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가 국가의 기반을 다지고, 이 토대 위에서 후삼국을 통일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태조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마침내 통일을 달성하였다. 통일을 위해 태조가 추구한 정책의 방향은 다음과 같았다.
태조는 건국 직후부터 북방 진출을 꾀하여 북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나라 이름도 옛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으로 고려라 하였다. 태조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평양)을 중시하여 이 곳을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삼았다. 태조는 이 곳에 자주 들러서 북방 지역을 순시하고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또, 고구려의 영토를 차지한 거란을 무도한 나라로 여기고 적대시하였다. 이러한 북진 정책은 뒤에 압록강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태조는 지방 세력을 포섭하기 위하여 호족과 혼인 관계를 맺기도 하고, 그들에게 관직과 토지를 주거나 성씨를 내리는 등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리고 민족 통합을 위하여 다양한 지방 세력을 지배 세력으로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는 통일 신라뿐만 아니라, 옛 고구려나 백제 출신의 지방 세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태조는 발해의 유민들까지 적극적으로 포섭하였고, 이들을 고려의 지배 세력으로 참여시켰다.
태조는 불교, 유교, 도교, 풍수지리설 등 다양한 사상이 공존하게 하는 정책을 펼치고자 하였다. 또,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되 그대로 따르지 말고 우리의 풍속에 맞게 수용하라고 하여, 개방적이면서 도주체적인 관점에서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려 하였다.
발해 유민의 포섭
고려 태조는 발해 세자 대광현이 수만 명의 발해 유민을 이끌고 망명해 오자 ‘왕’씨 성을 내리고 후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