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6권 한 해, 사계절에 담긴 우리 풍속
  • 4 세시 풍속과 종교
  • 02. 불교와 세시 풍속
  • 불교의 주요 월별 풍속
  • 1. 정월
진철승

정월은 민속의 태반이 몰려 있는 최대의 명절인데, 이는 정월이 새해의 풍요와 안정을 희구하는 새로운 출발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다가올 농사일을 준비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한참 동안거(冬安居)가 진행되는 때라 선종 사찰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없다. 그러나 선방이나 강원 등의 큰 절에서는 여러 승려들이 함께 통알(通謁)이라는 독특한 신년 행사를 치른다. 통알은 사찰의 큰방에 승려 대중이 모여 서로 마주보고 인례자(引禮者)의 선창에 따라 복창하고 함께 삼배하는 의식이다. 이를 세알삼배(歲謁三拜)라 한다. 인례자는 복청대중(伏請大衆) 일대교주(一代敎主) 석가세존전(釋迦世尊前)으로부터 시작하여 불법승과 각종 신중, 그리고 여러 조상님과 무주고혼에 이르기까지 선창한다. 마지막으로 ‘동주도반 합원대중전(同住道伴 合院大衆前)’하고 모두 함께 삼배한 다음, 사찰의 노소 승려가 순서에 따라 삼배를 하고 마지막으로 단월(檀越, 신도)의 세배를 받는다. 이어 상단에 불공하고 절에 공덕이 있는 영가와 일체애혼영가를 위한 시식(施食, 혹은 茶禮)을 베푼다. 최근에는 큰절에서의 통알의식을 도심 포교당이나 소규모 사찰에서도 신도들과 더불어 행하는 경향이 증대하고 있다. 절에서 승려들만이 하던 불교식 집단 세배가 신도 대중과 함께 하는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동국세시기』나 『열양잡기』 등에는 정초의 법고나 승병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승려가 북을 메고 시가로 들어와 치는 것을 법고(法鼓)라 한다. 모연문을 펴놓고 바라를 울리고 염불을 하면 다투어 돈을 던진다. 절 떡을 먹이면 마마에 좋으므로 절떡 하나에 속가의 떡 두 개를 바꾼다. 이런 풍속은 도성출입 금지 후 도성 밖에나 남았다. 상좌들이 도성 내 오부에서 재미(齋米)를 얻기 위해 소리를 하면 쌀을 퍼준다. 이는 복을 빌기 위함이다.

이 기록은 조선 중·후기 불교의 탁발(托鉢)을 설명하는 것으로 바라춤을 추고 화청 가락으로 염불하는 모습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탁발은 정초에 국한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조계종 등 불교 종단에서는 가짜 승려들의 문제와 승려 위신 저하 등을 이유로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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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 앞 할머니 당산
내소사 앞 할머니 당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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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갑사 입구 괴목대신
공주 갑사 입구 괴목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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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연말연시에 절에서는 절 입구의 서낭이나 장승 앞에서 승려들이 원앙재(연말)나 성황제(연초)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질병을 막고 절의 융성을 기원하면서 동시에 절의 노장 승려와 젊은 승려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면서 정진을 약속하는 의식이었다고 한다(경기도 양주 봉선사 월운스님, 1987). 이는 민간의 풍속을 받아들여 사찰의 세시 풍속으로 삼은 대표적 사례이다.

이외에 일반 사찰에서는 나름대로 새해의 의미를 신도나 지역대중과 더불어 되새겨보는 행사가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한 예로 정초의 대표적 민속인 마을굿(洞祭)에 승려들이 제관으로 참여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에도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 석포리 내소사 아래 입석마을의 당산제에 내소사 주지가 제관으로 참여하는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내소사 앞마당과 입구 앞에는 할아버지당과 할머니당(이들은 巨木이다)이 있는데, 해마다 정월 보름에는 마을 주민들이 이 앞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그런데 내소사 주지가 할아버지당 앞에서의 제에 제관으로 참여하고, 이어 할머니당에 제사 지낸 다음 주민들과 같이 음복을 한다(1988년 대보름, 필자 답사). 이 마을굿의 목적은 마을과 절에 모두 길운이 깃들기를 기원하는 것인 데, 불교가 민중의 습속에 자연스럽게 참석하고 그를 수용한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재에도 각 사찰 앞이나 경내에는 장승이나 서낭당, 당산(거목), 국사당 등이 많이 남아 있어 사찰 주변 사하촌이나 인근 마을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제를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사찰 승려가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된다.120) 진철승, 『민속과 불교신앙』, 『승가』, 중앙승가대학, 1990, pp.208∼214. 최근에는 개발 과정에서 사라진 마을굿을 재현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도 하다. 계룡산 갑사의 괴목대제를 갑사 주지가 주재하거나, 전라남도 해남 군내 마을 당제를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미황사 주지가 제를 지내는 것이 그것이다.

한편, 최근에는 신년 정초에 초하루에서 사흘까지(혹은 7일까지) 일년 동안의 행운을 비는 신중기도(神衆祈禱)가 선방이 있는 경우에는 결제 대중 승려들과 더불어, 그리고 일반 사찰에서는 신도들의 동참 하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사례는 특별한 신년 의례가 없는 불교에서 대중의 신년 행사를 갈구하는 소망에 부응한 것이라 하겠다. 또 대보름에는 삼사(三寺) 순례를 겸한 대규모 방생(放生)도 일반화하고 있다. 대개 정월에 해당하는 입춘에는 입춘 불공을 하고 이어 절에서는 신도들에게 입춘 부적을 나눠주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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