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모

늦가을인 9월에는 중양절이 들어있는데 이때가 되면 농촌에서는 남자들은 그해 논농사를 결산하는 추수를 하고, 여자들은 마늘을 심거나 고구마를 수확한다. 퇴비 만들기, 논물 빼기, 논 피사리 등은 남녀가 공동으로 하는 작업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목화도 따야 하고, 또 콩·팥·조·수수·무·배추 등 밭작물에 대한 파종과 수확이 겹쳐 농민들에게는 바쁜 날이다. 그러므로 농촌에서는 중구절이라고 하여 특별한 행사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평상 때와 똑같이 보내는 곳이 더 많다.

과거에는 각 마을마다, 또는 2∼3개 마을에 하나씩 동네 단골 무당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연말에 이장에게 이세(里稅)를 내듯이 중양절이 되면 이들에게 시주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으면 다음에 탈이 있을 때 단골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대부분 집안에서는 음력 10월이 되면 이 달을 상달이라고 하여 날을 정해 팥시루를 하고 가주(家主) 주관으로 가을 고사를 지냈다. 대청 성주와 안방 제석에는 떡을 술과 함께 시루 째 갖다 놓고 장광(터주), 대문간, 헛간, 측간, 외양간, 우물 등에는 떡을 떼어놓는다. 터주가리 안 항아리에는 이전 해에 넣었던 묵은 벼 대신 햇벼로 갈아 넣는다. 시루떡은 두어 말 정도 해서 동네에서 나눠 먹는다. 단골 무당을 불러 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성주신은 집안 신의 중심이다. 대들보나 안방 입구 문 윗벽에 위치하며 집안의 평안과 무병을 비는 대상이다. 주로 시월상달에 무 당을 불러 안택굿을 하는 등의 고사를 지낸다. 경기 등 중부 지방에서는 백지에 동전을 넣고 접어 물을 발라 붙인 후 흰쌀을 뿌려 둔다. 평안도, 함경도 등지에서는 항아리에 쌀을 담아 대들보 위에 올려놓는다.

동지 팥죽은 먼저 사당에 놓아 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광, 또는 부엌에서 불을 관장하는 신인 조왕신에게 한 그릇씩 떠다 놓으며, 대문이나 벽에는 조금씩 뿌린다. 이렇게 하는 것은 팥죽의 붉은 색이 귀신이 두려워하는 색으로, 액을 막고 잡귀를 없애 준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팥죽을 동네에 있는 고목에도 뿌리는데 이것도 역시 팥의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석신(帝釋神)은 불교 풍속의 삼불 제석과 관련된 신으로, 각 절에는 제석일(除夕日), 즉 섣달 그믐에 신도들이 각자 재미(齋米)를 들고 와서 제석신에게 빈다.

이날 낮에는 연소자들이 친척 어른들을 두루 방문하여 인사하는데 이를 묵은 세배(拜舊歲)라고 하며 이것을 하느라고 이 날은 초저녁부터 밤중까지 골목마다 등불이 줄을 이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섣달 그믐밤에 민가에서는 집집마다 다락·마루·방·부엌에 모두 기름 등잔을 켜놓는다. 등잔은 흰 사기 접시에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든 것이다. 이것을 외양간과 변소에까지 대낮같이 환하게 켜 놓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를 수세(守歲)라고 하며 이는 곧 경신일을 지키는 경신수야(庚申守夜)라는 풍속과 관련이 있다.

전해 내려오는 속담에 섣달 그믐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센다고 하여 어린아이들은 대개 이 말에 속아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혹 자는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가 분가루를 자는 아이 눈썹에 발라놓고 다음날 거울을 보게 하여 놀려주고 웃는다.

부녀들은 색칠하지 않은 맨 널빤지를 짚단 위에 횡으로 올려놓고 그 양 끝에 마주 올라서서 서로 오르내리면서 몇 자씩 뛰는데 힘이 빠져 지칠 때까지 하며 즐긴다. 이 놀이를 널뛰기라고 하고 한자어로 도판희(跳板戲)라고 표기하며 정월 초까지 계속한다.

함경도에는 이 날 빙등(氷燈)을 설치하는 풍속이 있는데 아름드리 기둥 같은 초롱 속에 기름 심지를 안전하게 놓고 불을 켠 채 밤을 새워 징과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나희(儺戲) 굿을 한다. 평안도 풍속에서도 빙등을 설치하며 각 도의 고을에서도 각기 그 고유 풍속대로 한 해를 마치는 놀이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