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를 내면서
천득염

건축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 사람에 의하여 쓰여지는 공간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활동이 건축을 이루는 기본요건이 된다. 인간의 삶은 그가 살고 있는 공간과 살아왔던 시간의 관계에 영향을 받아서 발전한다. 또한, 특정지역의 건축문화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활동의 과정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건축형태나 성격은 그 지방의 자연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인간이 경험한 여러 가지 인문·사회학적 현상과의 연관관계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그 지방의 기후·지리·재료 등은 건축을 형성하는 자연적인 조건이 되고, 한 민족의 풍습, 종교, 역사 등은 건축을 형성하는 인문적인 조건이 된다.1)건축 문화 형성에 영향을 크게 준 요소들을 Banister Fletcher가 자연적인 것과 인문적인 것으로 구분한 이래 한국건축사의 초기연구자들인 정인국과 윤장섭, 주남철 교수 등도 대부분 이러한 입장을 따르고 있다.

건축의 출발은 자신의 보호처를 구축하기 위한 인간의 본능적 행위인 건축행위라는 뿌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원시시대에 사람들이 아주 미개하고 지극히 단순한 생활을 하였을 때부터 생성하고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건축행위가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진흙과 나무 가지로 집을 만들고 기능적으로 각각 다른 실들을 마련하는 등 신비스러울 정도로 안전하고 편하며, 또한 나름대로 아름답게 자신들의 몸을 보호할 피난처를 만들고 있다. 제비는 지푸라기와 진흙을 물어다 집을 짓고, 까치는 나뭇가지로 집을 짓는다. 개미와 두더지는 땅속에 굴을 파서 집을 구축하고, 벌은 무수하게 많은 육각형을 모아 벌집을 짓는다. 게는 소라껍질을 이용하여 집을 대신하고 있으며, 비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와 과학적인 방법으로 수중의 요새를 구축하여 집으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원시적인 건축행위들은 공학적 이론에도 적합한 방법이며 본능적인 건축행위는 오히려 과학적이고 인위적인 계획이론을 능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인간은 각 시대마다 여러 종류의 도구나 방법으로 인간의 생활기능을 충족시키려고 노력하여 왔으며 그 결과 적절한 형태의 건축이 태동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원시인은 혹독한 기후와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굴이나 커다란 돌, 나무와 같은 자연 지형 및 지물에 약간의 인공을 가한 곳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 지형물을 건축이라고 할 수 없고 구석기 이후 수많은 시간이 흘러 인간의 인지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건축형식이 발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석기를 거쳐 신석기시대에 들어서자 종족이 분화되고 농경방법을 알게 되자 정착생활을 하게 되며 인간 생활에 필요한 건축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인간의 본능적 활동으로 시작된 건축은 인류문명이 발생한 곳은 어디에서나 나타났지만 모두 같은 형태나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나일 강, 중국의 황하, 인도의 갠지스 강 등지를 비롯하여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모습의 시원적 건축이 지역적 환경에 따라 생성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발전하여 왔다. 즉, 건축을 에워싸고 있는 자연 환경적 요인과 인문 환경적 요인에 의하여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에 적응하면서 만들어낸 건축물들은 장구한 세월을 지나면서 퇴화와 생존의 과정을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장 완전한 형태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을까? 인류가 도구를 사용하여 지구상에 살기 시작한 것은 300만 년 전부터이고 한반도에서 타제석기를 생산도구로 쓰기 시작하던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이 50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 전기부터이다.2)김원룡, 『한국고고학개설』, 일지사, 1977. 인류학적으로 그들은 현재의 사람들과는 달랐을 것이고 당시에는 소위 인간의 지혜로 만들어진 건축이라고 할 구조물이 없었을 것이다. 즉, 큰 돌이나 나무, 동굴 등 자연물에 의탁하여 춥고 더운 날씨나 비바람, 맹수로부터 자신들의 몸을 보호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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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인간은 한 곳에 머물러 살았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이때 당연히 사람이 살 주거 건축이나 가축의 축사가 필요하게 되었을 것이고 저장을 위한 시설이나 원시적인 신앙이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축조된 건축이라고 할 만한 것은 기원전 5천년 경인 신석기시대부터이며 이것이 바로 수혈주거라고 부르는 움집이다. 이 움집은 일반적으로 땅속으로 일부가 들어가고 가운데에 화로(火爐)가 있는 둥그런 바닥을 이루고 그 위에 원추형의 지붕 이 얹혀 지는 지극히 단순한 모습이었다.

그 후 움집의 둥그런 바닥은 네모난 바닥으로 바뀌고, 실의 규모도 커지며 남녀가 따로 사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없었던 벽이 생기고 기둥 위에 보가 짜이고, 그 위에 지붕이 올라가는 건축형식이 발달하여 우리나라 목조건축의 근간을 이루었다. 이러한 지극히 단순한 목조가구형식은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 나타나는 건축수법으로 시원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공통성을 지니나 지역의 환경에 따라 세부적으로는 서로 다른 형식이 나타난다.

결국 이러한 목조 가구형식은 2천년 가까이 한국의 전통건축으로 정착되고 발전되면서 이어져 내려오다가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러 개항이 되고 서구 열강과 일제가 한국을 침탈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위 한국의 전통건축과 일본식 건축, 그리고 서양식 건축이 혼재된 양상을 보이다가 1970년대 이후 산업화로 우리의 삶이 서구식으로 변화되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서양식 건축 형식으로 대체되었다. 벽돌과 콘크리트, 철근과 유리 등 새로운 건축 재료로 지어진 높은 건물이 우리에게 소개되었고 무비판적으로 이를 수용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전통 건축이 지니는 민족적 정통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기능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국제주의적 건축 문화가 만연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전통건축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이며 세계의 건축문화 속에서 한국적 정서를 찾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왜 필요하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흔히 우리의 전통 건축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우리 건축이 다른 나라의 건축에 비하여 남다른 특성이 있고 우수하며 아름다운 것일까? 무엇이 아름답고 우리 건축다운 것인가?

일찍이 한민족의 역사를 논할 때 반도라는 지리적 성격과 외세에 침략 당한 사실을 강조하여 사대성(事大性)과 주변성(周邊性), 정체성(停滯性)으로 민족적 열등감을 조장한 일제 식민사관을 만든 학자들이 있었다.3)이기백, 『한국사신론』, 일조각, 1989. pp.1∼5. 이는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일본인 학자들과 이에 동조하는 한국인 어용학자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물론 한민족의 역사는 잦은 외세의 침탈을 당한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로 입었던 상처나 일본 군국주의에 의한 굴욕적인 식민지 경영 등의 민족적 수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주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우리의 고유한 전통 문화는 왜곡되거나 위축되고 값싼 일본 문화와 서구 문화가 이 땅을 휩쓸어 문화예술 전반에도 식민지적 잔재와 무국적성의 문제를 낳았다. 더욱이 한국 전통건축을 언급할 때 우리의 건축이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하여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표현되거나 마치 속국적인 건축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건축은 재래건축을 되풀이하는 조선시대 건축의 연장이라거나 일본과 한국의 것이 혼합하여 절충된 양식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었다.4)이경성, 『한국근대미술연구』, 동화예술선서, 1975, pp.71∼78 ; 정인국, 『한국 건축 양식론』, 일지사, 1974, p.1.

또한, 해방 후 세계 각국과의 문화교류가 활발해지고 예술로서의 건축에 대한 인식이 대두하면서 단순, 명쾌한 외관을 갖고 있는 국제주의 양식이 적절한 평가도 없이 범람하게 되었다. 그러나 민족적 시련기가 지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찾자는 시대적 요청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민족적 정체성의 확보를 위해 새로운 사관의 정립, 한국학 연구, 문화유적의 조사, 발굴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우리 전통건축의 의미 찾기이다. 그간 1980년대 초까지 대학에서 조차 한국 전통건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한반도 내에서 한민족에 의하여 수천 년 간 이루어진 건축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너무나 시급하고 당연한 과업이었는데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한국의 건축문화는 바로 한국인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형성한 건축문화이며, 한국과 이웃한 중국의 건축문화나 일본의 건축문화, 나아가 세계의 다양한 건축문화와 다른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독특한 특성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한국인이 살고 있는 국토의 독특한 자연풍토와 한국의 정치·사회제도, 한국인들의 독특한 조형의식, 조형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5)주남철, 『한국 전통 축에 나타난 미적특성, 미의식, 미학사상』, 한국미학시론,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7, p.121.

한국건축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장구한 세월동안 동·서양을 막론한 여러 나라에서 나타난 건축 활동을 역사적으로 서로 비교·고찰함으로써 과거의 건축문화가 어떤 모습을 띠었던가를 이해하고 현재의 위치와 사명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건축에 대한 방향과 지표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건축문화를 고찰할 때에는 과거의 건축에 관한 사실과 자료들을 적절하게 선택하여 이것을 그 시대의 정신과 이념 및 심미적, 기능적, 기술적인 관점에서 연대순에 따라 역사적으로 체계화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6)윤장섭, 『한국의 건축』,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8, p.2

한국의 전통건축이라는 학문이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영역은 광범위한 분야에까지 확대된다. 흔히 고고학분야에 속하는 선사주거에서부터 시작하여 도성 건축(都城建築), 분묘(墳墓), 사찰 건축, 주거, 유교 건축, 탑과 부도, 돌다리 등의 석조 미술 등 거의 모든 유형적 유구가 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의 고건축에 대한 조사 및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일본인 학자들에 의하여 시작되었는데,7)米田美代治, 藤島亥治郞, 衫山信三, 關野 貞 등의 학자들이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연구는 순수하게는 건축사적 탐구이지만, 한편 일제에 의한 강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념의 제공이라는 양면성을 지닌다. 반면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우현 고유섭(又玄 高裕燮)에 의하여 한국 미술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그는 일본인들에 의해 다소 왜곡된 우리의 얼과 우 리의 미를 탐구하여 그 본질을 밝히는데 노력하였다. 이는 어쩌면 식민사관에 입각한 축소지향적인 한국건축의 이해에서 벗어나 우리의 참된 면모를 찾고자 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한국 문화 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할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해방 후 한국건축사에 대한 연구는 한국인 건축사학자들인 정인국·김정기·윤장섭·주남철·김동현·장경호 등에 의하여 선각자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아무튼 한국의 전통건축을 연구하는 한국건축사는 이제까지 미술사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어 오다가 우리의 고건축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일어나고 고건축에 대한 조사, 발굴, 연구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근래에 들어 새로운 학문분야로 정리되어 가고 있으며 그 가치도 인정받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통건축은 그 시대적 생활상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연구한다는 것은 대단히 의의가 있는 일이며 전문가가 아닌 건축애호가들에게도 권장해 볼 만한 탐구의 대상이라 할 것이다. 또한, 근래에 우리 문화에 대한 탐구열이 일고 자동차 문화의 도래와 함께 답사여행이 유행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하다 할 것이다. 더욱이 참살이와 지속가능한 웰빙형 생태주거를 원하는 현대인들의 바람은 결국 우리의 전통주거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 동안 발표된 한국건축사 관련 저술들은 왕조의 변천에 따른 통시적 방법을 견지하여 왔다. 여러 종류의 건축들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동시에 정리하다 보니 체계적이지 않고 다소 혼란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본서는 한국의 전통건축에 관심이 있는 초보자나 전통문화 애호가들을 위한 기초적인 내용을 담는 기본서 역할을 해야겠다는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한국의 전통건축이 지니는 내재적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였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전반부에서 한국건축사 연구의 역 사와 의미에 관한 기초적인 내용을 다루었으며, 후반부는 한국건축문화사의 주제별 내용을 정리하기로 기획하였다. 즉, 한국건축문화사 연구의 의미(천득염)와 주거 건축과 마을(한필원), 불교 건축(서치상), 유교 건축(김지민), 궁궐 건축(이강근) 등으로 나누어 정리하였다.

따라서 여러 필자가 나름대로의 기준을 갖고 집필된 본서는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부족한 점이 많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전통건축을 알기 쉽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니 만큼 이에 대한 기대도 크다는 생각을 금치 못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들이 책을 출간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언제나 자신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고 또 기존의 연구에서 어떻게 자유스러울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집필자들이 이런 기회에 의미있는 일을 해 보자는 의지를 모았으며 그 결과가 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책 출간의 기회와 많은 사진자료를 제공해 주신 국사편찬위원회와 장득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서는 여러 분들의 냉정한 가르침을 기대한다.

2011년 10월

저자들을 대표하여 천득염 쓰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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