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2 왕조의 중요한 국책사업, 사냥
  • 02. 삼국시대의 사냥
  • 수렵 방법
정연학

『삼국사기』에는 왕의 수렵 참가 사실을 단편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동물을 사냥하였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벽화의 수렵도를 보면, 수렵 도구에 따라 활에 의존하는 기마사냥, 창을 주로 쓰는 도보사냥, 매를 이용한 매사냥, 몰이꾼과 사냥개를 이용한 짐승몰이 사냥 등으로 구분지어 볼 수 있다.14) 전호태, 『고분벽화로 본 고구려 이야기』, 풀빛, 2001, p.30.

<표> 고구려 벽화에 보이는 수렵 방법15) 朝鮮畵報社, 앞의 책.

벽화 사냥방법 짐승 비고
무용총 수렵도 활사냥 호랑이, 사슴, 여우  
안악 1호분 활사냥, 매사냥 매, 꿩, 사슴  
덕흥리벽화 활사냥 호랑이, 산돼지, 꿩  
약수리벽화분 활사냥, 몰이사냥 호랑이, 사슴, 곰 사냥 규모가 가장 큼, 활(맥궁), 소리화살 보임
장천 1호분 활사냥, 매사냥, 개사냥, 창사냥 꿩, 멧돼지, 사슴, 노루  

수렵 대상은 주로 호랑이와 사슴이며, 그밖에 곰이나 멧돼지, 꿩 등도 보인다. 호랑이는 가죽을, 사슴과 꿩은 산천신(山川神)들에게 바 치는 천금(薦禽)으로, 멧돼지는 육식용으로 잡았다. 안악 제3호 무덤 고깃간 그림에는 사슴과 멧돼지가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당시 빈번하게 수렵이 이루어졌음을 나타낸다. 한편, 문헌에 ‘쏘았다’라는 기록은 활과 화살을 이용한 수렵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매사냥도 이미 시작되었다. 매사냥은 마치 고려 때 원나라로부터 전해진 수렵방식으로 오해를 하지만, 삼국시대에도 매사냥은 성행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천진공(天眞公)의 매를 혜공(惠空)이 잘 키운 이야기와16) 『삼국유사』 권4, 義解5, 二惠同塵. 혜공이 장성하여 公의 매를 기르는데, 공의 뜻에 꽤 맞았다. 처음에 공의 아우가 벼슬을 얻어 外方에 부임할 때 공에게 청하여 (좋은) 매를 골라 治所로 가져 갔다. 하루 저녁에 공이 갑자기 그 매가 생각나서 날이 밝으면 助를 보내어 가져오게 하리라 하였다. 조가 이미 먼저 알고 잠깐 동안에 매를 가져다가 새벽에 바쳤다. 공이 크게 놀라면서 깨달아 (그때야) 바로 전날에 종기를 고친 일이며, 모두 헤아릴 수 없음을 알고 이르기를 “내가 至聖이 우리 집에 의탁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狂言과 예의 없이 욕을 보이었으니 그 죄를 무엇으로 씻으리요. 이후로는 導師가 되어 나를 인도하여 주시오.”하고 내려가 절하였다. 靈異가 이미 나타났으므로 마침내 출가하여 이름을 바꾸어 惠空이라 하였다. 신라 제54대 경명왕(景明王, 917∼924)이 매사냥을 갔다가 산에서 잃어버리자 신모(神母)에게 기도(祈禱)하여 매를 되찾은 이야기가 전해진다.17) 『삼국유사』 권5, 感通7, 仙桃聖母隨喜佛事. 신라 제54대 경명왕(917∼924)이 매사냥을 갔다가 산에서 잃어버리자 神母에게 “매를 (다시) 얻으면 爵을 봉하리라.”고 하였더니, 갑자기 매가 날아와서 机 위에 앉았기에 대왕의 작을 봉하였다. 심지어 경명왕은 매를 찾아준 신모에게 대왕(大王)의 작을 봉할 정도로 매를 무척 귀하게 여기었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579∼632)은 ‘매(鷹)와 사냥개(犬)를 놓아 꿩과 토끼를 잡았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당시에 매사냥은 물론 사냥개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냥개에 대한 언급은 견훤이 태조에게 보낸 서신에서 보인다.18) 『삼국유사』 권2, 紀異2.

곰도 중요한 수렵 대상이었고, 『삼국유사』에는 장수사(長壽寺)가 생기게 된 유래담에도 곰 수렵에 대한 내용이 간접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불국사를 지은 김대성(金大城)이 어느 날 토함산에 올라가서 곰을 잡고 산촌에서 유숙(留宿)하였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하여 자기가 환생하여 김대성을 잡아먹겠다고 일러주었고, 김대성은 두려워하여 용서를 청하였다. 귀신이 용서해 주는 대신에 자신을 위해 불사를 지워줄 것을 청하였고, 김대성은 동의한 후 곰을 잡았던 그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워 주었다.19) 『삼국유사』 권5, 孝善9, 大城孝二世父母 神文代.

곰을 잡은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적고 있지 않지만, 과거 강원도 산간지역이나 지리산 등지의 곰 수렵 방식대로 ‘벼락틀(덫)’ 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또는 곰이 다니는 통로에 웅덩이 함정을 만들어 곰을 수렵하였을 것이다. 장수사는 경남 함양에 소재하고 있으며, 현재는 일주문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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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덫 정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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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덫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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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덫 후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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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덫 전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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