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학
고려 시대의 과학과 기술학은 유학과 한문학에 비하여 비교적 천시되었지만, 국자감에서도 율학, 서학, 산학 등의 이른바 잡학이 교육되었다. 또, 과거에서도 기술관 등용을 위한 잡과가 실시됨으로써 과학과 기술학이 발전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중간 계층이 많이 참여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천문학과 역법이 발달하였는데, 사천대(뒤에 서운관)에서 천문 관측과 역법 계산 등을 맡았다. 고려에서는 천체의 움직임 그 자체뿐만 아니라, 천재지변을 인간 행동의 훈계로 삼기 위하여 천문 관측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목적하에 정확한 역법 계산법이 발달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신라 때부터 쓰기 시작하였던 당의 선명력을 그대로 계승하였으나, 충선왕 때에는 원의 수시력을 채용하였고, 공민왕 때에는 명의 대통력을 사용하였다.
고려 기술학에 있어서 괄목할 만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이미 대장경 간행에서 보았듯이, 목판 인쇄술은 전기부터 크게 발달하였고, 중기 이후에 금속 활자가 발명되어 활판 인쇄가 발전하였다. 고종 때에는 금속 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하였는데(1234), 이는 서양에서 금속 활자가 사용된 것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상정고금예문은 오늘날 전하여지지 않고 있지만, 다행히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경이 남아 있어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으로 공인되었다. 고려 말에는 금속 활자의 사용이 활발해져서, 공양왕 때에는 서적원을 두어 주자와 인쇄를 맡아 보게 하였다.
의학은 지방 학교에 의박사를 두었고, 중앙의 태의감에서도 의생을 교육하였으며, 과거에도 의과를 실시함으로써 발전을 보게 되었다. 또, 개경에 약국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발전에 따라 향약구급방 등의 의서가 나오게 되었다.
고려 말에 최무선은 중국의 화약 제조법을 배워 왔다. 그는 화통도감의 설치를 건의하고 여기에서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였으며, 이를 이용하여 진포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였다.
건축과 조각
고려 시대의 예술은, 고려 귀족 사회의 특성이 반영되어 귀족적이며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였다.
건축에 있어서는, 개경에 만월대 등의 궁전과 현화사, 흥왕사 등의 많은 사찰을 건립하였다. 당시의 목조 건축물로는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등이 현재 남아 있다. 그 중에서 봉정사 극락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건축물로 알려져 있으며, 부석사 무량수전은 고려 건축의 주심포 양식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장중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 고려 말에 건립된 석왕사 응진전은 원의 영향을 받은 다포 양식으로, 중후하고 장엄한 건축물로 유명하다.
고려 시대의 석탑은 대체로 안정감을 주지 못하여 조형 감각면에서는 신라 시대의 석탑보다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지만, 오히려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 자연스러운 면을 보여 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고려 시대의 석탑은 신라 계통에서 이탈하여 여러 가지 형식의 것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고려 전기의 대표적 석탑은 현화사 7층 석탑, 월정사 팔각 9층 석탑 등이다. 특히,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은 송대 석탑의 모형을 받아들인 것으로, 고려 시대의 다각 다층 석탑을 대표하고 있다. 후기의 대표적 석탑으로는 경천사 10층 석탑이 유명한데, 이는 원의 영향을 받은 이색적인 석탑 형태로,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원형이 되었다.
승려들의 묘탑인 부도는 고려 시대에 들어와 조형 예술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특히, 선종의 유행과 관련하여 장엄하고 수려한 부도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구례의 연곡사지 북부도, 공주의 갑사 부도, 여주의 고달사지 원종대사 혜진탑 등이 팔각 원당형의 기본 양식을 지닌 우수한 걸작으로 알려 져 있다. 한편, 팔각 원당형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탑신이 구형으로 되어 있는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 평면 방형으로 된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등은 특수한 형태의 걸작이다.
불상의 경우, 재료면에서는 석불과 금동불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철불 제작도 유행하였다. 그러나 그 제작 수법에 있어서는 신라 시대에 비하여 다소 뒤떨어지는 경향이 있고, 인체 구성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 분방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국초에는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이나 개태사지 석불 입상과 같이 거대한 불상이 만들어지기도 하였지만, 이들 불상은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고, 제작 수법이 거칠어 미적 감각이 뒤지고 있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불상으로는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들 수 있다.
공예
고려 시대의 공예는 귀족들의 생활 도구와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불구 등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고려 공예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것은 도자기 공예였다. 고려자기는 신라 토기의 전통을 계승하여 초기적 발전을 이루다가, 송의 자기 기술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귀족 사회의 전성기인 11세기경에 고려자기의 독특한 미가 완성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선을 강조하는 순수 청자가 발달하였고, 후에는 고려의 독특한 기법인 상감법이 개발되어 상감 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강화에 도읍한 13세기 중엽까지 상감 청자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공예는 원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퇴락하게 되었다. 고려 청자는 연한 푸른 하늘색인 비색의 아름다움, 각종 모양과 장식이 조화를 이루는 우아한 형태, 그리고 음각과 양각 및 상감법에 의한 독특한 무늬가 어우러져 세련된 미를 창출해 낸, 고려 시대 귀족 문화의 대표적인 예술품이다.
상감 기법의 발달에 따라 청동기 바탕에 은으로 장식 무늬를 넣은 은입사의 기술이 크게 발달하여, 청동 은입사 포류 수금무늬 정병과 향로 같은 걸작품이 남아 있다.
그 밖의 공예로서 불교의 발달에 따라 범종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수원의 용주사 종, 해남의 대흥사에 있는 탑산사 종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서, 신라 시대의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또, 불경을 넣는 경함, 화장품갑, 문방구 등에 자개를 붙여 무늬를 내는 나전 칠기 공예가 발달하여 조선 시대를 거쳐 오늘에 전하고 있다.
서화와 음악
고려 시대 전기의 서예는 왕희지체와 구양순체가 유행하였는데, 특히 귀족들에게는 간결한 구양순체가 환영받았다. 대표적인 서예가로서는 유신, 탄연, 최우를 명필로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신라의 김생과 더불어 신품 4현이라고 일컬어졌다. 후기에는 구양순체보다는 조맹부의 우아한 송설체가 유행하였는데, 충선왕 때의 이암이 뛰어났다.
회화는 왕실과 귀족들의 취미 생활로 발달하였는데, 도화원이나 화국을 설치하고 화원을 두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인종 때 예성강도를 그린 이령과 그의 아들 이광필이 유명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하지 않고 있다. 후기에는 문인화가 유행하였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다. 고려 시대의 그림으로는 공민왕이 그렸다고 하는 천산대렵도가 전해져 당시의 화풍을 보여 주고 있다.
그 밖에, 고려 후기에 그려진 불화 중 혜허의 양류 관음상이 일본에 전해 오고 있는데, 장엄하고도 화려하여 불화 중에서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또, 부석사 조사당의 사천왕상과 보살상이 유명하다.
음악에 있어서는 신라 시대 이래 우리 나라 고유의 음악인 향악이 발달하였으며, 동동, 대동강 등의 곡이 유명하였다. 향악기로는 거문고, 비파, 가야금, 대금, 장고 등이 있었다. 한편, 송에서 수입된 중국 고전 음악인 대성악이 궁중 음악으로 발전하여 아악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