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5 서구인 굿을 보다
  • 03. 무속, 굿 관련 사진과 그림
  • 남산의 국사당과 루이 마렝의 굿 사진
홍태한

인왕산에 옮겨진 국사당의 내부 무신도가 지금과 조금 달랐음은 클라크가 찍은 국사당 내부 사진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이 사진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동일한 사진이 다른 책에는 전등사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만큼 이 사진이 널리 퍼졌다는 의미이다.

국사당 내부의 무신도 위치에 대해서는 그동안 몇 차례 언급되었는데 문화재청에서 간행한 『문화재대관』에서 조흥윤은 국사당의 무신도 위치와 숫자에 변화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처음 남산에 있던 국사당이 지금의 위치인 인왕산으로 옮겨가면서 무신도의 배열과 이름에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클라크의 사진은 그런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새비지는 신당에 대한 중요한 기록을 남긴다. 남산 등성이에 한 두 채의 신당이 있다는 새비지 랜도어의 기록에서 남산에 국사당과 그 부속 신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개성 덕물산에 대한 기억을 종합하면 중간에 최영 장군 신당이 있고 그 옆에 여러 채의 굿을 할 수 있는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덕물산의 이러한 상황을 볼 때 남산에도 국사당 이외의 건물이 있었을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현재 인왕산에 옮겨져 있는 국사당을 다시 원자리에 복원한다면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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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당
국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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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무당이 굿하는 사진을 찍은 것은 흔하지 않다. 물론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의 일괄 조사로 진행된 민속 조사에는 여러 사진이 있지만 서구인들이 찍은 것은 흔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기메박물관에 소장된 루이 마렝(Louis Marin, 1871∼1960)의 굿 장면 촬영 사진은 매우 가치가 높다.

루이 마랭은 1901년 겨울에 조선에 머물렀다고 한다. 보름간 서울에 머물면서 서울과 그 부근에서 사진촬영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 무당굿도 서울 인근에서 열린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사진에서 주목되는 것은 악기이다. 무당 우측의 악사는 장구를 치고 있고, 좌측의 악사는 징, 그리고 서있는 조무는 꽹과리를 들고 있다. 이는 마렝이 머문 서울 지역의 무당굿은 아니다. 전통적으로 서울의 무당굿에는 반드시 피리, 해금과 같은 선율악기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진에는 악사가 없다. 꽹과리는 서울굿에서는 사용하지 않으므로 이는 개성 부근의 황해굿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어쩌면 마렝은 서울을 벗어나 개성까지 진출한 후 무당굿 사진을 찍은 것으로 추측된다. 쾌자를 입고 부채를 든 것으로 보아 <대감거리>가 아닌가 한다. 대감이라면 한창 신명이 오를 때로 오른 거리이다. 대감신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신령 이다. 대감신이 일단 내리게 되면 무당은 다양한 신명 넘치는 동작을 연행하면서 사람들에게 복을 주는 시늉을 한다. 따라서 <대감거리>가 연행될 때에는 무당과 사람들 사이에 격의가 없어진다. 누구나 편안하게 굿판에 개입하는데, 서구인인 마렝도 <대감거리>가 연행되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굿을 보고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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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내력의 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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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마렝의 무당굿 사진
루이 마렝의 무당굿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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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서 무당의 모습에 주목해 보자. 악사와 무당은 나란히 한 줄로 늘어서서 사진기를 바라본다. 굿을 하면서 이런 태도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 이방인이 사진을 찍는 자체가 거북할 터인데 무당은 기꺼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아무리 <대감거리>라 하더라도 무당이 웃으면서 수월하게 사진기 앞에 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 무속이 가지고 있는 열린 세계관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죽어서 신령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무속이다. 그들에게는 신령과 인간의 구분 자체가 모호하다. 살다가 죽어서 한이 풀리면 조상신으로 좌정하는 법이다. 따라서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이 다른 이방인이 사진기를 대었을 때 선뜻 포즈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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