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5 서구인 굿을 보다
  • 02.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서구인이 본 무속과 굿
  • 꼼꼼한 무속 관찰자 헐버트
홍태한

조선의 무속에 관해 오늘날에도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유용한 자료를 제시해 주는 것은 헐버트의 『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이다. 이 책 30장의 제목이 「종교와 미신」으로, 헐버트는 한국인들이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혼성물을 이루고 있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취하면서도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멸시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한국인의 종교적 본질을 참으로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헐버트는 불교와 유교에 대해 짧게 설명한 후 한국인이 믿는 실제적인 종교는 무속이라고 제시한다. 한국인들은 신의 존재를 믿을 뿐아니라 그들과 융합하기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고 이야기하면서 많은 여성들이 무당과 판수를 찾아다닌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한국 무속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먼저 신을 초인적인 존재로서의 신과, 죽은 사람의 영혼으로서의 신으로 대별한다. 조상신이 한국 무속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헐버트의 지적은 타당하다. 조상신 중 가장 악독한 것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복수하지 못한 사람의 원혼이라는 것은 한국 무속이 가지고 있는 원혼관을 잘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주요한 무속의 신으로 오방신·지신·서낭·성주·터주를 거론하고 서울 지역에는 노인당·할미당·국사당·용신당 등의 당(堂)이 있음을 지적한다. 할미당은 1970년대 재개발로 인해 사라졌고, 현재는 남산에서 이전된 국사당만 남아있으니 헐버트의 기록을 통해 사라진 서울의 당에 대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헐버트는 굿의 유형을 나름대로 구분하면서 사례를 제시한다. 병굿, 망자천도굿, 매장한 다음에 하는 굿, 역병퇴치굿, 나루에서 행하는 굿으로 나눈 후 상세하게 기술하였다. 병굿에 대한 기록에 나타난 굿하는 모습은 지금 행해지는 병굿과 흡사하다. 특히, 병굿의 마지막에 악신이 나갔는지를 알기 위해 음식을 사방에 뿌리고 부엌칼을 던져 칼날이 밖으로 향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현재 서울지역의 <뒷전거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헐버트의 병굿 기록에는 접신한 무당이 보여주는 의례의 동작과 공수가 그대로 드러난다.

무당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면서 영혼을 부르기 시작한다. 그는 드디어 고조된 흥분에 사로잡히는데 이 때가 되면 옆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그의 몸에 혼이 내려왔다고 믿는다. 그때부터 무당이 하는 말은 그 자신이 하는 말이 아니라 영혼의 말이다. 그는 이제 방금 내려온 영혼의 이름을 부르며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말하는데 대체로 그가 말하는 것은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드디어 영혼이 병 을 낳게 해 줄 것을 약속하면 무당을 얼마동안 미친 듯이 날뛰며 영혼이 물러감을 예시한 뒤에 갑자기 조용해지며 이제까지 보여준 흥분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넘어지거나 거짓 피로한 체 함으로써 자기의 기만을 더 완전하게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서울의 재수굿 <조상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무당에게 내린 조상은 자신이 죽을 때의 정황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뒤로 넘어지거나 통곡하는데 헐버트의 글에 이러한 양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헐버트는 죽은 뒤에 하는 굿을, 망자천도굿과 매장한 다음에 하는 굿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앞뒤 문맥을 따라가며 읽어보게 되면 망자천도굿은 현재도 행해지고 있는 자리걷이(집가심)이다. 망자가 죽은 지 3일 이내에 죽은 자리에서 행해지는 자리걷이는 집안의 부정을 물리고 망자의 미련을 거두어 온전하게 저승으로 떠나가게 하는 의례이다. 헐버트는 정확하게 자리걷이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그의 영혼은 3일 동안 그가 살던 집을 떠나지 않으며 어떤 때에는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죽은 사람의 유족들이 생각할 때에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무당을 불러서 오직 그를 통해 영혼과의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무당이 와서 음식을 마련하고 나면 그의 몸에 혼이 내리지만 춤을 춘다거나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영혼을 그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전하며 그런 뒤에 유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하면 영혼을 멀리 떠난다.

매장한 다음에 하는 굿은 진오기굿으로 보인다. 지금도 망자를 매장한 후 곧장 무당을 불러 진오기굿을 거행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망자를 불러 위로하고 달래고 저승으로 무사히 천도함을 기원해 주는 <영실거리>이다. 영실이라는 말에서 죽은 망자의 혼을 맞아들인다는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망자의 혼이 내리는 모습의 기록은 지금의 <영실거리>와 대동소이하다.

음식을 갖추고 흰 옷을 입은 무당이 얼마 동안 빙글빙글 돌다가 황홀경에 빠지면 죽은 사람의 혼이 내린다. 무당은 그에게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조부모와 여러 친지들을 만나 보았느냐고 물으며 그 밖의 여러 가지를 묻는다. 무당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 사실과 엇갈리라는 데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거침없이 대답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리라고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굿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확실하다.

이미 저승과 이승의 세계로 나누어졌으나 무당을 통해 다시 만난 가족들은 망자가 온전하게 저승으로 잘 갔는 지가 가장 궁금하다. 그래서 저승의 상황을 물어보는 것이다. 진오기굿은 망자를 저승으로 보내는 굿이면서도, 살아있는 이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굿이다. 헐버트가 죽은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고 기록한 것은 진오기굿이 가지고 있는 산 사람 중심의 의미를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진오기굿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사재삼성거리>이다.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역할을 하는 저승사자를 불러들여 후하게 대접하면서 망자를 부탁하는 거리이다. 헐버트의 기록에는 <사재삼성거리>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지금의 사정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무당은 죽은 친지의 재판을 담당한 특별 판관을 불러 섭섭하지 않게 대접한다. 그 판관은 죽은 사람의 사후 새월을 가능한 한 고통 없이 해주리라고 어렵지 않게 약속한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죽은 사람의 집을 보살펴 부는 신을 부른다. 그도 또한, 푸짐한 대접을 받은 다음 집안의 이익을 잘 돌보아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그 신은 그 집안에서 지금 걱정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경고하고 그 재난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알려주는 경우가도 있다.

헐버트는 이어서 천연두를 퇴치하는 역병 퇴치굿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마마배송굿을 연상하게 한다. 천연두 질병이 유행하게 되면 사람들은 천연두신인 마마신을 잘 대접하여 멀리 떠나보내려 한다. 특히, 마마배송굿에서는 다양한 금기가 있다. 천연두를 무사히 잘 넘어서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온 식구가 금기를 행한다.

헐버트의 기록에도 이러한 금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악질이 발생한 지 닷새 째되는 날로부터 식구들은 머리를 빗거나 새 옷을 갈아입거나, 집안을 쓸거나 새로운 물건을 들여놓거나, 나무를 베거나 손톱을 깎거나 콩을 볶거나 수채를 메워서는 안된다. 이러한 일을 하게 되면 환자의 눈이 멀거나 심한 곰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집안에서 누가 바느질을 하면 환자는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낀다. 아울러 조상이나 가신에게 제사를 올릴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역신이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어서이다.

또한, 가족들은 콩을 섞지 않은 흰 쌀밥을 먹어야 한다. 만약 콩을 먹게 되면 환자의 얼굴에 곰보가 생기고, 짐승을 죽이게 되면 환자가 자신의 얼굴을 할퀴어 병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게다가 세탁이나 도배를 하게 되며 환자의 코가 영원히 막혀 버리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 발병한 지 아흐레가 지나면 손톱을 깎거나 벽을 바르거나 짐승을 죽이는 것 이외에는 모든 금기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열사흘 째가 되면 역병이 나간다고 믿는다. 이러한 관념은 지금도 남아있다.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거나 점을 치게 되면 꼭 지켜야 할 여러 가지를 당부하는 것은 일반적인 서울 굿의 모습이다.

헐버트가 기록한 나루에서 행해지는 굿은 일종의 수망굿이다. 즉, 익사한 영혼을 구제하는 굿이다.

무당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해변을 떠난다. 용과 죽은 사람을 위해 물 속에 음식을 뿌리면 무당이 흥분하게 되고 죽은 사람의 혼이 내려 물에 빠져 죽는 시늉을 한다. 그런 다음에 무당은 물에 넣어둔 통나무에 올라와 춤을 추면서 목청껏 소리지른다. 한 시간 쯤 지나 뭍에 오르게 되면 무당은 버드나무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간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헐버트가 다양한 굿을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주로 죽은 사람을 천도하는 굿을 보았는데, 지금도 서울 굿 중 원형을 가장 잘 보전하는 것이 죽음 의례임을 고려하면 그는 제대로 된 자료들을 접했던 것이다.

무속에 대한 언급은 점복에 대한 기술로 이어지는데 여기에서도 헐버트는 산통으로 점치기, 동전으로 점치기, 책을 통해 점치기로 점복의 종류를 나눈 후 기술해 간다. 오행을 바탕으로 한 점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다른 서양인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다.

특히, 헐버트가 한국인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를, 철학에서는 불교를, 어려움 속에서는 무속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도 통용될 수 있는 주장이다. 유교와 불교 및 무속이 서로 다른 층위이면서 상보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굿을 정기적으로 행하는 현대인들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현재 서울 지역에서 행해지는 굿의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들이 은밀하게 행하는 굿임을 이해하는 단초가 된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헐버트가 한국을 이해한 흔하지 않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고종 황제가 한국의 자주 독립을 지지해 달라는 밀지를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이가 바로 헐버트이다. 그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을 미국이 묵시적으로 방조했기 때문이라며 객관적인 시각을 보인다. 이러한 헐버트가 한국의 무속에 대해 상세하기 기록한 것은,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한국 무속에 대한 기술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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