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1 선사시대사냥의 문화-사냥감에서 사냥꾼으로-
  • 03. 구석기시대 인류와 사냥: 사냥꾼으로
  • 옛사람들은 어떠한 동물들을 사냥하였을까?
조태섭

구석기시대의 오랜 기간 동안 점점 발달하는 사냥도구와 사냥방법으로 옛사람들은 어떠한 짐승을 잡아먹었을까? 이 문제는 유적에서 발견되는 동물의 뼈를 가지고 해석하여 볼 수 있다. 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동물 화석은 그 유적에서 살았던 옛사람들의 생활, 즉 주위의 환경에서 살아있던 동물을 잡아먹고, 소비하는 활동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아주 다양한 짐승들이 구석기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다. 여기서 확인되는 짐승들 가운데에는 옛코끼리·쌍코뿔이·하이에나·원숭이·털코끼리 등 지금은 더 이상 우리나라에 살고 있지 않은 종들도 있고, 사슴·노루·호랑이·너구리·말·소 등 최근까지 이 땅에 살고 있는 짐승들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짐승들이 각각 살았던 주위의 자연환경이 달랐기 때문에, 이들을 통해 우리는 당시의 기후 환경조건도 추정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옛코끼리·원숭이·하이에나가 나오는 유적은 더운 기후 시 기에 형성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털코끼리·털코뿔이·들소들이 출토되는 유적은 추운 기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많은 온대성 짐승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전반적으로 구석기시대 기후는 매우 춥거나 덥지 않은 온대성의 기후가 오래 지속되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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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동물상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동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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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다양한 짐승들이 모두 당시의 사람들에게 사냥되고 소비된 짐승이었는지는 오래전부터 많은 의문이 제기된 문제이다. 예를 들어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사나운 짐승들은 송곳니와 어금니, 그리고 발가락뼈 같은 몇 개의 뼈들만 나타나고 있으며, 옛코끼리와 매머드도 상아와 다리뼈 일부만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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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의 뼈대 부위별 분포
구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동물의 뼈대 부위별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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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당시에 살았던 것은 확인되나 과연 사람들의 사냥의 결과로 유적에 남겨졌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분석되는 방법이 출토된 짐승들의 뼈대 부위별 분포를 살펴보는 것이다. 다음의 그림은 우리나라의 구석기시대 동굴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3종류의 짐승의 뼈대 부위별 출토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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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한 순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옛사람들
사냥한 순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옛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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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는 각 짐승별로 출토되는 뼈대의 부위가 서로 다른데, 이 차이점으로 우리는 각 짐승들의 사냥 여부와 소비 패턴을 고찰해 볼 수 있다. 먼저 사슴의 경우 개체의 모든 부위의 뼈가 거의 모든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옛사람들이 이 짐승을 멀리 떨어진 사냥터에서 사냥을 한 뒤 통째로 옮겨온 다음 여러 소비 행위를 하였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말의 경우는 출토되는 부위가 앞다리, 뒷다리와 머리뼈에만 국한되어 있어서, 이 짐승의 경우는 사냥을 한 뒤 다리 부분만 일부 유적으로 옮겨와 소비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호랑이의 경우에는 다른데, 발견된 뼈대의 부위는 송곳니 등의 이빨과 손가락뼈, 발가락뼈 등에 국한되고 있다. 이 부위의 뼈들은 당시 사람들이 이 짐승을 사냥하고 소비하였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대형의 식육류의 송곳니는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치레거리로 즐겨 쓰이던 이빨들이며, 손가락, 발가락의 작은 뼈들은 짐승의 가죽을 이용할 때 남은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옛사람들이 이 호랑이를 사냥하거나 소비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이 사나운 맹수를 잡으려면 자기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각오를 해야만 하였을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의 구석기 유적에서는 어떤 짐승의 뼈들이 많이 나오는가?

그동안 조사된 구석기시대의 동굴 유적에서 출토되는 동물 화석의 짐승별·부위별 분석의 결과는 매우 흥미롭다. 각 유적마다 전체 동물 화석의 뼈대의 수를 계산하고 이를 분석하여 산출된 최소뼈대수(NISP, Number of Identified Specimen)의 대부분은 사슴과 짐승의 뼈들이다. 예를 들어 청원 두루봉9굴(65%), 해상동굴(78%), 청청암동굴(82%), 용곡동굴(89%), 상시바위그늘(87%) 그리고 단양 구낭굴(97%) 등에서 이 짐승의 뼈가 월등하게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 옛사람들의 주된 사냥감은 사슴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점유율은 후기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단양 구낭굴의 제3층의 경우에서 보듯이 출토된 동물 화석의 거의 대부분인 97%가 사슴의 뼈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 시기 사람들의 사냥이 무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짐승에 집중된 계획되고 선택적인 사냥을 하였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와 비슷한 경우가 유럽에서도 나타나는데, 유럽의 후기구석기시대에 집중적으로 사냥되었던 짐승은 사슴과에 속하는 순록이었다. 각 유적별로 90% 이상의 최소뼈대수 점유율로 나타나서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구석기유적에서 사슴과 짐승이 차지하는 비중과 유럽의 구석기 유적의 순록이 점유하는 비율을 비교해 볼 만하다.

실제로 사슴과에 속하는 짐승들은 구석기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사냥감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초식성의 온순한 동물인 이 짐승을 잡다가 죽을 염려는 없는 것이다. 곰이나 호랑이 등의 맹수들의 사냥은 자기의 목숨을 걸고 하는 사냥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잡은 사슴 개체의 모든 부분은 당시 사람들에 의해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었다. 먼저 살코기와 기름은 식용으로 쓰고, 가죽은 옷으로 사용되고, 그리고 뿔과 뼈는 연모의 좋은 재료로 이용되었다. 이러한 최상의 대상인 사슴을 사냥한 사람들은 이 짐승을 통째로 삶의 터전으로 옮겨와 도살, 해체, 분배를 하였을 것이다. 사슴이야말로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최상의 사냥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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