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4 포수와 설매꾼
  • 02. 사냥꾼의 유형과 실제
  • 민간 사냥꾼
  • 2. 설매꾼
심승구

민간의 사냥꾼 가운데에는 썰매를 타고 짐승을 잡는 사냥꾼이 있었다. 이를 ‘썰매꾼’이라고 하였다. 썰매는 원래 ‘설마(雪馬)’에서 비롯한 말이다. 눈 위에서 달리는 말이라는 뜻으로 ‘설마’라고 불렀지만 민간에서는 설마를 ‘썰매’라고 부른 것이다.520) 『선조실록』 권33, 선조 25년 12월 무신. 설마는 마치 소를 잡아 끄는 쟁기와 같다하여 ‘파리(把犁)’라고도 하였다. 또한, 나막신과 비슷하다고 해서 ‘목극(木屐)’이라고도 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까지 함경도 지역에서는 썰매를 ‘파리’로, 썰매꾼을 ‘파리꾼’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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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피(눈신발)
설피(눈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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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간지역에는 겨울철만 되면 폭설로 바깥 나들이가 어려웠다. 허리춤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고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왕래하거나 사냥을 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 었다. 이 같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이 고안해 낸 것이 설피(雪皮, 눈신발)와 썰매였다. 설피와 썰매의 기원은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근까지도 설피와 썰매는 산골 주민들의 유일한 이동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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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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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썰매에는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하였다. 그 하나는 두 개의 대나무로 말을 만들어 타는 오늘날 스키(Ski)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나무판 밑을 철사나 쇠붙이를 붙여 만들어 타는 오늘날의 썰매의 형태이다. 전자를 ‘눈썰매’라고 한다면, 후자는 ‘얼음썰매’라고 하였다. 서양의 스키가 우리 나라에 소개되기 전까지 스키 형태와 얼음썰매 형태를 모두 ‘설매(雪馬)’라고 부른 것이다.

특히, 눈썰매는 겨울철 사냥에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기록이 적혀있다.

우리나라 북쪽 변방에는 겨울철이 되면 사냥에 설마(雪馬)를 이용한다. 산골짜기에 눈이 두껍게 쌓이기를 기다려서 한 이틀 지난 후면 나무로 말을 만드는데, 두 머리는 위로 치켜들게 한다. 그 밑바닥에는 기름을 칠한 다음에 사람이 올라타고 높은 데에서 아래로 달리면 그 빠르기가 날아가는 것처럼 된다. 곰과 호랑이 따위를 만나기만 하면 모조리 찔러 잡게 되니 이는 대개 기계 중에 빠르고 이로운 것이리라.

북쪽 변방에서 겨울철에 사냥꾼이 설매를 이용해 곰과 호랑이 사냥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북쪽 변방이란 평안도와 함경도의 산간 지역을 말한다. 이 곳 사냥꾼들은 겨울에 눈이 쌓이면 나무로 썰매를 만드는데, 앞의 두 머리를 위로 치켜 올리고 밑바닥에 기름칠하였다. 썰매에 올라 끈으로 발을 묶은 후 높은 곳에서 내려 달리면서 곰이나 호랑이를 만나면 날카로운 창으로 찔러 잡는 형식이었다. 평상시와 달리 눈이 쌓인 곳에서 곰이나 호랑이가 빠르게 움직이지 못한 점을 이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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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썰매꾼
강원도 썰매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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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복이 편찬한 『성호사설유선』에 따르면, 북쪽 지방이 함경도의 삼수·갑산으로 확인된다. 또한, 이규경(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성호사설』과 비슷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북쪽 지방에 사냥꾼이 설마를 탄다. 설마(雪馬)를 일명 ‘목극(木屐)’이라고 한다. 매년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면 설마 달리는 소리가 심한 천둥소리 같아 호랑이가 이 소리를 들으면 감히 달아나지 못하고, 이어 창에 맞아 죽는다.

위의 기록은 『성호사설』의 내용과 일치한다. 다만, 설마를 ‘목극’이라고 부른 점이 특이하다. 목극은 곧 나막신을 뜻하는데 아마도 설마의 형태가 마치 나막신과 같다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눈 위에서 설마를 달리는 소리에 호랑이가 놀라 창에 맞아 죽는다는 내용이 흥미롭다. 이와 같이 썰매는 북방의 겨울철 사냥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썰매를 타고 호랑이나 곰사냥을 하는 사냥꾼을 ‘썰매꾼’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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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근, 『조선풍속도』 곰
김준근, 『조선풍속도』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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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우리나라 썰매의 우수성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문헌통고』에 상고하니, “북쪽 지방에 있는 발실미(拔悉彌)라는 나라에는 눈이 많이 내린다.521) 옛날 몽골 이북의 한 나라로 ‘拔悉蜜’이라고도 하였다. 사람들이 늘 나무로 말을 만들어 타고 눈 위에서 사슴을 쫓는데 그 모양은 방패[楯]와 흡사하다. 머리는 위로 치켜들게 만들고 밑에는 말가죽을 대고 털을 내리 입혀서 눈에 닿으면 잘 미끄러지도록 한다. 신발을 튼튼히 단속한 다음, 올라서 타고 언덕으로 내려가게 되면 내달리는 사슴보다 더 빨리 지나갈 수 있다. 만약 평지에서 다니게 되면 막대기로 땅바닥을 찌르면서 달리는데 마치 물에 떠나가는 배와 같다. 언덕으로 올라가려면 손에 들고 다닌다.”고 하였다. 그것이 아마 우리나라의 썰매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밑에다 털을 내리 입힌다는 것은 기름을 칠하는 것보다 못할 것이다.522) 이익, 『성호사설』 제6권, 萬物門 雪馬.

성호는 중국의 문헌을 통해 몽골의 북방 지역에 있던 발실미 나 라에 있던 썰매를 확인하고 조선의 썰매와 비교하였다. ‘발실미’에서는 사슴을 잡기 위해 나무로 방패[楯] 모양의 설매를 만들고 머리는 치켜세우고 말가죽을 대고 털을 입혀 달리게 하였다. 스키형태의 썰매가 아니라 빙판 위에서 타는 썰매 형태로 이해된다. 썰매는 이처럼 두 개의 널판 위에 올라 타는 스키 형태와 네모난 널판에 올라 타는 오늘날의 얼음썰매 형태로 구분된다.523) 썰매에는 건축의 용구에서도 물건을 실어나기 위한 형태가 있었다(『화성성역의궤』). 후자의 경우 평지에서는 막대기로 땅바닥을 찍으며 움직였다. 툰드라 지역에서는 눈이 녹아도 이끼가 남아 있어 막대로 땅을 찍어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썰매가 그 밑바닥에 기름칠을 하는 것이 털이나 가죽을 대는 발실미 썰매보다 휠씬 낫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의 남아있는 설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스키라고 불리는 스포츠 용구와도 같은 종류다. 바로 이러한 설매를 타고 곰과 호랑이를 잡기 위한 겨울철 사냥에 나섰던 것이다. 눈 속에서 곰이나 호랑이가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여 빠른 설매를 타고 달리며 날카로운 창으로 곰이나 호랑이를 찔러 잡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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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용 얼음썰매
놀이용 얼음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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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당 이집(1584∼1647)의 『택당집(澤堂集)』에 따르면, 강원도 지역에서 썰매꾼이 썰매를 타고 짐승을 사냥하는 모습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봉래산에 세 길 높이 눈이 쌓이면 …… 앞 뒤로 치켜 올려 마치 배를 탄 듯, 두 개의 막대기를 황금 채찍으로 삼네. 산위로 서서히 몰았다가 질풍처럼 하산하며 고사목 사이로 꺽어 들며 피하네. 갈곳 모르는 토끼와 포효하는 늙은 호랑이, 멧돼지와 외뿔소는 감히 도망가지 못하네, 싱싱한 짐승 을 잡아 들고 저녁에 돌아오니 어찌 먹일 걱정과 도둑 걱정이 있겠는가.

위의 기록에 나온 봉래산은 곧 금강산이다. 금강산에서 겨울철에 썰매를 타고 두 개의 막대기를 채찍 삼아 산위에서 내리달리며 요리조리 꺽어 들며 놀란 호랑이를 비롯한 짐승을 잡는 모습이 잘 묘사되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썰매에 1개의 장대가 아니라 2개의 장대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썰매는 지역마다 타는 방법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것은 눈썰매의 형태도 차이가 난 것으로 보인다. 함경도 썰매는 길고 좁으며 강원도 썰매는 짧고 넓은 것이 특징이다.

그 까닭은 함경도 썰매는 사냥하기에 편리하도록 고안됐고 강원도의 경우에는 급한 경사 때문에 이동하기 쉽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썰매는 두 가지 형태 모두 썰매 판에 4개의 구멍이 있어 끈으로 신발을 고정시켰다. 썰매의 방향과 속도는 막대로 하였는데, 오늘날과 달리 하나의 막대기로 사용한 점이 특이하다. 함경도나 강원도 등의 산간지역에서 겨울철 썰매꾼의 명성은 컸던 모양이다. 당시 호랑이를 어찌나 잘 잡았는지, ‘호랑이가 썰매꾼들만 보면 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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