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1 한국 건축의 변화 양상
  • 03. 한국 전통 건축의 특성
  • 자연과의 조화
천득염

한국의 전통건축은 부지의 선정에서부터 건축의 형태에 이르기 까지 여러 가지 부분에서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에 적응하였던 흔적을 쉽게 볼 수 있다. 어느 민족이 자연을 거스르며 건축을 하겠는가? 라는 역설적인 주장도 있겠지만 우리 건축에서 유난히 특징적으로 보이는 모습이다.41)윤장섭 교수와 주남철 교수는 자연과의 조화를 우리 건축의 특징이라고 하였으나, 김광현 교수는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현상이지 특별히 강조할 부분은 아니라고 하였다. 건축물의 위치를 잡는데 있어 지세에 잘 적응하도록 하였으며, 건축물의 모습도 배경이 되는 주변의 경관과 어울리게 하여 자연의 세를 억누르고 자연과 대항하여 경쟁하듯이 이루어진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히, 풍수지리사상을 중요시하여 현세의 건축인 집(陽宅)을 정할 때나 죽은 후의 분묘인 유택(幽宅, 陰宅)을 마련할 때도 풍수설의 이치에 순응하도록 하였다. 풍수설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그 당시의 상식이요 과학이었다고 생각된다.42)윤장섭, 『한국의 건축』,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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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 산과 어울리는 초가지붕
노년기 산과 어울리는 초가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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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반도 국가이다. 우리나라의 풍토, 비의 양과 바람의 속도, 추위와 더위에 적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전국토의 70% 가량을 이루는 산지가 많고 산이 뾰쪽하게 높지 않은 노년기 산의 모습을 지닌다. 따라서 건축의 배경이 되었던 완만한 지형을 이루는 산의 모습은 초가의 지붕 등의 건축형태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어 곡선이 주된 의장의 요소가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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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지 않은 부재의 사용 구례 화엄사 구층암 승방
다듬지 않은 부재의 사용 구례 화엄사 구층암 승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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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계획을 할 때에도 인위적인 기교를 쓰지 아니하였으며, 자연적인 미를 나타내도록 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아름다운 지붕의 곡선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건축 재료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자연에서 채득한 나무와 흙, 돌을 주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재료가 지니는 자연 본래의 특성을 잘 살려서 쓰는 경향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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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벙주초방식
덤벙주초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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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석을 이용한 덤벙주초방식이나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에서 이와 같은 특성이 잘 드러나고 있으며, 기둥을 다듬을 때도 자연적인 형상에 따라서 다듬게 되므로 때에 따라서는 기둥하단 일부에 원목의 자연적인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사용한 경우가 정교하게 잘 지어진 건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들보와 문지방을 위로 굽은 자연스러운 부재를 사용하여 수직하중을 받쳐주는데 유리하게 하였고 공간을 더 넓게 이용하는 현명함도 보여주었다. 또한, 아름답게 휘어진 우미량, 부드럽게 완만한 곡선을 이 루는 솟을합장, 원형의 통재를 사용한 서까래 등 여러 곳에서 이러한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재료의 가공과 자연의 상태로 된 부재를 사용한 것은 자연과의 조화를 조형의 근본으로 한 것임을 보여준다. 즉, 인공의 가미를 절제한 무작위적이고 무기교의 자연미를 나타내는 기법이 한국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한층 더 하는 의미 있는 특징이라 하겠다. 작위가 적고 인간적 이지와 기교가 크게 작용한 것이 아니어서 어느 점에서는 어수룩한 면도 있을지 모르나 순박한 면이 있어 매우 친근감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43)우리 건축은 거칠면서도 아름다움을 지닌 자연과 잘 조화되어 무기교의 자연미를 지닌다고 표현한 이는 고유섭으로 일본인 柳宗悅 역시 유사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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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의 배경이 되는 자연경관 창덕궁 후원의 정자인 부용정
정자의 배경이 되는 자연경관 창덕궁 후원의 정자인 부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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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전통 정원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식재를 함에 있어 늘 푸른 나무들을 심지 않고 철 따라 움트고 잎이 무성하고 낙엽지면 눈꽃이 만발하는 활엽수들을 심는다. 이것은 사계절이 분명하여 계절의 흐름에 따라 수경과 경관을 변화시킴으로써 자연스러운 정원을 꾸미려고 하는 조형의식의 발로이다. 서양의 자수정원, 일본의 석정(石庭)이나 나뭇가지를 잘라 인공적인 수형을 만드는 전지(剪枝) 등의 인위적인 가꾸기는 가급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한국 전통 조성의 기법이자 특징이다.44)주남철, 『한국건축사』,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0, p.20.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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