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도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정조는 즉위하자 곧 규장각을 설치하여 자신의 권력과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 기구로 삼았다. 규장각에 수만 권의 책을 갖추어 두고, 젊은 학자들을 모아 학문을 연구하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규장각은 정조 시대의 문예 부흥과 개혁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정조는 정국 운영을 군주가 주도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왕권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에 정조는 친위 부대로 장용영을 설치하고, 수원에 화성을 쌓았다.
정조는 강화된 왕권을 바탕으로 민생 안정과 문예 부흥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폈다.
경제적으로는 농업을 발달시키고, 상업 활동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광산 개발을 장려하였다. 이로써 상공업이 크게 발달하였고, 서울의 인구가 늘어나 도성 밖 곳곳에 새로운 마을이 형성 되었으며, 한강에는 많은 배들이 드나들면서 포구가 늘어났다. 문화적으로는 ‘대전통편’, ‘동문휘고’, ‘탁지지’, ‘규장전운’ 등 수많은 책을 편찬하였다. 이 밖에 서얼과 노비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제도와 운영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영조와 정조의 개혁 정치로 정치⋅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고 민생 또한 다소 넉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