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8권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 5 서구인 굿을 보다
  • 04. 굿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
  • 굿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
홍태한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여러 외국인들의 저작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연구를 통해 현재 행해지는 서울굿이 100여 년 전과 큰 차이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19세기에 간행된 「무당 내력」과 함께 여러 서양인들의 기록을 통해 서울굿의 변화 속도가 매우 느렸음을 알 수 있고, 그 점에서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어난 서울굿의 변화가 얼마나 급격한지를 알 수 있는 것도 부수적인 성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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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내력의 제석거리
무당내력의 제석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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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속을 바라본 서양인들의 시선은 무속에 대한 이해가 아무리 깊다 하여도 역시 낯선 나라의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은 기독교야말로 무지한 조선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최선의 도구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무속을 상세하게 기록한다 하여도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전제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한국 무속은 귀신을 달래기 위한 것이고, 그 귀신은 인간을 해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전제하였으므로 실재 굿을 보면서도 모든 현상을 귀신과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스럽다.

낯설어하면서도 사명감을 가지고 기록을 남기면서 분석하다가, 결국은 왜곡하고 더 이상 무속 연구에 몰두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당시 조선에는 종교다운 종교가 없다면서, 무속이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한다고 하면서도 보다 근원적인 탐구까지 나가지 못하고 있다. 현지 사정에 밝지 않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이 남긴 기록을 검토해 보면, 조선은 수준이 낮은 나라 였고, 여러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결국 외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점에서 그들이 한국 무속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은 개인적인 호기심의 발로였을 뿐 그 이상이 아니었다.

이러한 서양인들과 유사한 시각을 지금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무속을 바라보는 많은 한국인들의 시선을 정리해 보자. 무속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관점의 대부분은 무속이 미신이고, 종교다운 점이 있다 하여도 열등한 종교라는 인식이다. 그들은 무속을 매우 낯설어하고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간주하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무속을 접하게 되면 무속을 관용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주관을 가지고 해석하면서 멀리한다.

무속적인 사고를 밑바탕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표면으로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 굿을 하면서도 자신이 굿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것은 서양인들이 굿을 관찰하는 태도와 흡사하다. 낯설어하면서도 관찰하고 결국은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왜곡하는 서양인들의 시선이 현재 무속을 바라보는 많은 한국인들의 시선과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래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급박한 경우에는 무속에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무속을 하나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신의 주관을 표현하는 서양인의 시선이 오히려 긍정적이다.

그들은 굿판에 참가하여 관찰을 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태도를 보였다. 책으로 간행하면서는 자신의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현장에서는 그러한 자세를 자제했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강릉단오굿이 열릴 때 그 앞에서 시위를 하는 기독교 신자들의 모습, 심지어는 강릉단오제가 폐지될 때까지 단식기도를 하겠다는 어느 목회자의 시선보다는 보다 객관적이다.

서양인들이 100여 년 남긴 기록을 보면서 무속을 바라보는 시 선이 지금의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닮았음을 거듭 느낀다. 한국 무속이 한국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고 판단했다면, 최소한 그것이 가진 의미는 규명되었어야 하나, 어디에서도 그런 노력 없이 무속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왜곡된 시각을 보인다. 신기한 물건 정도로 한국 무속을 바라보다가 어느 선에 이르면 자신의 시각으로 무속을 왜곡해 바라보는 많은 한국인들의 시각과 닮았다. 그래도 서양인들은 한국 무속을 최소한 접근하려는 자세는 보였지만, 과연 지금의 한국인들은 무속에 접근하고 그 이면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지는 의문이다.

100년 전의 국제 질서와 지금의 국제 질서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이럴때 무속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 서양인들처럼 한국 무속을 하나의 관찰 대상으로만 여기면서 본질을 왜곡하는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인가, 그래서 한국적인 것은 모두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 문화의 기반이라 할 무속 연구를 위해 왜곡된 시선을 바탕으로 한 서양인들의 기록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 것의 가치를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시각은 지금도 존재한다. 문화 절대주의 입장에서 자신의 종교만을 고집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모습은 낯선 나라에 들어와서 그 나라의 문화를 비록 자기 중심적인 시각이기는 하지만 열심히 기록한 서양인들보다 못하다. 한국 역사에 존재하는 인물상을 우상 숭배라 하여 훼손하고 있으며, 문화예술 축전으로 열리고 있는 여러 지역의 마을굿 행사장 앞에 와서 미신숭배 행위 금지를 주장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 문화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암시를 해준다.

서양인들이 한국 문화를 낯설어 하면서도 분석했고, 이를 왜곡했 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문화를 부정하지 않고 바라보려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한국인이 아닌 이방인으로 한국 문화를 거리감을 가지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름대로 당시의 무속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아울러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들이 남겨 놓은 기록은 당시 한국 무속의 모습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 문화 속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도리어 우리 문화를 훼손하고 남의 문화를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한국 문화를 문화로만 바라보면 될 터인데 그들은 한국 문화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그 주관적인 의미망을 바탕으로 이를 왜곡한다.

100여 년 전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을 검토하면서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한국 문화를 파괴하는 여러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서양인들이 가진 시선과 같은 시선을 지금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서양인들이 가지고 있던 인문과학적 태도만큼은 수용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서양인들이 남겨 놓은 자료에 대한 꼼꼼한 고찰이 필요하다. 시야를 넓혀서 무속뿐만 아닌 민간 신앙 전체에 대한 검토를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진 자료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사진은 의외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신윤복의 풍속화 하나만을 가지고도 상당한 무속 정보를 얻을 수 있듯이 사진 속에 담겨있는 다양한 정보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19세기 한국 문화의 모습을 재구성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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