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3 조선시대의 서예 동향과 서예가
  • 02. 조선시대의 주요 서예가
  • 조선 후기 주요 서예가
  • 9. 이서(李漵, 1622∼1713)
이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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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해서 <동명(東銘)> 중
이서 해서 <동명(東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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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 해서 <위자원휴서(爲子元休書)> 중
이서 해서 <위자원휴서(爲子元休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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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의 호는 옥동(玉洞)이며 이하진의 아들로 서예에 능하였다. 그 는 당시 서예가 본질을 잃었다 여기고 왕희지 <악의론>을 바탕으로 왕희지의 순정함과 중화미를 추구하였다. 그의 서론은 <필결(筆訣)>로 정리되었는데, 이것은 태극음양론을 바탕으로 서예의 본질을 이해하려 한 것이었다. 논리에 다소 무리가 있지만 서예이론을 역리로 설명하려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필결>은 무엇보다도 조선 후기에 활발히 나타나는 문예비평 경향과 함께 나타난 서예비평이론서로 보다 체계적인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서는 <악의론>을 바탕으로 <동명(東銘)>처럼 종전의 단아한 왕희지 해서와는 다른 질박하고 다소 고졸한 미감의 해서를 선보였다. 이것을 후세의 사람들이 ‘동국진체’라 하였는데 바로 왕희지 해서의 진수를 잘 터득하였다는 의미이다. 원교 이광사와 창암 이삼만 등이 이러한 해서를 쓰는 풍조가 생겼으니, 이는 조선 후기 문화가 아(雅)에서 속(俗)으로 미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배경 아래에서 나온 것이다. 이서는 <위자원휴서(爲子元休書)>처럼 광초에도 일가를 이루고 있으며 웅장한 필세와 연면서의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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