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총설 -한국사의 전개-
  • Ⅱ. 원시공동체의 사회

Ⅱ. 원시공동체의 사회

 한국의 역사는 舊石器時代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으로 되어 있다. 물론 구석기시대에도 사람들은 일정한 사회를 이루고 살았음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현재 그 사회의 실상을 알 수 있을 만큼 고고학적인 조사·연구가 이루어져 있지가 못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新石器時代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신석기시대의 사회상은 고고학적인 조사·연구와 후대의 문헌에 나타난 신화·전설·유습 등을 종합해서, 현대의 미개사회에 대한 인류학적인 연구와 비교해 보면 대체의 윤곽을 짐작할 수가 있다.

 B. C. 8000년경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는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은 한 마을을 단위로 하고 살았었다.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조상에서 핏줄기를 이어받은 血緣 중심의 사회였는데, 이를 보통 氏族이라고 불렀다. 斯盧의 六村 같은 것이 그 구체적 예가 되겠다. 이 씨족은 여러 家族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岩寺洞을 위시한 각지에서 발견되고 있는 신석기시대 집자리를 통해서 이를 알 수가 있다. 그 집자리의 크기로 보아 당시의 가족은 성인 부부가 2∼3명의 자녀를 거느리고 사는 核家族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들 가족으로 구성된 마을 단위의 씨족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서 중대한 일들을 씨족회의에서 결정하였다. 또 씨족은 자급자족하는 경제적인 독립체여서, 일정한 영역 안에서 사냥·고기잡이·농경 등의 중요한 생산활동을 행하였는데, 그것은 씨족원의 공동작업이었다. 그러므로 씨족사회에서는 그 구성원 전체가 동일하게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씨족은 기본적으로 씨족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폐쇄적인 사회였다. 그러나 이웃 씨족과 교역도 하고, 또 결혼의 상대를 다른 씨족에서 구하는 族外婚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인구의 증가로 인해서 씨족이 분열되어 나가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계로 해서 가까운 사이에 있는 씨족들이 연결해서 部族이라는 보다 큰 사회를 이루게 되었다. 6촌이 모인 斯盧는 원래 그 같은 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족의 사회적 구성 원칙은 씨족과 마찬가지였다. 가령 부족 전체의 일을 氏族長會議에서 결정하였는데, 사로의 六村長會議 같은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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