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3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과 서예가
  • 01.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
  • 조선 후기 서예 동향
  • 1. 17세기 서예 동향
  • 금석문에 대한 관심 고조
이성배

임진·병자 양란 이후에 금석서화(金石書畵)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여 탁본과 도서를 수장하고, 또한 점차 우리의 탁본과 명필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금석문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17세기의 대표적인 금석자료로 우선 창강 조속이 펴낸 『금석청완(金石淸玩)』(4권 10책)이 있다. 이 책은 직접 현장에서 탁본하여 선명한 부분을 중심으로 편집하여 완성된 것으로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비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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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행서 <황산곡증소동파(黃山谷贈蘇東坡)>
이우 행서 <황산곡증소동파(黃山谷贈蘇東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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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낭선군 이우(1637∼1693)와 그 아우인 낭원군 이간(1640∼1700)이 엮은 『대동금석첩(大東金石帖)』(7책)이 있다. 그들은 평소 전서와 예서에도 관심이 많아 허목·송시열 등과 교유하면서 이 책을 완성하였다. 이우는 신라 진흥왕순수비로부터 조선 숙종 때까지의 고비·묘비·석당·석각 등 약 3백여 종의 탁본과 각 첩의 말미에 각각의 명칭·찬자·서자·건립 연대·소재지 등을 기재한 목록을 수록하였다. 이 책은 탁본 일부만 편집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일실되거나 일부 파괴된 비문의 탁본도 있어 자료 가치가 크다.

숙종 때 김수증은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 금석자료 180여 종의 금석문을 수집하여 『금석총(金石叢)』을 간행하였는데 현재 전하지 않는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17세기의 서예로는 먼저 이학적 서예의식이 반영된 송준길·송시열의 양송체와 복고의식이 반영된 허목의 미수체를 들 수 있다. 양송 체는 석봉체를 바탕으로 충의의 상징으로 주목된 안진경체를 가미하여 둔중하면서 굳센 필력의 글씨를 썼다. 또한, 주자 서론의 영향을 받아 내면의 수양성을 강조하고 의리정신을 구현하고자 중화미(中和美)를 중시하였다. 한편, 허목은 고문 전서를 바탕으로 더욱 독창성이 강한 창고한 고전을 썼다. 결국 17세기 서예와 서론은 다양성 대신 심화를 택하여 문화적 자존의식과 사대부들의 의식이 반영된 독특한 면모를 드러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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