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40권 사냥으로 본 삶과 문화
  • 5 사냥의 의례와 놀이
  • 02. 사냥에서 행하는 산신제
  • 사냥터에서의 산신제
임장혁

사냥을 한 이후에 산신에게 바치는 풍속은 아주 오래되었는데, 이와 관련해서 『동국이상국집』에 기록이 남아 있다.

주몽은 금와왕의 아들 7명 및 종자 40명과 사슴 사냥에 나섰다. 왕자들은 겨우 한 마리 밖에 못잡았음에도, 주몽이 혼자 여러 마리를 잡자 그를 나무에 묶어두고 사슴마저 빼앗아 갔다.

주몽이 사냥에서 잡은 흰 사슴을 거꾸로 매달고 일렀다. “하늘이 만일 비를 내려서 비류왕의 도읍을 물바다로 만들지 않으면 너를 놓아주지 않겠다. 이 곤경을 면하려면 하늘에 호소하여 비가 오도록 하라” 이어 주문을 읊조리자, 사슴이 슬피 울더니 비가 이레 동안 쏟아져서 소양의 도읍이 물에 잠기고 말았다. 주몽은 갈대로 꼰 줄을 급류에 건너지르고 오리말을 탔으며, 백성들도 그 줄을 잡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주몽이 채찍으로 물을 치자 물이 줄어드는 것을 본 송양왕이 마침내 항복하였다.531) 이규보, 『東國李相國集』.

여기서 나타나는 ‘흰’ 사슴은 신령이 깃들인 사슴을 가리킨다.532) 사슴은 지상과 천상을 매개하는 은혜를 갚는 상상의 동물이다. 사슴뿔은 나뭇가지 모양이고, 봄에 돋아나 딱딱한 각질로 자랐다가 이듬해 봄에 떨어지고 다시 뿔이 돋는다. 이러한 순환기능과 나무를 머리에 돋게 하는 대지의 영생력을 갖춘 영물로 여겼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사슴은 호랑이와 함께 중요한 사냥감이었고, 신라 왕관도 나무·날개·사슴뿔 모양이다. 이러한 이유로 고구려에서는 매년 3월 3일 국가적으로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사슴이 슬피 울자 비가 내린 까닭도 이에 있다. 신라 박혁거세 신화의 흰 닭이나, 천마총의 백마도 마찬가지이다. 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산신에게 바쳐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풍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533) 김광언, 앞의 책, 2007, p.26.

사냥꾼은 사냥을 통해 동물을 잡으면 산신에게 감사하는 의미로 산신제를 지낸다. 짐승을 잡는다는 것은 산신이 자신의 소유물인 동물을 내어 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에 당연히 짐승을 잡은 자리에서 산신에게 감사하는 산신제를 지낸다.

산신에게는 잡은 짐승의 혀, 귀 또는 심장을 떼어내어 나뭇잎에 싸서 손이 없는 방향을 택해서 산신에게 바친다. 노루나 돼지를 잡은 때는, 그 자리에 귀와 혀를 끊어서 가랑잎에 싸고 젓가락과 함께 ‘손이 없는 방향’에 놓는다.534) 김광언, 앞의 글, 1969, p.51. 경기도 여주에서는 그물로 노루를 잡으면, 귀와 코를 베어 높은 쪽에 놓고 이렇게 빈다. “유세차 사파시게 남산부중 해동은 조선국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덕평리의 산신령님은 고라니를 내주셔서 잘 먹겠습니다. 또 잡게 해주시오.” 총이나 창도 세워 놓고 산신에게 절을 두 번 올린다. 이러한 신앙은 매우 철저해서 “호랑이도 사람을 잡으면 머리를 바위에 올려놓아서 산신에게 바친다.”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창으로 멧돼지를 잡으면, 싸리 꼬챙이에 고기를 셋 또는 다섯 조각을 꿰고 황덕불에 슬쩍 익혀서 산신에게 바친다. 이 꼬챙이는 셋이나 다섯 개 마련한다. 강원도 북부에서는 잡은 짐승의 고기를 그 자리에서 구워서 올린다.

때로는 산신제를 지낼 때에는 잡은 짐승의 머리를 산 정상 방향으로 놓고, 사냥 도구를 가지런히 놓고 죽은 짐승에 대해 애도를 표하기도 한다. 사냥꾼들은 항상 억울하게 피를 흘리고 죽은 짐승이 원혼을 갖고 자신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 산신제를 지내는 것은 죽은 동물의 영혼이 산신에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사냥꾼은 흔히 짐승을 잡으면 그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올무에 걸린 노루가 앵앵거리고 울면, 올무꾼이 그 앞으로 가서 자기 소리로 ‘땅’하고 소리를 낸 뒤에 거둔다. 이로써 노루는 총에 맞아 죽는 것이 되므로, 자기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이다.535) 김광언, 앞의 책, 2007, p.352.

함경북도 산간 지대에서는 곰을 잡으면 사냥꾼이 엉엉 우는 시늉을 내면서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셨습니까?”하고 애달픈 소리로 중얼거린다. 곰의 혼이 뒤따라와서 해코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예부터 곰을 신성한 동물로 여겨왔다. 단군신화에서 인간으로 변한 곰이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과 결혼하여 겨레의 시조인 단군을 낳는 존재로 등장한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이 때문에 사냥꾼들은 곰을 잡으면 곰의 영혼이 앙갚음을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었다. 따라서 곡을 하는 목적은 창이나 총이 실수를 저질러서 잡았을 뿐이며, 사냥꾼 자신도 이를 매우 슬퍼한다는 뜻을 보이려는 데에 있다.

이러한 풍습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시베리아에서도 나타난 다. 동시베리아의 알타이족은 곰을 잡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어째서 돌아가셨나요.”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고 슬피 운다. 곰을 인간과 동일한 존재로 같은 조상으로 여기는 관념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시베리아에서도 나타난다. 수렵민의 곰에 대한 특별한 신앙은 대부분 비슷하다.

조선시대 말기만 해도 사냥꾼이 호랑이를 잡으면 그 고을의 산신령을 잡았다는 죄목으로 수령이 볼기를 형식적으로 세 차례 때리는 것이 관례였다. 태형으로 세 차례의 매를 맞고 나서, 호랑이 크기에 따라 닷 냥에서 20∼30냥의 상금을 받았다. 민간에서도 맹수의 왕인 호랑이야말로 산에 사는 신령이라고 믿었으며, 이들의 탄생지라고 일컫는 백두산을 영산으로 꼽았다. 무신도의 하나인 산신도에 산신이 호랑이를 심부름꾼으로 거느린 모습으로 등장하는 까닭도 이에 있다. 사냥꾼 가운데 멀리서 지나가는 범이나 표범이 눈에 띄기만 하여도 고개를 숙이고 “영감님 가만히 지나가시오” 중얼거린다. 이들을 산신으로 여기는 까닭이다.536) 김광언, ‘사냥’,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p.755.

함경북도 북부 산간지대에서는 범뿐만 아니라 여우·족제비 따위를 신성한 동물로 여겨서 잡는 것을 삼갔다. 잡으면 산신령이 화를 내어 탈을 입는다는 것이다. 여우나 족제비는 그 모습이 불길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옛이야기에 여성으로 둔갑한 여우가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매사냥꾼들도 산신제를 지낸다. 수알치들은 매가 꿩을 잡을 때마다 꿩의 혀와 죽지를 빼어서 손이 없는 방향에 꽂아 놓고 산신에게 감사의 제례를 올린다.

경상북도 금릉에서는 길들인 매의 첫 사냥을 ‘방우리 붙인다.’고 하며,537) 김광언, 「사냥 및 채집」,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4 경상북도편,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4. 강원도 홍천에서는 ‘매손 붙인다.’고도 이른다.538) 김광언, 「수렵 및 채집」,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8 강원도편,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77. 경상북도 금릉에서는 처음으로 꿩을 잡으면 매를 부리며 사냥을 하는 수할치가 그 자리에 침을 뱉은 다음, 꿩의 혀를 빼어 가시나무에 걸어놓고 절 을 서너 번 올리며 이렇게 읊조린다. “생키 긴상하나이다(산꿩 진상합니다). 본산 산신령이나 어느 산신이나 안 위하리까 이산 저산 양산 각산 지산 산신령님네 수알치 몰이꾼이나 나무도리대서 펄펄 뛰게 점지하고 꿩을 날러거든(날리거든) 매 버렁 밑으로 펄펄 날라들게 점지해 주소서.” 하고 읊조린다.539) 김광언, 앞의 책, 1974.

강원도 인제에서는 꿩을 잡을 때마다 날개 죽지와 꽁지깃을 하나씩 빼어 그 자리에 꽂아 놓고 “신령님, 산짐승이나 사람이나 손톱 발톱 다치지 않고 꿩이나 많이 잡게 해주소서.”라고 빈다. ‘손톱과 발톱’은 매의 것을 가리킨다. 강원도 북부 지방에서는 “매 눈에 영기가 돌고, 꿩 눈에는 탈맹이가 씌우게 해 주십시오.” 읊조린다.540) 김광언, 앞의 책, 1977. 탈맹이는 눈동자가 하얗게 변해서 시야가 캄캄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따라서 꿩의 시야가 흐려져서 매가 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꿩 사냥이 잘되기를 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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