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Ⅰ. 자연환경
  • 3. 인류학적 특성
  • 5) 도시인의 주거지역과 생태적 특성
  • (3) 하층의 빈민 주거지역

(3) 하층의 빈민 주거지역

 도시 영세민의 주거지역은 구릉지대를 비롯하여 하천ㆍ철로변ㆍ평지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산재해 있다. 특히 구릉지대는 빈곤의 등고선을 그리며 뻗어나가는데, 극빈자와 최근에 농어촌에서 맨주먹으로 이사온 사람들일수록 정상부를 점거한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시 전체가 한눈에 전개되어 즐비한 고층건물과 차량행렬로 붐비는 거리가 마치 별세계의 낙원처럼 보여서 아래위가 엄청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서울의 빈민 주거지역 생태를 어느 외국인 인류학자의 현지조사 관찰보고에 따라 살펴보기로 하자.040)브란트, V.,<서울의 貧民街와 離農民>(≪韓國의 傳統과 變遷≫, 高麗大學校 亞細亞問題硏究所, 1973), 141∼158쪽.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의 구릉지대는 대개 새로 온 이농민들이 쇄도하는 빈민 주거지역이다. 처음에는 언덕의 비교적 아래 부분이나 중턱에 자리를 잡지만, 서울시에서 입주금이 싼 영세민 아파트를 짓기 위하여 그들의 판잣집을 철거해버리면 그들은 다시 맨 꼭대기로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도시재개발지역 정리로 꼭대기에서 또 쫓겨나면, 다시 더 멀리 떨어진 외곽지대의 산언덕에 새로운 판자촌을 형성한다.

 이런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대부분 날품팔이ㆍ지게꾼ㆍ공장 노동자ㆍ미장이 등의 하급 노동자들이다. 남자들은 그러한 일로 하루하루 일하다가 일이 없으면 이웃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거나, 기울어진 벽을 떠받치고 비가 새는 천정을 고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보낸다. 이곳 저곳의 골목에서는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노닥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한데에서 가릴 곳은 가리면서도 태연자약하게 목욕을 하기도 한다. 판자촌 마을은 흔히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비공식적인 집단을 형성하다보니, 생기 있는 대화가 나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한군데 모여 살기 때문에 이곳저곳의 사투리가 뒤섞여 있다. 도시에서 살아온 기간이 서로 다르고 도시생활에 대한 적응단계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이웃하여 살고있기 때문에 의견이 서로 엇갈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 긴장과 불만이 이따금 요란한 논쟁으로 번져서 이웃끼리 싸우는 일도 있고, 싸워서 말을 안하고 지내는 집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집은 이웃의 한두집 하고만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사이라, 별식을 장만하면 서로 나누어 먹고, 집을 비우고 나갈 때 집을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한마디로 이런 곳에서는 주민들의 생활이 농촌의 이웃관계를 반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빈민 주거지역이 모두 다 획일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판잣집들이 너무나 밀집해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밖에 나와 모일 장소라고는 아예 없는 지역도 있다. 그리고 하천과 철로변 그 밖의 평지에 있는 빈민 주거지역들은 전형적인 도시의 고립과 익명과 불안정성을 나타내는 전혀 다른 주거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런 곳에 사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웃에 친구나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지저분한 셋방을 몇 주일 또는 몇 달 동안만 쓰고 살다가 나가곤 한다. 그러므로 이웃 간에 규제력이 작용할 수 없고 이기적이며 도발적이고 방종한 태도와 행위의 발산이 심하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에서도 일단 주민들 전체에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연대의식 또는 일체감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서 조직적인 형태는 아니더라도 무질서한 폭동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항상 지니고 있다. 그러한 예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70년의 무허가 판자촌 철거민들의 대이동에 따른 廣州團地(오늘의 성남시)의 폭동사건을 들 수 있다.

<韓相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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