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2 세시 풍속과 사회·문화
  • 02. 세시 풍속의 계급적 성격
  • 민간의 세시 문화
  • 1. 정월 세시 풍속
정승모
확대보기
윷판
윷판
팝업창 닫기

음력으로 정월 초하루 설날에 행하는 모든 일들은 ‘세(歲)’ 자가 붙는데 그 중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것은 세배(歲拜)라고 한다. 세배는 개념상 신정(新正) 세배로 정월 초로 제한된 것이지만 어른들에게 인사가는 때는 이날 외에도 있었다. 순암 안정복(1712∼1791)의 문집 『순암선생문집(順菴先生文集)』 권15, 잡저(雜著)에는 그의 고향인 광주부(廣州府) 경안면(慶安面) 이리(二里)의 동약(洞約)이 실려 있는데, 예속상교(禮俗相交)와 관련하여 과거에는 신정에는 물론 동지(冬至)와 사맹삭(四孟朔), 즉 4월초, 7월초, 그리고 10월초 때 소자(少者)와 유자(幼者)가 존자(尊者)와 장자(長者)를 알현(謁見)하는 예가 있었다고 하였다. 설날 대접하는 음식은 세찬(歲饌)이라 하고 차려내는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남녀 아이들 모두 새옷을 입는데, 이것은 세장(歲粧)이라 하고 우리 말로는 설빔이라고 한다.

우리의 전통 민속 놀이들은 대개 정월 설날부터 대보름 사이에 집중되어있다. 그것은 두 명절의 사이가 길지 않고 또 한창 농한기를 즐길 시절이기 때문이다. 윷놀이, 널뛰기 등은 이 기간에 즐기는 대표적인 놀이들이다.

새해 첫 번째 드는 절기인 입춘은 음력으로 섣달에 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정월에 첫 번째로 드는 절기여서 새해를 상징한다.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 된다. 입춘을 기해 봄을 맞이하는 행사 중 지금도 행해지는 것이 입춘체를 써서 대문에 붙이는 일이다.

재상집, 양반집, 일반 민가 및 상점에서도 모두 집 기둥이나 바람벽에 한자 시귀를 적은 춘련(春聯)을 붙이고 송축하였는데 이것을 춘축(春祝)이라고 하였다. ‘입춘(立春)’, ‘의춘(宜春)’이라고 두 글자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하지만 ‘수여산부여해(壽如山富如海, 수명은 산과 같이 재물은 바다와 같이 되어라)’, ‘거천재래백복(去千灾來百福, 온작 재앙은 가고 모든 복은 오라)’, ‘입춘대길건양다경(立春大吉建陽多慶, 입춘에 크게 길하고 계절 따라 경사가 많아라)’ 등의 문구를 적기도 한다.

확대보기
『단원풍속도첩』 점괘
『단원풍속도첩』 점괘
팝업창 닫기

입춘 날을 받아서 하는 굿을 ‘입춘굿’이라고 하는데, 한 해의 횡수(橫數), 즉 액이 갑작스럽게 닥치는 것을 막고 재복이 왕성하라고 한다. 이를 횡수(橫數)막이굿, 또는 액막이굿이라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보름 경에 일년 재액(災厄)을 예방하는 뜻에서 지내는 곳도 있다.

지난해에 미리 점을 보아 새해 횡수가 있다는 점괘(占卦)가 나오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 정월 초에 안택 고사를 지낸 다음 이른 새벽에 하는 경우도 있고 14일 밤에 하는 곳도 있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달이 뜨기를 기다려 사람들의 왕래가 많 은 거리 가운데에 짚 한 단을 십자로 깔고 그 위에 시루떡, 나물, 실과, 술 등을 진설한 다음 횡수를 없애려는 자의 동정 한 개와 신발 한 켤레를 놓으면 무당이 그 사람의 사주와 주소 및 이름을 대고 액운을 막아달라고 축원하며 사방에 활을 쏘아 액을 쫓는 시늉을 한다. 그 다음 소지를 올린 후 집으로 돌아온다. 남긴 제물은 동네 주민들, 또는 아이들이 나누어 먹는다. 정월 보름에 제웅을 만들어 버리는 것도 이것들과 유사한 풍속이다. 제웅은 초용(草俑) 또는 유득공의 『경도잡지』에서처럼 처용(處容) 등으로 표기한다.

확대보기
제웅
제웅
팝업창 닫기

1월 8일을 곡일(穀日)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권벽(權擘, 1416∼1465)의 문집인 『습재집(習齋集)』에 나온다. 한 달 후에 있을 못자리 고사처럼 각자가 밭에 나아가 돼지고기와 술로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것(豚酒笑禳田) 말고는 특별한 단체 행사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후 자연스럽게 잊게 된 것 같다.

정월에 들어있는 큰 명절은 대보름이다. 이를 상원이라고도 하는데, 도교적인 전통에서 비롯된 말이다. 보름 전날인 14일부터 다음날 보름까지 여러 가지 행사나 놀이가 벌어진다. 그래서 14일을 ‘작은 보름’이라고도 한다.

앞서 소개된 『동악집』에서 이안눌은 어디에서나 정월 보름은 즐거운 명절이지만 우리나라 풍속이 가장 번화(繁華)하다고 하였다. 그는 그 밖에도 민간 의술의 하나로서 귀 어두운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덥히지 않은 술인 의롱주(醫聾酒) 마시기, 아이들이 서로 “내 더위 사가라(買我暑”고 하는 것, 병자가 이 날 20여 집(三七家)의 찰밥을 얻어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나반걸래(糯飯乞來), 연날리기 등을 이속(俚俗)으로 소개하였다. 대보름에는 새벽에 밤·호도·잣 같은 부럼을 깨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오곡밥과 묵은 나물을 먹는다. 부럼을 깨면 일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두 말이 유사한 데서 비롯된 풍속이다.

확대보기
묵은 나물
묵은 나물
팝업창 닫기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은 정월 대보름에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풍습을 그의 『양곡집(陽谷集)』에서 서술하였다. 그는 토우(土牛)·청육(靑陸)·돈제(豚蹄)를 바쳐서 풍년을 비는 농민들의 오랜 습속, 대보름 약밥을 만들게 된 유래, 애호(艾虎)를 붙이고 제석에 역귀를 쫓는 행태 등이 이 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확대보기
액막이 연
액막이 연
팝업창 닫기

서울에서는 정월 12일부터 15일까지 수표교를 중심으로 개천변(開川邊)에서 각방(各坊) 청년들의 연날리기 시합이 열려 구경꾼들이 인성(人城)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연날리기는 아이들을 통해 하는 액막이 놀이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집안 식구대로 ‘○○○(성명 干支生 身厄消滅)’, 즉 누구의 몸에 있는 액운이 소멸되라는 뜻의 문구를 연 등에 써서 연을 높이 띄우다가 액을 멀리 보내는 의미로 해질 무렵에 연줄을 끊어 날라 가게 놓아 버린다. 또한, 정월 보름 저녁에 달이 뜨면 종루의 종소리를 듣고 나와 인파를 이루어 다리밟기를 하였다.

보름날 중요한 행사는 달맞이다. ‘망월(望月)한다’거나 ‘망월을 논다’고도 한다. 마을의 높은 산에 짚을 쌓거나 세워 ‘달집’을 만든 다음 달이 뜨는 시간에 맞추어 태운다. 달집이 잘 탈수록 그 해 운수가 좋다고 믿는다. 또 논둑과 밭둑에도 불을 놓는데 이를 쥐불 놀이라고 한다. 한 해 액을 쫓고 무병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다. 이우(李堣)는 험월(驗月)이라고 하였고(『송재집(松齋集)』),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기재집(企齋集)』에는 동방의 구속(舊俗)으로 표현되었다.

월이월희(月異月戲)라고도 하는 정월 보름밤의 망월은 일종의 점 풍속이다. 이것은 전국 각지에서 행해져 온 것으로 정월 보름에 뜨는 달의 형태, 색깔 등으로 그 해 농사를 점친다. 정월에 점풍(占豊) 행사가 많은 것은 이때가 본격적인 농사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농우초식(農牛初食), 즉 정월 보름에 농우에게 각색 밥을 먹여 제일 먼저 먹는 것이 그해에 풍년이 된다는 식의 것들이다. 색전(索戰), 즉 줄다리기와 석전(石戰), 척사(擲柶), 즉 윷놀이도 마찬가지다.

결빙(結氷) 상태를 보고 그 해 흉풍을 점치는 풍속도 있었다. 용천(龍川) 등 서북 지방에서는 정월 14일 저녁에 잔 12개에 물을 가득 담아 각기 그해 열두 달을 나타내고 이것을 만 하루 놓았다가 결빙하는 모습을 보고 팽창하면 비가 많고 축소하면 한발이 드는 식으로 점을 친다. 경기도 양주에서는 정월 14일 저녁에 콩 12개를 다음날 아침까지 불린 다음 그 불은 정도로 각 달의 강수량을 점친다. 충청도 당진 합덕지(合德池)의 결빙 현상을 그 곳에서는 용이 밭을 가는 것이라고 하여 용경(龍耕)이라고 하는데 정월 14일 밤에 결빙의 장단과 좌우 방향 등으로 그 해 강우량 등을 점친다. 즉, 그 금이 남쪽으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세로로 언덕 부근까지 나면 다음 해는 풍년이 들고, 서쪽으로부터 동쪽 방향으로 복판을 횡단하여 나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혹 동서남북 이리저리 종횡으로 가지런하지 않게 나면 흉년과 풍년이 반반이라고 한다. 경상도 밀양의 남지(南池)에도 용이 땅을 가는 듯 얼음 갈라지는 현상이 있어 이듬해 농사일을 예측한다.

풍년을 바라는 기풍(祈豊) 풍속의 하나로 호서 지방에서는 ‘용알뜨 기’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는데, 예컨대 서산 지방에서 정월 초진일(初辰日)에 용이 우물에 와서 알을 낳는다고 믿어 부녀가 남보다 먼저 우물에 가서 물을 떠다가 밥을 지으면 그 해 농사가 잘 된다는 기풍(祈豊) 신앙이다. 일제강점기 민속학자 송석하가 남긴 잡문 중에는 평안도 정주(定州) 해안 지역의 복축(福祝) 놀이에 관한 것이 있는데 장도(獐島)라는 150여 호의 섬에서 정초부터 보름까지 기(旗)와 등(燈)을 넓은 마당에 달고 매일 장고에 맞추어 난무를 하며 “사해용왕이 도와 청남청북에 도장원이 되게 해달라.”라고 빈다고 하였다(『(朝鮮中央日報)』 1934년 4월 26일자).

확대보기
용알뜨기
용알뜨기
팝업창 닫기

농촌에서는 보름 전날 짚을 묶어 깃대 모양을 만들어 그 안에 벼, 기장, 피, 조 등의 이삭을 집어넣어 싸고 목화를 그 장대 위에 매단 후 이를 새끼로 고정시킨다. 이를 화적(禾積), 또는 화간(禾竿)이라고 하는데, 이삭이 풍성하게 열린 모양을 만듦으로써 풍년을 기원하는 뜻을 담은 것이다. 이자(李耔, 1480∼1533)의 『음애집(陰崖集)』 권3, 일록(日錄) 중 1513년 12월 가사에 “국속(國俗)에 정월 대보름에 짚을 매어 곡식 이삭을 만들고 열매가 많이 달린 모양을 만들어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 있었다.”는 내용이 있어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과수나무 가지 친 곳에 돌을 끼워 둠으로써 과실이 많이 열리기를 빈다. 이를 ‘과수나무 시집보내기’라고 한다.

동제는 당집에 신을 모시고 지내는 당제와 마을산, 또는 산신을 위하는 산제, 산신제 등이 있으며, 동네 공동 우물에서 우물굿을 지내는 곳, 장승을 깎아 세우고 장승제를 지내는 곳, 장독대에 철륭단지나 철륭시루를 놓고 철륭굿을 하는 곳, ‘철륭제’라는 이름으로 철 륭당산제를 하는 곳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확대보기
지신밟기
지신밟기
팝업창 닫기

마을의 두레패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신농유업(神農遺業)’ 등의 문구를 쓴 농기와 풍물을 앞세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매귀(埋鬼), 또는 지신밟기를 한다. 1749년에 간행된 『울산읍지(蔚山邑誌)』 풍속조를 보면 이를 매귀유(埋鬼遊)라고 하면서 매년 정월 보름에 마을마다 기를 세우고 북을 치면서 돌아다니는데, 이는 나례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였다.

귀신을 묻는다(埋鬼)는 뜻이든 지신을 밟는 것이든 이 행사의 초점은 터가 세다는 곳을 찾아가 잡귀가 발동하지 못하도록 눌러 놓음으로써 동네나 각 가정에 무사평안을 기원한다는 데 있다. 지신을 밟는 곳은 동네의 당산나무, 공동 우물, 마을 입구, 다리, 그리고 터가 센 곳이며, 개인 집에 들어가서는 대청의 성주, 부엌의 조왕, 광, 곳간, 우물, 대문, 그리고 뒤안의 장독대, 터주 등이다. 두레패를 맞이한 집주인은 그들을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고 곡식과 돈을 내놓는다. 이렇게 모은 돈은 동제 행사비는 물론 마을 시설의 개보수 및 혼구나 상여 등 공동 재산 마련에 사용한다.

또 정월 대보름에는 마을 단위로 결성되어 있는 두레패가 각기 농기를 앞세워 일정한 장소에 모인 후 오래된 서열에 따라 형 두레가 아우 두레에게 기로 절을 받는데 이를 ‘기세배’, ‘기합례(旗合禮)’라고 한다.

확대보기
기세배
기세배
팝업창 닫기

마을에 따라서는 정월 보름 안으로 단골 무당 집에 일년 신수점을 보러 갔고, 칠월 칠석 때에도 단골집에 가서 가정이 무고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를 ‘마지 드리러 간다’ 혹은 ‘정성 드리러 간다’고 하였다.

직성(直星)에 대한 제사는 조선 전기에는 소격전에서 하였다고 하나, 민간 풍속에서는 직성길흉(直星吉凶)에 따라 도액(度厄), 즉 액을 넘어가는 법이라 하여 정월 14일에 이를 행하였다. 이것은 모두가 이날, 즉 상원일에 본명초례(本命醮禮)를 올리는 도교 풍속에서 나온 것이다. 직성이란 인간의 연령에 따라 그의 운명을 맡아본다는 별이다. 직성기양(直星祈禳)에 대해서는 유득공의 『경도잡지』에 “정월 열나흘 밤에 짚을 묶어 허수아비를 만드는데 이를 처용(處容)이라 한다. 수직성(水直星)을 만난 사람은 밥을 종이에 싸서 밤중에 우물 속에 넣고 비는 풍속이 있다. 민속에서 가장 꺼리는 것은 처용직성이다.”라고 하였다.

‘어부심’은 한자로 어부시(魚鳧施)라고 쓰며 의미는 강에서 사는 물고기나 오리(鳧)에게 베푼다는 것으로 물고기에 보시(普施)한다고 하여 ‘어보시’라고도 한다. 강에서 고기도 잡고 멱감는 일도 많았던 시절에 강 주인인 물짐승들에게 일년 내내 사고 없이 잘 지내게 해달라고 비는 신앙 행위다. 경기 일원에 강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정월 보 름밤에 어부심을 하였다고 한다. 보름 전날 햅쌀로 먼저 ‘고양(供養)’, 즉 밥을 지어놓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새벽에 ‘고양’ 밥을 퍼들고 강가로 나아가 젯상을 차리고 ‘사해용왕님’을 찾으면서 동해, 남해, 서해, 북해 순서로 돌아가며 1배씩 4배하며 물 사고 없도록 기원한 다음 물로 나아가 바가지에 담은 밥을 강물에 푼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