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3. 인류학적 특성
  • 5) 도시인의 주거지역과 생태적 특성
  • (2) 상층의 고급주택ㆍ아파트 주거지역

(2) 상층의 고급주택ㆍ아파트 주거지역

 호화롭고 널따란 고급주택이 들어선 상류층의 주거지역에서는 집집마다 대문에 ‘개조심’ 또는 ‘猛犬注意’라는 팻말을 붙여놓고 있다. 높다란 담 위에는 삐죽삐죽한 사금파리나 쇠꼬챙이를 박아놓음으로써 보통 사람은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도록 차단한다. 그래서 아래윗집이 3∼4년을 이웃하여 살아도 피차간에 인사도 없고 냉랭하게 지내기가 일쑤다. 이런 지역에서는 어느 집에나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자가용 자동차가 있어서 시장도 멀리서 보기 때문에, 구질구질한 구멍가게나 잡화상, 두부장수 그 밖의 서민 주거지역에서 볼 수 있는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어른들만 이웃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아이들까지도 골목에 나와서 이웃 친구들과 함께 뛰노는 일이 거의 없다. 서로 얼굴을 마주치는 경우조차도 드물다. 집집마다 가정부가 있으니 김장을 담글 때 이웃의 도움이 필요 없고, 집을 비울 염려가 없으며, 어린애를 보아달라고 부탁할 일도 없다. 별식이라고 이웃간에 나누어 먹지도 않는다. 아무튼 상층의 고급주택 주거지역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하나하나가 중간층의 서민 주거지역이나 하층의 빈민 주거지역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주거형태의 면에서 상층 사람들의 계층적 상징은 호화맨션 대형아파트라는 또 하나의 새로운 주거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강변의 고층맨션 아파트지대는 특이한 생태적 조건을 가지고, 이웃과 단절된 상태에서 고립주의와 상업주의 냄새를 가장 짙게 풍기고 있다. 성냥갑처럼 벽으로 칸막이된 집집은 한 건물 속에 함께 살면서도 서로 모르고 지내며, 온갖 일용잡화도 전화로 배달시키고 들어앉아 살기 때문에 더욱 폐쇄적이다. 이러한 상층 아파트 주거지역의 생태를 특징적인 것만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파트 주거지역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빈번한 주거지의 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아파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민들의 54% 가량이 2∼3년 안에 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이사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주민들 중에서 또 54% 가량이 다시 아파트로 이사하겠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038)金麟,<아파트의 實態와 아파트住民의 意識 및 行態에 관한 硏究>(≪都市問題≫12-2, 1977), 41∼74쪽. 이처럼 아파트 생활자들은 한곳에 오래 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한강변의 어느 아파트지역을 묘사한 김용운의 현장소설≪외인들≫에서 이삿짐센터 운전기사의 말을 빌리면 12층 높이의 고층아파트 단지에서 “육천 세대에 가까운 이곳 주민들은 한 달이면 삼백여 세대, 하루 평균 열 집이 이사가고 이사를 오죠. 하기에 이곳 복덕방들은 늘 바쁘고, 우리네처럼 복덕방을 끼고있는 이삿짐센터 역시 그런 셈이죠. 그간 숫하게 이삿짐들을 날랐습죠. 그러다 보니 무슨 아파트 몇 동이라면 아 거기! 어느 새 이쯤 됐습죠, 네”039)金龍雲,<外人들>(≪小說文藝≫2, 1978), 169쪽.라고 아파트 주민들의 이동 상황을 설명한다.

 한편 수많은 복덕방들은 아파트 값과 집세를 올리고 조작함으로써 영업경기를 조성하며 기생한다. 아파트 집세만 보더라도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전세나 사글세를 한푼이라도 더 받고자 한다. 이런 심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부동산소개업자들이다. 어느 아파트 몇 동 몇 호는 전세, 몇 호는 사글세라는 사실을 훤히 꿰뚫고 있다가 그 계약기간이 임박할 때쯤 해서 집주인을 부추긴다. 먼젓번보다 집세 얼마를 더 받아줄 테니 그 계약서는 우리 복덕방에서 쓰라고. 그러면 집주인은 집세를 더 받으니 좋고, 복덕방은 양쪽에서 구전을 받아 수입을 올려 좋다. 거대한 아파트단지 안에 널려 있는 수많은 복덕방들은 다 이런 식으로 먹고산다. 물론 몇몇 이름 있는 복덕방들은 이런 야비한 짓은 애써 피한다. 굵직굵직한 계약만 취급해서 오붓하게 수입을 올리지만, 대부분의 잔챙이 복덕방들은 이 짓 않고는 도저히 사무실을 꾸려갈 수가 없고 보니 때에 따라선 자기네끼리 서로 아귀다툼질이다. 뿐만 아니라 복덕방의 농간에 일반 시민들의 과열된 투기심까지 겹쳐 1970년대 후반부터는 겉잡을 수 없는 부동산투기의 붐까지 일으켰던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입주보다도 전매를 목적으로 아파트를 사고 파는 이상경기 때문에 오히려 실수요자들이 골탕을 먹는 실정이었다.

 그러면 실제로 고급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는 중상층 주민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아파트생활은 돈과 전화만 가지고 있으면 모든 것이 척척 해결된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전화만 걸면 상가에서 일용 잡화는 물론 담배ㆍ쌀ㆍ음식까지 모두가 재빠르게 배달되곤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상점의 배달소년에게 주문하면 무엇이든 언제든지 배달해주느냐고 물었더니, 과자 한 봉지라도 주문만 하면 끽소리 않고 십리도 뛰어가는 판이라고 대답한다. 아파트단지에서는 그래야 장사를 해먹고 산다고 한다. 심지어는 김치를 주문받아 담가주는 직업인도 있어서 어느 아파트 몇 동 몇 호인데 배추김치 몇 포기, 무김치 몇 단, 동치미 몇 사발이라는 식으로 주문만 하면 그대로 김치를 담가다가 베란다나 현관 앞까지 배달해 준다고 한다. 결국 이런 아파트생활에서는 모든 개인이 원자화되고 고립되어 있어서 이웃과는 전혀 접촉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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