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Ⅱ. 한민족의 기원
  • 1. 고고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문화계통의 다원론적 입장-
  • 3) 문화계통
  • (4) 철기시대

(4) 철기시대

 철기시대 전기(기원전 300∼기원전 1년)는 위만조선(기원전 194∼108)의 국가 형성과 낙랑군의 설치(기원전 108∼서기 313년)가 중복되어 있어 한국에 있어 사실상 역사 고고학의 시작 단계이다.092)崔夢龍,<歷史考古學硏究의 方向>(≪한국상고사≫, 한국상고사학회, 민음사, 1989), 97∼102쪽. 이 시기에는 토광묘, 한자와 철기 문화가 들어오며 후일 철기시대 후기(서기 1∼300년)에 속하는 서기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 불교의 유입과 함께 한국의 문화는 조선시대 한일합방(1910년)때까지 거의 전역이 중국권으로 접어들게 된다.093)金元龍,<한국문화의 기원>(≪文理大敎養講座≫,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1972), 1∼24쪽. 낙랑군의 설치와 이에 따른 중국 漢 문화의 확산은 경북 영일군 신광면 마조리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 晋代의 湖巖美術館 소장 晋率濊伯長印과 함께 주로 철기시대 전기의 유적인 강릉시 병산동과 동해시 송정동의 凸자형 주거지에서 나오는 낙랑계통의 토기들은 東濊시대의 존재 가능성을 한층 높여준다.094)강릉대학교 박물관,<동해시 송정동 중심도로 건설지역 문화유적 긴급발굴조사지도위원회 자료>(1999년 11월 7일), 25호 출토지 토기.

 金元龍은 현 英國 大英博物館 소장의 ‘鳥形柄頭 細形銅劍’이 우리 나라에서 철기시대 전기의 대표적인 유물인 세형동검의 자루 끝에 ‘鳥形 안테나’가 장식된 안테나식 검(Antennenschwert, Antennae sword)으로 보고, 그것이 오스트리아 잘쯔캄머구트 유적에서 시작하여 구라파의 철기시대의 대명사로 된 할슈탓트(Hallstatt:A-기원전 12∼11세기, B-기원전 10∼8세기, C-기원전 7세기D-기원전 6세기) 문화에서 나타나는 소위 ‘날개달린 물미’(winged chape)에 스키타이식 동물문양이 가미되어 나타난 것으로 보았다.095)金元龍,<鳥形안테나식細形銅劍의 문제>(≪백산학보≫8호, 1970), 3쪽. 이와 유사한 형태의 안테나식 검이 평양, 대구 飛山洞·池山洞의 3점이 안테나(觸角)식 동검과 雙鳥形劍把頭飾으로 보고되고 있다(金元龍의≪韓國考古學槪說≫, 일지사, 1986, 105쪽;국립중앙박물관,≪韓國의 靑銅器文化≫, 범우사, 1992, 71쪽). 이는 현재로서는 ‘臆測的 小見’에 불과하나 스키타이식 銅鍑과 청동제 馬形帶鉤가 金海 大成洞과096)경성대학교 박물관,≪金海大成洞古墳群Ⅰ≫(2000), 61쪽.
경성대학교 박물관,≪金海龜旨路古墳群≫(2000), 189쪽.
永川 漁隱洞에서,097)梅原末治·藤田亮策 편저,≪조선고문화종감≫제1권(養德社, 1947), 도판 제26(其4). 동복과 鐵鍑이 金海 良洞里098)동의대학교 박물관,<金海良洞里 第162호 土壙木槨墓 發掘調査槪要-현장설명자료>(1991. 11).
林孝澤·郭東哲,≪金海良洞里 古墳文化≫(東義大博物館, 2000), 54·77쪽.
에서 나타나는 점을 보아 앞으로 우리 문화의 전파와 수용 방면이 의외로 다양할 것이라는 생각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동복의 경우 러시아 시베리아의 우코크에서 발견된 스키타이 고분,099)최몽룡,<시베리아 고고학의 최근성과>(≪알타이문명전≫, 국립중앙박물관, 1995), 12쪽.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주 오르쥬노키제시 톨스타야 모길라 쿠르간 봉토분(1971년 모죠레브스키 발굴)100)日本放送協會,≪Scythian Gold-Museum of Historic Tresures of Ukraine-≫(1992), 61쪽.과 로스토프지역 노보체르카스크 소코로프스키 계곡 5형제 3호분(1970년 라에프 발굴),101)국립중앙박물관,≪스키타이황금-소련 국립 에르미타쥬 박물관소장-≫(1991), 274쪽. 카스피해 북안의 사브라마트, 세미레치에, 투바의 우육과 미누신스크 분지의 카카르 문화 등102)정석배,<선흉노-스키타이 세계 소고->(≪한국상고사학보≫32집, 2000), 63∼74쪽 도면 참조.과 중국 遼寧省 北票市 章吉 菅子鄕 西泃村(喇嘛洞) 古墓 (1973년 발굴, 鮮卑문화)과 吉林省 揄樹 老河深103)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編,≪揄樹老河深≫(1987), 49쪽. 등지에서 볼 수 있는 북방계 유물인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나타나는 북방계 요소는 철기시대 전기(기원전 300∼기원전 1년) 이후 동물형 문양의 대구나 동복의 예에서와 같이 뚜렷해진다.

 2000년 6월 20∼22일 영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된 울릉도 북면 현포 1리의 제단은 적석으로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기단 위에 3열 15개의 입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석의 높이는 1.5∼2m이며 이중 두 개는 이곳에서 빼내어져 이웃 현포 초등학교 건물입구의 계단 양측에 세워져 있다. 이런 류의 제단은 한국 최초의 발견이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제단은 몽고지방 청동기시대 중 카라숙 문화에서 이미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사슴돌, 제단, 케렉수르로 불리며 울릉도의 것과 비슷한 예로는 우쉬키인-우베르 제단 등을 들 수 있다.104)노브고라도바(정석배 역),≪蒙古의 先史時代≫(학연, 1995), 299∼300쪽. 울릉도에서는 현포 1리, 서면 남서리와 울릉읍 저동리에서 새로이 발견된 고인돌들, 그리고 현포 1리에서 발견된 무문토기, 紅陶片, 갈돌판과 갈돌105)崔夢龍 외,≪鬱陵島≫(서울대 박물관, 1998).들을 볼 때 입석이 서 있는 제단 유적은 이들과 같은 시기에 이용된, 적어도 철기시대 전기(기원전 300년∼기원전 1년)에 속할 수 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주의해야 될 점도 있다. 우리의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전기의 문화 계통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미누신스크 청동기 문화 중 안드로노보(기원전 1700∼1200년), 카라숙(기원전 1200∼700년)과 타가르(기원전 700∼200년) 문화기이다. 그중 카라숙 문화에서 돌널무덤(석상분, 석관묘, cist)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 다음의 타가르 문화는 전기의 청동기시대(기원전 7∼5세기)와 후기의 철기시대(기원전 4∼3세기)가 되는데,106)金元龍,≪韓國考古學槪說≫제3판(一志社, 1986), 63∼64쪽. 그곳 철기시대에도 우리의 철기시대 전기와 마찬가지로 청동거울을 쓰고 있다. 그런데 청동거울의 배면에 있는 꼭지가 우리 것은 둘인 多鈕細文鏡(잔무늬거울)으로 불리고 있는데 반해 타가르의 것은 하나인 單鈕鏡인 것이며, 또 칼도 곡검(琵琶形)이 아닌 날이 가운데가 휜, 彎入된 것이다. 타가르 문화의 청동검과 거울은 실제 만주와 한반도에서 보이는 고조선(요녕식, 비파형) 동검이나 거친 무늬와 잔무늬 거울과는 다르다. 이는 우리가 종래 생각해오던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기원과 직접 관련지어 생각할 때 고려의 여지를 두어야 할 것이다.107)최몽룡, 앞의 책(1993),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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