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3 세시 풍속과 생업: 생산
  • 01 생업과 세시의 제 관계
  • 세시와 생업은 불이
주강현

세시와 농사력(農事曆), 혹은 어업력(漁業曆)은 불가분의 불이(不二)다. 양자는 통합되어야 마땅하며, 분리될 성질이 아니다. 『산림경제(山林經濟)』,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를 비롯한 생업 관련 저술에는 반드시 세시가 개입되어 있다. 당대의 세계관에서 물질과 정신이 애써 구분되는 이분법적 발상 자체가 불필요하였다. 그러나 한국 민속학의 발전 경로에서 내재적 물질 문화 이해 방식이 외면당하고 굴절되면서 세시와 생업을 별도로 분리하는 사고가 만연하게 된 것이다.13) 주강현, 「歲時와 生業의 不二關係: 五方風土不同의 법칙」, 『역사민속학』 19, 2004.

세시에 나타나는 온갖 속신들, 더 나아가 농서에 반영된 온갖 시후에 맞춘 농사력 그 자체는 현대적 개념으로 생태친화적 성격을 보여준다. 갑자일(甲子日)에 무엇을 하고 말고, 초하루에 시후를 보고, 입춘에 보리 뿌리로 점을 치는 행위 등은 속신 이상의 현대적 의미를 지닌다. 민속학은 정작 이들 ‘전통 과학’, 즉 ‘민속 지식’에 관하여 무관심하였으니, 세시를 논하되 『동국세시기』 정도면 충분하였지 농서를 분석하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물질 민속에 담겨진 충만한 세계관은 무시당하고 연구사적으로도 논외의 취급을 받아 ‘서자 노릇’으로 전락하였다.14) 주강현, 「민속학편제를 둘러싼 방법론상의 몇 가지 문제」, 『역사민속학』 9, 1999.

대개의 농서에 깔려있는 ‘적기적작’의 논리야말로 생산력의 증대를 희구하는 당대의 절대적인 명제에 부응하는 민중들의 고난에 찬 노력들이었다. 국가로서도 더 많은 양의 조세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생산력 증대를 꾀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는 각 지역의 현실에 알맞은 농법, 즉 토질과 종자·시비·농기구 등 전반에 걸친 ‘적기적작’의 과학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민중들의 세시에는 이러한 생업 활동의 당연한 결과들이 때로는 놀이로, 속신으로 귀착된 바 많다. 양반들의 음풍농월적인 문학적 기록물에 내포된 세시에 관한 당대 풍속 관찰의 개괄적 전모가 아니라면, ‘적기적작’의 논리에 맞추어 지역 현실에 알맞은 생업력을 추출하고, 그것을 21세기 현실에 알맞은 방식으로 재현시킬 일이다. 따라서 세시와 생업이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 하는 식의 질문은 우문우답이 될 것이 분명하며, 문제의 핵심은 생업 활동이 어떻게 세시력과 상호 관계를 지니고 있는가를 검증할 필요에 있을 것이다.

아울러 어업과 세시의 제 관계는 그동안 『동국세시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근대 사회 세시기류, 나아가 대개의 농서들이 지니고 있는 여백을 채우려는 작업의 결과이기도 하다. 빈약한 수산서의 조건 속에서, 더 나아가 어업 민속에 관한 일천한 연구 성과로 인하여 이들 공백을 메꾸는 일이 만만한 과제는 아니지만 일부나마 자료를 모아 농업과 대등한 자격으로 세시에서의 지위와 역할을 부여 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모두에서 생업에 관한 범주는 정리해 놓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큰 범주는 농업·어업·수공업으로 삼분된다. 가장 기본적인 생산 풍습은 두말할 것도 없이 농업이다. 연구 자료 산출도 가장 많고 생산력을 규정짓는 절대적인 기준치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하여 어업이나 수공업 분야는 상대적으로 연구사가 빈약하다. 그러나 생산 풍습 연구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대목임에 틀림없다. 아울러 산간 풍습으로서의 수렵 풍습이 농업에 포함될 지라도 중요한 분야인 원예·목축·양어 등의 항목은 연구 업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세시와 관련하여 가장 집중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생업은 역시 농업이며, 그 다음이 어업이다. 수공업은 절기 변화와 무관한 경우가 많아서 세시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무리이다. 본고의 주안점이 농업과 어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여기서 비롯된다.

생업 내에는 생업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생업 의례나 생업적 속신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 농경 의례, 어업 의례 등의 생업과 관련된 의례나 속신은 그 목적하는 바가 의식주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생산 의례와 속신의 궁극적인 목적이 생산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매개된다는 점에서 포함되어야한다.15) 1970년대 이래의 물질 민속 연구사에 대한 일정한 검토가 1999년에 이루어진 바 있다. 본 항목은 이 연구 성과에 기초하여 약술한다(주강현, 「생산풍습연구사」, 『한국민속학사의 성과와 과제』, 국사편찬위원회, 1999).

본 연구는 농업과 어업의 세시를 적기적작 및 적획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문헌 속의 생업 세시와 20세기 구전 채록에 의한 생업 세시를 대조해 본다. 특히, 20세기 구전 채록에 의한 세시 자료는 그간 생산된 무수한 민속지들의 사례를 정리한 것으로 문헌과 현장을 대비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16) 필자가 책임 연구한 다음의 보고서를 참조할 것(『생업활동관련 분류체계정립 및 표제어추출연구』, 국립민속박물관·한국민속연구소, 2003).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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