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9권 삶의 공간과 흔적, 우리의 건축 문화
  • 3 정신세계의 통합공간 불교건축
  • 01. 정신세계의 혁명
  • 미망으로부터의 탈피
서치상

4세기 중엽 중국에서 전해진 불교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 무렵의 불교 교리는 삼라만상이 무상하고 실체가 없으며 모든 것이 인과 연의 관계로 얽혀져 있다는 정도로 단순했다. 그러나 처음 접하는 이 새로운 원리는 자연현상과 인간세계에 대해서 의문하고 분별함으로써 모호한 원시적 환상으로부터 깨어나 순정하고 자명한 원리로 단숨에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주만물의 생성과 소멸, 인과관계, 생과 사, 그리고 사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었다. 수천 년 동안 지속하던 샤머니즘과 미개한 습속의 미망으로부터 탈피하는 정신세계의 일대 혁명이었다.

불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지배체제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다. 그 무렵 국가체제로의 발전이 늦었던 신라는 물론이고 고구려나 백제도 여전히 씨족집단에 의한 분립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부처와 그의 가르침을 향한 귀의적 신앙형태는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와 흡사한 구도로 여겨졌다. 새로운 신앙형태가 권력구도로 치환되면서 원시적 씨족체제의 전통에서 왕권 중심의 지배체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씨족세력은 극단적으로 반대했고,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도 그런 상황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법흥왕을 중심으로 한 신흥세력은 불교 공인과 함께 율령을 반포함으로써 국가조직을 정비하고 중앙집권적 체제를 확립했다. 불교의 전파는 새로운 정신세계의 통합을 낳고, 나아가서는 강력한 왕권 중심의 지배체제를 확립함으로써 비약적인 국가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은 콘스탄티누스가 A.D. 312년의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 전투 때 기독교도의 종교적 자유를 약속함으로써 정적 막센티우스를 패퇴시키고, 그 자신도 기독교로 개종함으로써 로마제국의 유일 황제가 된 것과 흡사했다. 비슷한 시기 동·서양에서 각기 새로운 종교의 공인에 의한 지배체제의 변혁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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