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3 세시 풍속과 생업: 생산
  • 02 농업과 세시: 적기적작, 농민생활사, 세시력과 농사력의 관계
  • 농서의 속방과 적기적작의 시후, 오방풍토부동의 원리
주강현

농업 세시에 관한 가장 결정적인 자료는 두말할 것도 없이 농서이다.17) 그동안 세시 풍속 연구에서 농서와의 관련성은 거의 무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제민요술(齊民要術)』·『농상집요(農桑輯要)』 같은 중국 농서의 직수입, 혹은 번안(飜案) 농서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종조에 이르러 『농사직설(農事直說)』 편찬이 이루어지면서 한국의 기후와 자연 환경에 알맞은 적기적작(適期適作)의 농법이 폭넓게 인식되어 가고 있었다. 『농사직설』·『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 『고사촬요(攷事撮要)』 같은 문헌들이 조선 전기에 출간되었다면, 조선 후기에는 『한정록(閑情錄)』·『농가집성(農家集成)』·『색경(穡經)』·『산림경제(山林經濟)』·『농가요결(農家要訣)』·『농정서(農政書)』·『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등이 속속 출간되었다.

전기 농서는 대별하면 작물서(作物書)·수의축산서(獸醫畜産書)·양잠서(養蠶書) 등이다. 그 중에서도 농정(農政)이나 농업 기술의 골격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농서는 식량 작물 중심의 농서들이며, 이들 농 서는 원리면에서 20세기 농업 기술의 골격을 갖추고 있음을 반영한다.

농서에서 이른바 속방(俗方)이라고 거론한 대목은 오늘날로 치면 민속학 현지 조사 자료다. ‘어진 농부들에게 일일이 물어서 답을 구하였다’는 속방은 기후와 토양에 부합되는 적기적작의 원리를 가장 잘 표현한 대목이기도 하다. 농서에서 강조되는 적기적작의 논리는 농민 생활사의 원칙이기도 하며, 세시의 기준이기도 하다.

농서의 서술 방식이 구태의연한 중국 농법이나 전에 편찬된 농서를 동어반복으로 재론하고 있는 점은 일정한 제한성을 말해준다. 그러나 한반도의 생리에 부합되는 적기적작의 논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가령, 수탈을 위해서 이루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농사시험장을 만들고 가장 심혈을 기울인 대목 역시 현지의 시후를 계산하는 일이었다.

농경 생활에서 농사력(農事曆)의 중요성은 늘 강조되었다. 농사짓기에서 적기적작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았다. 일찍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과농소초(課農小抄)』에서 농사짓는데 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년 내내 곡식이 생장할 시기에 심고, 사장(死藏)할 때에는 거두어 들여야 하므로, 천하에는 시기와 지력(地力)이 재화를 생산하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18) 『課農小抄』, 授時條.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는 치농(治農)의 근본을, “농사란 업은 또한 묘리(妙理)가 있는 법이니, 지역을 고찰하여 종자를 심되, 건조한 곳과 습한 곳에 마땅한 것을 맞추어 심고, 철이 이른 것과 늦은 것도 맞추어서 심어야 바야흐로 이익을 내어 생활에 의존할 수 있다.”고 하여 적기적작을 강조하였다.19) 『增補山林經濟』, 治農條.

『한정록(閑情錄)』에서는 적기적작을 순시(順時)로 표현하였다. “천하사를 이루는데 적기를 맞추는 것보다 우선됨이 없다. 씨 뿌리고 나무 심는 것이 각기 때가 있으니 적기를 가히 잃지 말아야 하나니 옛 성인들이 촌음을 아깝게 여긴 것은 좋은 예이다. 농사를 업으로 하는 자 가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파종 시기는 작물에 따라 다르므로 능히 마땅한 시기를 알아 선후의 순서를 어기지 않은 즉, 서로 이어서 생성하고 이용할 수 있으니 어찌 절량이 되거나 궤핍할 수 있으리요.”라고 하였다.20) 『閑情錄』, 治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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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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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 「권농교문(勸農敎文)」에 이르길, “요즈음 수령들이 옛 관습에 얽매어 비록 파종 시기에 이르러서도 스스로 이르되 망종이 아직 멀었다고 한다.”고 하여 농서의 선진 기술 보급을 통하여 적기적작의 국가적 지도력을 강화하려는 뜻도 엿보인다. 이는 농서의 시후와 실제 민의 시후가 다를 수 있다는 간극을 암시해 주기도 한다.

『농사직설』과 같은 국가적 농서 편찬 체계에는 곳곳에 ‘속방’을 적기하여 당대 생산 민속을 암시하고 있다. 가령, 곡식의 씨앗을 준비함에 있어 다음해 작황이 좋을 곡종을 미리 알아보기 위하여 아홉 가지 곡식의 씨앗을 한 되씩 각각 다른 베자루에 넣어 움집 안에 묻어둔다. 그것을 50일이 경과한 다음에 꺼내어 다시 되어보아 가장 많이 불어난 곡종이 그 해 풍작이 될 곡종이라고 하였으며, 속방에는 동짓날에 묻어두었다가 입춘일에 꺼내어본다고 하였다. 민간에서 곡식이 불은 정도로 판단하는 ‘달불이’와 같은 세시는 이러한 농법상의 문제를 충실히 검증하고 있는 셈이다.

『농사직설』은 휴한농법(休閑農法)에 기반한 전래 농법이 여말·선초에 이르러 연작 농법(連作農法)으로 전환되면서 휴한 위주의 화북 농법(華北農法)을 다룬 중국 농서가 우리의 풍토에 맞지 않은 것을 극복하기 위해 왕명에 의헤 편찬되었다. 우리 현실과 부합되지 않는 농서의 문제점은 농사짓는 농민들 스스로가 실생활에서 체득하고 있었으니, 사실 적기적작의 논리는 민간에서 먼저 팽배되어 있던 것 이다. 곧,

이제 주상 전하께서 …… 오방(五方)의 풍토가 다르고 작물에 따른 농법이 각기 있어 고서(古書)의 내용과 맞지 않음을 아시고 각도 감사(監司)에게 명하사 고을의 늙은 농부들이 경험한 바를 모두 들어올리라 하셨다.

고 하였으니,21) “五方風土不同樹藝之法各有其宜不可盡同古書.” ‘오방풍토부동(五方風土不同)’의 논리가 강조되었다. ‘오방풍토부동’의 논리는 현행 민속학 현지 조사에도 그대로 부합되는 것으로, 생업에서의 민속지 서술이 각 지방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당연한 근거를 담보한다. 이 말은 각 지방마다 세시 역시 기본 개념은 같되, 각론에 들어가면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몇 가지 농서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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