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3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과 서예가
  • 01.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
  • 조선 후기 서예 동향
  • 1. 17세기 서예 동향
  • 석비와 두전의 변화
이성배

[석비와 두전의 변화]47) 손환일, 『한국 금석문의 두전』, 서화미디어, 2011 참조.

16∼17세기 조선시대 중기 석비와 두전은 제액이 사라지고 제액식 두전, 전면표제양식(全面表題樣式)이 사용되었다. 먼저 제액식 두전은 드물지만 조선 말기까지 꾸준하게 사용되었다. 대표적으로 <장형신도비(張烱神道碑)>(1691, 권규 전) 등이 있다.

다음 두전은 가장 많이 유행한 양식으로 주요 서체는 대전, 소전, 예서, 해서를 썼다. 대전을 쓴 두전은 <이창정신도비(李昌庭神道碑)>1664, 허목 전)·<원천석 묘갈(元天錫墓碣)>(1670, 허목 전) 등이 있다. 소전을 쓴 두전은 크게 진전과 당전으로 구분된다. 진전은 <이희검 신도비(李希儉神道碑)>(1613, 김상용 전)·<이귀 신도비(李貴神道碑)>(1650, 여이징 전) 등이 있고, 당전은 이양빙(李陽氷) 전서가 주류를 이루며 <이시발 신도비(李時發神道碑)>(1658, 이정영 전)·<윤천석 신도비(尹天錫神道碑)>(1699, 홍수주 전) 등이 있다. 예서를 쓴 두전은 주로 해서화된 예서를 썼다. 이 예서는 17세기에 김수증 등이 발전시켜 유행하였으며 대표적으로 <창주서원 묘정비>(1697, 김수증 서)가 있다. 17세기 무렵에 고증학의 영향으로 한예의 탁본자료가 들어오지만 아직 한예로 쓴 두전은 나타나지 않았다. 해서로 쓴 두전은 <상태사 원각조사비(常泰寺圓覺祖師碑)>(1648)·<자운비(慈雲碑)>(1655)·<김유 묘갈(金裕墓碣)>(1663, 조종운 서)·<보살사 증수비(菩薩寺重修碑)>(1683) 등이 있다.

전면표제양식은 전서, 팔분, 해서 등으로 썼는데 해서를 많이 썼다. 이러한 양식은 조선 말기까지 꾸준하게 유행하였다. 그리고 두전과 전면표제양식을 함께 사용한 특이한 경우로 <안향 향려비(安珦鄕 閭碑)>(1656, 김계 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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