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2 왕조의 중요한 국책사업, 사냥
  • 04. 조선시대의 사냥
  • 수렵 방법
  • 3. 매
  • 응방(鷹房)과 응사(鷹師)
정연학

응방은 고려와 조선 때 매의 사육(飼育)과 매사냥을 맡아 보던 관청이다. 조선시대의 응방은 중국에 송골매를 진상하기 위하여 설치하였고, 응방의 규모도 3패, 좌응방, 우응방 등으로 규모가 컸는데, 이는 궁궐에 기르는 매의 숫자가 많기 때문이다. 매사육은 가을에 송골매(松骨鷹)를 얻어 훈련시키고, 겨울을 나고 따뜻한 봄을 기다려서 매를 놓아 사냥을 한다. 응방은 성종 5년에 한때 폐지하였으나173) 『성종실록』 권46, 성종 5년 8월 6일 무자. 매사냥은 줄곧 계속되었다. 연산군은 응방을 좌·우 응방(鷹坊)으로 나누고, 두 응방에 각각 갑사 정병을 400명씩 배정하고, 50명씩을 부장(部長) 한 명으로 통솔하게 하였다.174) 『연산군일기』 권53, 연산군 10년 5월 29일 무오.

한편, 병조에는 응패(鷹牌)를 만드는 일을 맡았는데, 응패는 나라에서 매를 기르고 사냥을 할 수 있는 사람의 표시로, 종친(宗親)·부마(駙馬)·공신·무관 대신에게 나누어 주었다.175) 『태종실록』 권15, 태종 8년 3월 24일 계유.

대궐 안에서 매를 기르는 일을 맡는 곳을 내응방(內鷹坊), 사냥하는 매를 기르는 사람을 내응사(內鷹師)라고 부른다. 응사는 매를 부려 사냥을 하던 사복시의 관원으로,176) 『세종실록』 권41, 세종 10년 8월 4일 계미. 각 지역에도 별도로 그 인원을 선정하고 관리하고, 응사의 명부를 적은 문부를 조정에 올렸다.177) 『단종실록』 권5, 단종 1년 2월 4일 신묘. 응사는 3패로 나누어 번갈아 궁중과 제사 등에 쓸 금수를 잡아서 바치고, 정호에서 선발하였다.178) 『단종실록』 권5, 단종 1년 2월 4일 신묘. 응사는 매를 잡아서 훈련시키는 일도 맡았는데, 성종 때는 응사를 체아직으로 하고 급료를 지불하였다.179) 『성종실록』 권279, 성종 24년 6월 2일 갑자. 응방의 응인들은 매사냥의 정도에 따라 상벌을 받았다.180) 『세종실록』 권6, 세종 1년 11월 3일 계묘 ; 『단종실록』 권13, 단종 3년 2월 10일 병술 ; 단종 3년 2월 11일 정해 ; 『세조실록』 권22, 세조 6년 10월 9일 신해 ; 『문종실록』 권12, 문종 2년 2월 28일 임진.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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