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Ⅱ. 유순한 몸, 저항하는 몸-1 예와 수신으로 정의된 몸
  • 04. 조선의 예교적 여성
  • 여중군자(女中君子)
김언순

사대부들은 유교의 가치와 규범을 담은 교화서를 통해 유교적 사회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동몽서』와 『가훈서』에서는 모든 사람이 요·순과 같은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맹자의 언설이 애용되었으며, 성인은 공부의 목표로 권장되었다. 특히, 사대부들은 죽는 순간에도 자손들에게 성인의 도를 실천하도록 당부하곤 하였다. 그런데 여성 교화에서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면, 여성에게도 예외 없이 성인을 권장해야 마땅하지만, 사대부들이 작성한 여훈서에서는 성인이란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여훈서를 작성하고 경계시키는 이유는 시가와 친정 가문의 명예와 관련이 된다. 즉, 여성 교육(수신)의 필요성을 가문의 성공에서 찾았다. 그리고 유교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덕목을 여성의 예라는 이름으로 요구하였다.

사대부는 여성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지 않았으며 기대하지도 않았다.233) 예외적으로 녹문 임성주(1711∼1788)는 동생인 윤지당을 태임과 태사에 견주었다(이영춘, 『임윤지당』, 혜안, 1998, pp.16∼17 ; 『운호집』 권6, 「중씨녹문선생행장」) 심지어 요·순과 대비되어 여성 성인으로 추앙되던 태임과 태사는 왕비의 덕을 이야기할 때 상투적으로 언급될 뿐이었다.234) 김언순, 앞의 글, 2009, pp.74∼77. 결국 여성의 수신은 성인이 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유교 가부장제 질서에 여성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인식된 것이다.

한편, 조선의 사대부들은 유교적 여성규범을 충실히 실천한 여성을 ‘여중군자’라고 불렀다. ‘여자 중의 군자’라는 의미로 주로 사대부 여성의 제문, 행장, 묘지명에서 볼 수 있는데, 부덕의 실천이 뛰어난 여성에게 사용된 개념으로서, 여성에 대한 최대의 찬사이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여중군자로 불리는 여성 대부분이 지적 활동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남녀의 성별 분업을 엄격히 하던 조선 사회가, 남성 영역에 속하는 지적 활동을 수행한 여성에 대해 여중군자로 칭송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중군자에 대한 평가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있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해 경서와 사서를 섭렵하였지만, 여자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책을 멀리하였으며, 전혀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여공에 충실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간간히 글을 읽거나 쓰기도 하지만 여공을 마치고 남 몰래 밤늦게 하거나, 이미 써 놓은 글을 불살라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조차도 아내가 죽을 때까지 아내의 학식에 대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평가에는 남성의 감추어진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첫째, 여성의 분수(分數)에 대한 선긋기이다. 비록 여성에게 금지된 지식 세계에 도전하긴 하였지만, 여성의 일이 아님을 명확히 인식하였고, 또한 여공을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들어 안분(安分)의 원리를 충실히 따랐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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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여인, 윤덕희(尹德熙, 1685∼1776)
독서하는 여인, 윤덕희(尹德熙, 1685∼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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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가문 의식의 고양과 관련이 깊다. 여성이 직접 작성한 글이나 여성에 대한 사대부의 글 모두 가문의 남성에 의해 편찬되고 유통되었다. 문(文)을 숭상하던 조선 사회에서 부덕의 실천은 물론, 여성들의 뛰어난 지적 재능은 가문의 명예를 높이는 자랑거리였던 것이다.

이것은 여공을 소홀히 하지 않고 부덕만 갖춘다면, 조선 사회가 여성의 지적 재능을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적이면서도 여성 규범에 충실한 여성에게 여중군자라는 칭호를 붙인 것이다.235) 김언순, 앞의 글, pp.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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