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5권 ‘몸’으로 본 한국여성사
  • Ⅲ. 몸, 정신에서 해방되다-1 몸의 가치와 모성의 저항
  • 03. 여성의 건강과 민족의 모성
  • 여성의 체질, 질병, 위생
신영숙

여성의 근대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몸은 여전히 그 자신에게보다 가족이나 사회에 유익할 때 의미가 더해지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몸이 그 자신에게 속해 있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한 가정의 가족을 위한 몸, 나아가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몸의 기능이 보다 큰 의미를 갖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었다. 이는 일제 식민지 사회가 근대화와 맞물려 더욱 가속화하는데 기인하기도 한다. 즉, 근대화 또는 서구화의 물결과 충돌하는 식민지 가부장제 사회의 벽이 여성들에게는 자신을 스스로 향유할 수 없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하였으며, 일제 식민지 사회의 특수성과 복합적 중층성은 여성들이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 제약, 또는 억압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가운데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는 점차 커져 갔고, 위생 보건 문제와 질병에 관한 상식적인 교육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비교적 보편적 사회 현상으로 퍼져 나갔다.

개화기 이래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조되면서, 우선 여성의 생 애를 통해 일어나는 체질적 변화, 그리고 부인 건강을 위한 체육, 부인병과 성병 등 질병에 대한 기초적 이해 등이 의학 상식으로 보급되고,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몸에 대한 이해와 주의를 일정하게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신문, 잡지 등 언론의 역할이 컸다.

당시 언론은 ‘젊은 여자의 체질을 보고 장래의 운명을 안다’고 여성의 체질에 주목하였다. 여성적 기질은 대체로 다혈질이라는 등 여성의 체질에 대한 성교육은 가정과 학교뿐 아니라 신문, 잡지 등 언론이 나름대로 감당해 나갔다. 1920년대 초반부터 제시된 성교육은 생식 세포의 분열과 인간의 색맹 유전 등에 관해 설명하였다. 제2차 성징에 대해서도 생리학적 고찰을 통해 근대적 몸과 건강 관리를 위한 일종의 (성)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같은 의학 상식의 필요성은 일찍이 하와이 이민 과정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하와이, 멕시코 이민의 검역이 근대적 위생 체계 등 의학 상식 보급에 기여하였던 것이다. 예컨대 안질, 콜레라, 페스트, 천연두 등 각종 질병에 대한 검사 앞에 점차 자신의 몸은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의식에 눈뜨기 시작하고, 몸은 이제 정신과는 별개로 자신이 활동하기에 편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되게 되었다는 것이다.407) 이영아, 『육체의 탄생』, 민음사, 2008, pp.181∼182. 이에 따라 사회적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도 체득돼 갔다.408) 이상경, 『인간으로 살고 싶다』, 한길사, 2000, pp.183∼184. 새로운 것에 대한 의심스러운 반감과 호기심과 같이 근대화의 매력 등을 수용하고자 한 것은,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더 강하였을 수 있다.

몸에 대한 이같은 근대적 인식은 근대 의학과 성교육을 당연히 수반한다. 가정에서부터 성교육이 시작되어야 하였고, 학교에서도 생리학, 위생학과 함께 성윤리, 운동 등이 강조되었다. 성교육은 여성의 몸을 보호, 간수하는데 필수 요건인 동시에 성의 해방, 여성 지위 향상 등에 최소한의 필수 조건이 된다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이 제 여성은 몸으로 세파에 맞서 부대낄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서 몸을 싸매고 감추고 하는 것 등이 능사가 아니었다. 걸음걸이에서부터 월경, 성병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 속에 세심한 교육, 홍보 등이 등장하는 시기는 여성의 노동력이 그만큼 중시되는 근대라는 시기와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근대적 직업 여성은 외모나 의복 등에 있어 보다 더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하였다. 아니, 오히려 얼굴이 못 생긴 여자일수록 사무 능력이 뛰어나고 부지런히 일한다고까지 생각하여, 미모(몸)와 일의 성취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하였다. 그만큼 여성에게 거는 사회적 기대는 외모 못지않게 노동력, 여성의 실제적 역할(몸의 쓰임새)이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여성도 당연히 노동력, 출산 능력으로 몸을 평가 받는 존재였고 식민지 사회에서 개인적 몸은 어떤 곤란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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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건강한 여성의 몸 관리를 위해 의학상 무엇보다 중시한 것은 월경이었다. 여의사 길정희는 월경섭생법으로 ① 청결, ② 안정, ③ 유쾌한 정신, ④ 담백한 식물, ⑤ 감기 주의 등을 제시하였다. 또한, 직장 여성이 월경시에 일의 능률이 평상시의 3분의 1로 크게 떨어진다든지, 바람직한 남녀 관계에도 올바른 성교육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등이 강조되었다. 여자의 생활력의 원천은 난소의 기능이라며, 이에 따라 생식기, 호르몬, 월경 등에 유의하라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여자 구실과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리학, 유전학적 연구가 근대 과학이란 이름 아래 적극적으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동시에 조선 여학생의 체질이 열악한 원인을 유교 문화와 생활로 규방에 갇힌 몸, 남존여비로 인한 일상적인 음식의 열악함 등으로 이해하였다. 무엇보다 유전학상 남성보다 강한 생명력과 성장력을 가지고 있다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근대 과학적 인식의 진전이 계속되었다. 1930년대 후기로 갈수록 전시체제라는 조악한 생활 조건 속에 여성의 체질 개선을 위한 영양 섭생 등은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예를 들면 매운 음식, 고추 등은 자궁의 발육 부진의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일상적인 여성의 몸 관리에 주목하기도 하였다. 조혈제로 효과가 있는 음식으로 구리, 철분, 망간 등이 거론되는가 하면, 우리 몸에 필요한 영양 4가지 영양소, 산모의 영양 문제, 나아가 자녀 양육에 필요한 생활 과학 상식 등이 성 교육으로 흔히 다뤄졌다. 비록 식민지 여성의 실생활과는 상당 부분 유리된 것이라 하더라도 근대 의학, 유전학, 생리학 등 과학의 발전이 몸에 대한 관심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며, 보다 적극적인 입장에서 여성의 건강한 몸을 위한 질병과 위생, 건강 관리 등을 가능하게 하였다. 동시에 여의사에 의한 의료 행위의 증가는 계속해서 모성과 양육 등에 보다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 보급되도록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여성 잡지 등 언론에서도 환절기 위생이나 질병에 주의를 기울여 여론을 환기시켰다. 폐결핵, 위장병, 히스테리 등 여성이 걸리기 쉬운 병, 매독 등 화류병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주의는 물론 손과 얼굴이 터지는 것도 부인병 때문이라 하고, 하복부, 자궁병 등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수태에까지 영향을 주므로 각별히 위생에 주의하도록 보도하였다. 냉증 등 여성의 몸에 직결된 부인병, 더 나아가 임질, 방광염과 요도염, 신우염 등이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든지 불임의 원인이 된다고 몸을 차게 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즉, 여자는 신체적으로 저향력이 약하고, 부인병은 처녀기에서 갱년기 사이에 제일 많이 발병하며, 여자는 남자보다 신체구조상 병에 걸리기 쉬우므로 더욱 위생에 주의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여자 가 남자보다 열등한 만큼 보호와 주의의 대상으로 인식되면서 여전히 모성 보호에 역점을 두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또한, 단순히 건강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여성의 미와도 연관됨을 강조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다시 말하면 근대적 위생은 질병 예방 차원에서 강조되었고, 섭생과 영양, 보건 등의 근대적 개념이 등장하여 여성 몸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후 문제, 가족과 가정 구조, 직장 생활 등도 건강한 여성 몸의 요소들로 간주되고, 근대적 위생 개념이 다방면으로 강화되어 갔던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종래의 전통적 미신적 위생 관념을 타파하고 합리적, 과학적, 이른바 근대적 위생관을 전파, 보급하려는 데 노력하였다. 위생은 발달한 문명과 동일시되고, 위생을 등한시함은 일종의 문명인의 수치로 여겨졌다. 심지어 위생을 무시하면 인격적 결함으로까지 취급될 정도였다.

당시 언론에서 위생을 지속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만큼 절실하고 다급한 생활 문제로 의식하고 계몽적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며, 그 내용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과 소아 위생이 주류였다. 이를 테면 영국에서 몸매를 위하여 덜 먹는, 이른바 다이어트가 거론되기도 하였으나, 이는 여성 건강을 해친다는 것에 더 강조점이 주어지고 있다. 이처럼 생활과 인식의 일정한 변화 속에 여성의 건강한 몸을 위하여 질병, 섭생, 위생 등에 크게 유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식민지 여성의 실생활에서 섭생, 위생 보건은 극히 열악하여 질병에 대한 상식은 별다른 의미가 없을 정도이었다. 전시 체제의 여성 동원 상황은 여성의 몸에 대한 수요를 갈수록 증대시킨데 반해 그 처우는 오히려 더욱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409) 이영아, 『육체의 탄생』, 민음사, 2008, p.13. 문약상무, 부국강병이란 사회적 명분 아래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한 의식이나 실천 운동은 근대의 필수 조건이자 생활 태도라는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실제 생활에서도 조금씩 진전되어 갔다. 그것 은 단지 전장에 나가 잘 싸우기 위한 몸만이 아니라 인간이 육체적인 동물이란 점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당시로는 분명 근대화를 지향하는 일종의 혁신적인 사고 방식이었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동의하며, 또한 가정, 가족의 위생은 여성의 몫으로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생활 개선의 일대 과제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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