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에는 유교, 불교와 함께 도교도 성행하였다. 불로장생과 현세의 구복을 추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도교는 여러 가지 신을 모시면서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빌며 나라의 안녕과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였다. 그리하여 도교 행사가 자주 베풀어졌고, 궁중에서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초제가 성행하였다. 예종 때 도교 사원이 처음 건립되었고, 이 곳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하늘과 별들에 제사를 지내는 도교 행사가 개최되었다.
도교에는 불교적인 요소와 도참 사상도 수용되어 일관된 체계를 보이지 못하였으며, 교단도 성립하지 못한 채 민간 신앙으로 전개되었다. 국가적으로 이름난 명산대천에 제사 지내는 팔관회는 도교와 민간 신앙 및 불교가 어우러진 행사였다.
풍수지리설은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도참 사상이 더해져 고려 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개경과 서경이 명당이라는 설이 유포되어 서경 천도와 북진 정책 추진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한편, 이러한 길지설은 개경 세력과 서경 세력의 정치적 투쟁에 이용되어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의 이론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다. 문종을 전후한 시기에는 북진 정책의 퇴조와 함께 새로이 한양 명당설이 대두하여 이 곳을 남경으로 승격시키고 궁궐을 지어 왕이 머무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