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4 세시 풍속과 종교
  • 02. 불교와 세시 풍속
  • 4대 명절
  • 1. 불생일
진철승

우리나라에서 부처의 생일은 현재 음력 4월 8일로 되어 있다. 이는 『태자서응본기경(太子瑞應本起經)』(上), 『수업본기경(授業本起經)』과 『불소행찬(佛所行讚)』(1), 『관세불형상경(灌洗佛形像經)』 등 각종 대승 경전에 근거하고 있는데, 특히 동북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채택해왔던 날이다. 인도로 구법행을 한 승려들의 기록에 의하면 인도에서도 10세기 불교 쇠퇴 이전까지 4월 8일에 행상(行像) 등의 불생일 행사가 있었고, 중국에서는 위진남북조시대와 수·당대에 화려한 불생일 축제가 열렸다는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중엽 이후에 4월 8일의 불생일 행사 기록이 보인다.

드물게는 2월 8일설도 있는데, 이는 인도력의 춘분과 일치한다고 하나, 실제 세계 불교국에서 거의 지켜지지 않았던 날이다.111) 석가의 탄일을 음력 2월 8일로 전하고 있는 경전으로는 『長阿含經』(권4), 『佛本行集經』(7), 「樹下誕生品」이나 『過去現在因果經』(1) 등이 있다. 한편, 중국의 요나 금에서는 2월 8일을 공식적으로 佛生日로 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의 유명한 세시기인 『荊楚歲時記』도 釋氏下生日을 2월 8일로 기록하고 있다. 한편, 빠알리(pâli) 경전을 바탕으로 수행을 하는 지역, 즉 스리랑카, 타일랜드, 미얀마 등 동남아 국가에서는 인도력의 둘째 달인 웨삭(Vesaka)월의 보름날, 즉 웨삭 뽀야일을 석가의 탄신일로 지내고 있는데 그 근거는 석가모니의 전생의 설화를 담은 『자아타카』라고 한다. 특히, 남방 상좌부권에서 지내는 웨삭 뽀야일은 단순히 석가모니의 탄신일일뿐 아니라 석가모니가 성도와 열반을 동시에 이룬 날 로 여겨져 그 어느 축제보다도 중요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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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오신 날 서울시청 앞 기념 점등식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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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회 회향한마당 대동놀이를 즐기는 대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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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등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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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행렬 연합합창단 연꽃등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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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회 회향한마당 태평무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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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생일의 주요 행사 풍속은 인도와 중국 및 일본 공히 행상(行像)과 욕불(浴佛)이었다. 인도에서는 석가의 탄신일에 탄생불(아기 부처님)을 흰 코끼리나 수레에 태우고 거리를 순회하는 행상(行像)이나 정수리에 물을 뿌려 경축하고 복을 비는 욕불(浴佛) 등이 축제의 주 내용이었다. 399년에서 410년까지 인도를 다녀온 법현(法顯)의 『고승 법현전(高僧法顯傳)』에 의하면 당시 인도의 마갈다(Magadha)국 파련불(Pataliputra)읍에서 매년 4월 8일에 행상(行像)을 비롯한 탄신 기념행사를 하였으며 이는 전 인도의 풍습이었다고 한다. 또 중앙아시아의 우전국(于闐國)에도 행상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어 이 당시 행상은 불교 전래국의 일반적인 탄신 축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상 풍속은 불교의 고유 행사라기보다는 본디 인도의 힌두교도를 비롯한 대중의 일반 풍습이었다. 초기 불교에서는 불상도 없었고, 더구나 석가의 탄신를 기리는 축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서력 기원 전후한 대승 불교 흥륭기에 대중적 힌두교의 풍속을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행사가 시작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비쉬누신이나 쉬바신을 안치한 행상이 지역 사회의 축제로서 지속되고 있다. 이 행상은 중국에서도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진남북조 시대나 당·송대의 기록을 보면 행상에 관한 기사가 여럿 산견된다(『三國志』 魏書 釋老志 ; 『法苑珠林』 潛遁篇感應緣) ; 『荊楚歲時記』; 『宋僧史略』 行像條 등). 행상은 불교 전래 초기 실크로드를 타고 서역에서 유입되어 일정 기간 성행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송대 이후 기록에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행상과 더불어 불탄일의 가장 대표적인 행사로는 욕불(浴佛, 灌佛)을 들 수 있다. 욕불은 『보요경(普曜經)』 등에 실린 “오른쪽 허리에서 보살이 나왔을 때 천제범석(天帝釋梵)이 홀연 내려와 갖가지 향수로 보살을 씻었으며 구룡(九龍)이 향수로 성존(聖尊)을 목욕시켰다.”는 구룡토수(九龍吐水)의 전설에 따라 행해졌다. 그러나 이 관불, 혹은 욕불은 반드시 생신에만 하는 것은 아니었으며, 인도에서는 매일 욕불을 행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남북조 시대부터 비교적 일찍이 행해졌으며, 당·송대에도 비교적 널리 행해졌다. 이는 『칙수백장청규(勅修百丈淸規)』 등에 불생일에 행하는 관불회의 절차가 전하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불생일의 행사로 이외 에도 부처의 치아사리를 모신 절에서의 불아회(佛牙會)나 각종 재회(齋會)와 수계(受戒), 그리고 강설(講說) 등이 있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불교 전래 초기부터 이러한 행상과 관불의 의식이 성행하였다고 한다. 기록상 최초의 관불회는 인명천황 7년(840)의 궁중 관불회였다. 이후 관불회는 항례가 되어 가마쿠라(鎌倉), 무로마치(室町) 시대에도 성행하였으며, 도쿠가와(德川) 막부 시대에는 민속과 결합하여 일본 특유의 하나마츠리(花祭)로112) 하나마츠리花祭는 일본의 민속과 불교 의식이 결합한 대표적인 명절이다. 명치 유신 이전에는 음력 4월 8일에 지냈으나 유신 이후 서양식 양력으로 지내고 있다. 하나마츠리는 꽃, 특히 벚꽃 감상에 대한 일본인 특유의 감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낙화를 방지하여 가을 추수의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 의례鎭花祭와 이에서 발전하여 염불무용을 통해 역병이나 해충을 몰아내고 원령을 다스리는 부정씻이의 의례가 혼합된 민속이라고 한다(山折哲雄, 『佛敎民俗學』, 講談社, 1994). 또한, 하나마츠리는 백제 성왕으로부터 전래된 불상과 관불 의식에 따라 석가의 탄신일에 행하는 불교 의식, 관불회와 결합되어 있다고도 한다. 변용되었다. 하나마쯔리는 오늘날도 일본 불교에서 가장 큰 불교 행사로 전승되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양력일의 하나마츠리를 우리에게 강요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인도, 중국, 일본에서 성행한 불탄일의 행상과 욕불의식은 우리의 기록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송대 이후 기록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당·송과 활발한 교류를 하였던 신라나 고려에서 이를 모를 리 없었을 것이나, 그러한 행사 풍속을 수용하지 않은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더구나 신라, 고려시대에는 불탄일 행사 자체가 기록에 보이지 않는다. 연등회와 팔관회 및 각종 대규모 불사가 성행하였음에도 정작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의 탄신 기념 행사가 보이지 않는 것은 매우 의아스러운 현상이다. 기록의 누락인지, 아니면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도 이는 동북아시아, 특히 중국과 우리나라의 특유한 전제 왕권 사회에서 불교의 생존 포교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즉,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진정으로 불탄일을 기념하는 행사는 극히 적었으며, 천자의 탄신 법회나 진호(鎭護) 국가 의식이 더 발달하였던 것이다. 이에 중국 당·송대의 불교에 대한 오오다니(大谷)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음미해 볼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이 같은 현상은 귀족 계급에 영합하여 물질적 발전을 꾀하는 당시 불교 교단의 상태를 보여주는 한 예일 것이다.113) 大谷光照, 『唐代佛敎の儀禮』, 有光社, 1937, pp.15∼21.

한국 불교계가 불생일을 제대로 기리기 시작한 것은 1975년 불탄절(부처님 오신 날)의 공휴일 제정 이후로 보인다. 이전 일제강점기에는 사월 초파일의 민속 등놀이마저 다른 공동체 놀이나 풍속과 마찬가지로 일제에 의해 금지되거나 아니면 변질의 길을 걸었다. 특히, 1930년대 이후 일제는 일본식 불생일 행사인 하나마츠리를 강요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군대식 제등 행렬의 풍속도 새롭게 자리잡았다. 이러한 제등 행렬이나 관불(灌佛)의 새로운 일본식 풍속은 해방 후 별다른 불생일 행사 전통을 간직하고 있지 못하던 한국 불교계에서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잡았다.

한국 불교계는 기독교의 기독 탄신일이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된 데 대하여 형평성을 요구하여 1975년 석가 탄신일의 공휴일 지정을 얻어내었으나, 불탄일의 행사는 절 주변의 제등(提燈) 행렬과 사찰에서의 법요식이 전부였다.114) 진철승, 「부처님 예수님 생신의 공휴일 산고」, 『종교문화비평』, 청년사, 2002. 그러나 최근에는 이에 대한 반성과 전통에 대한 재해석 및 현대적 축제화의 길을 모색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조계종단의 안정(1994년 조계종 개혁) 이후 본격적인 불탄일 행사의 정비에 나서 최근에는(1996년 이후) 행사 명칭을 ‘연등 축제’로 바꾸고, 다양한 민속과 현대적 이벤트를 겸한 대중적 축제로 다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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