 필요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 수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소학』에 반영되어 조선 사회에서 유교적 여성관을 형성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207) 김언순, 앞의 글, 2005, pp.127∼128 ; 강명관, 『열녀의 탄생』, 돌베개, 2009, pp.91∼118. 『소학』은 조선 여훈서의 핵심 텍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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