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2 왕조의 중요한 국책사업, 사냥
  • 02. 삼국시대의 사냥
  • 사냥 시기 및 장소
정연학

사냥은 주로 음력 2∼4월, 7∼10월에 행해졌다. 즉, 초겨울에서 봄, 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 수렵이 이루어졌고, 3·4·7·9·10월에 집중적으로 행해졌다. 그런데 봄보다 초겨울에 수렵이 가장 많이 이루어진 것은 농사의 수확 시기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근·현대 민간에서 이루어진 수렵도 농사를 마치고 눈이 내리는 겨울철에 한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여름철에는 사냥 건수가 보이지 않는 데, 이는 날씨 등 기후 환경이 열악한 것도 원인이지만 짐승들이 새끼를 가진 시기이므로 사냥을 금지하였다.

<표> 월별 사냥 건수

왕조
1 2 3 4 5 6 7 8 9 10 11 12
고구려     4 4     9 3 6 3   2
백제   1 2 3     3 2 6 8 2 1
신라   1 1       1 1   3 1  
합계   2 7 7     13 6 12 14 3 3

『삼국사기』는 수렵기간이 ‘5일이 넘게’ ‘7일이 넘게’라는 식으로 오랜 기간 수렵을 한 경우를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당시의 수렵 기간이 5일 이내에서 이루어졌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그러나 삼국의 왕들 가운데는 달을 넘게 장기간 수렵을 한 경우도 있다. 백제 고이왕(234∼286)은 부산[釜山, 현 진위(振威)]에서 50일 동안 사냥하고 돌아왔고, 진사왕(辰斯王, 385∼392)은 393년 10월에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이 고구려에 함락 당하는 상황에서도 구원(狗原)에서 10일이 넘게 수렵을 하다가 행궁에서 병사하였다. 신라 내해왕(奈解王, 196∼230)도 2월에 사냥을 갔다가 달을 넘겨 3월에 돌아왔다. 왕의 장기간의 수렵에 대해 사서에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고, 상소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수렵 장소의 지명은 현재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고구려왕들은 주로 기구(箕丘)·질양(質陽)·질산(質山)·왜산(倭山)·민중원(閔中原) 등지에서 수렵을 하였다. 백제왕들은 한산(漢山)·구원(狗原)·사비(泗沘, 부여)·횡악(橫岳) 등지에서, 신라왕들은 도성의 남쪽, 동쪽에서 수렵을 하였다. 한편, 고구려 동명왕(東明王, B.C. 37∼B.C. 19)은 만주 동가강(佟佳江) 유역의 비류국에서 수렵하였다는 기록이 있음을 미루어 보아 만주 지역도 고구려의 중요한 수렵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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