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7권 한국 서예문화의 역사
  • 5 한글 서예의 변천
  • 02. 정음 시기: 1443년∼1499년대
  • 한글 창제와 훈민정음
박병천

한글의 본래의 명칭은 ‘훈민정음’이고 창제에 대하여 기록한 책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훈민정음’은 1443년(세종 25) 처음으로 세종대왕이 창제하여 3년 후인 1446년에 널리 반포되어 활용되었다.

훈민정음은 문자 창제를 기록으로 남긴 주요한 문헌으로, 국보 제70호이며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등76) 1997년 10월 1일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등재되었다. 세계문자 역사상 가장 높이 인정되는 자랑스러운 문자이다.

훈민정음이란 말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한문본인 『훈민정음 해례본』을 목판으로 출간하였다. 그 후 1459년에 이를 언해한 『세종어제 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 『월인석보』 제1권 머리 부분에 실려 나왔다. 그런데 훈민정음의 원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500여 년간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다가 1940년에 발견되어77) 1940년 7월 경상북도 안동군 와룡면 주하동 이한걸씨 집에 소장되어 있었다. 단 1권만 간송미술관에 국보로 지정, 소장되어 있다.

세종대왕(1397∼1450)은 훈민정음 창제에 친히 참여하였고, 이에 공이 큰 사람으로 『훈민정음 해례본』 내용의 말미에 기록된 집현전 학자인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 등 8명의 학자가 있다.

목판본으로 간행한 『훈민정음 해례본』은 전체가 33장 66면으로 크기는 가로 21.4㎝, 세로 28.9㎝이다. 『훈민정음 해례본』 문장은 세종대왕의 창제 취지와 한글자모음에 대한 글을 쓴 예의편, 해설과 자모음의 쓰임을 예를 들어 설명한 해례편, 창제자, 참여자, 창제시기, 서체, 서문 등을 쓴 정인지의 서문편 등 3개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에 나오는 한글은 239종 547자이고 한자는 4,771자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였고, 한글 글자에는 성조(聲調)를 나타내는 방점(傍點)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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