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Ⅱ. 한민족의 기원
  • 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 2)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여러 양상과 그 계통
  • (3) 농경의례와 사회습속

(3) 농경의례와 사회습속

 수도경작을 기반으로 한 우리 나라 남부의 문화 複合이 동남아시아의 그것과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많은 연구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이다. 이는 수도 농경문화의 전래에 수반하여 중국 강남지방에서 수도작 농경문화와 관련이 깊은 신앙이나 풍속 습관이 전해진 데 연유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벼의 기원 내지 전승에 새가 볍씨를 사람들에게 전해준다는 모티브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긴 ‘舊三國史’에 의거한 李奎報의<東明王篇>에는 망명길에 오른 주몽에게 神母가 비둘기를 시켜서 보리종자(麥子)를 전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이 신모는 농업신인 여신으로 생각되며 오리엔트 전지역에서는 비둘기가 신모의 신성한 새로 등장한다고 한다.148)金哲埈,<東明王篇에 보이는 神母의 性格>(≪柳洪烈博士華甲記念論叢≫:≪韓國古代社會硏究≫, 지식산업사, 1975), 35∼43쪽. 그러므로 곡물의 전승에 새를 등장시키는 것이 비단 동남아시아지역 주민만의 고유한 발상은 아닌 것으로 짐작된다.

 동이전 마한 조에는 매년 5월 씨를 뿌린 다음 귀신을 제사하는 歌舞 축제를 열고 10월 추수한 뒤 역시 이를 반복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오늘날까지 남한지역에 남아 있는 벼농사와 관련된 마을 축제로 대표적인 것이 줄다리기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특히 호남지역에서 행해지는 이른바 ‘전라형’줄다리기에서는 시합이 끝나면 사용했던 줄을 가져다가 堂山木에 감는 ‘당산 입히기’라는 절차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祭典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여긴다. 이 같은 행사가 끝나면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서 농악대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는 것으로 밤을 지샌다고 한다.149)Christian Deschamps,<韓國의 줄다리기>(≪在歐 한국학회 제6차 학술회의 발표논문집≫, 1982), 329∼335쪽. 但 徐大錫,≪한국신화의 연구≫(集文堂, 2001, 527∼528쪽)에서 재인용. 사실 이러한 행사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지방에도 분포되어 있으며, 그 특징도 서로 공통하고 있다.

 ≪禮記≫王制篇에서는 동이족의 대표적인 습속을 被髮과 文身이라고 기술한 바 있다. 실제로 이 같은 습속은 중국 강남지방의 옛 吳越 계통의 주민 사이에서 현저한데,≪史記≫朝鮮傳에는 燕에서 활동하던 衛滿이 고조선으로 망명해 올 때 ‘魋結(상투를 튼 두발)’하고 ‘蠻夷服’을 입고 있었다고 했다. 동이전 마한 조에도 ‘魁頭露紒’라 하여 역시 상투머리를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왜인 조에도 남자는 모두 ‘露紒’하고 아울러 黥面 문신하며 부인들은 ‘被髮屈紒’한다고 특별히 기술되어 있다. 한편 마한 조에는 남자들이 때때로 문신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으며, 변진한 조에도 倭와 가까운 까닭에 역시 문신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1948년 서부 시베리아 즉 러시아(카자흐스탄)·몽골·중국의 세 나라 국경지대인 우코크 고원의 파지리크 2호 무덤에서 온몸에 문신을 새겨 놓은 미이라가 발견되어 주목을 끈 바 있다. 그렇지만 남한지역의 문신은 시베리아보다는 역시 동남아시아, 남중국, 일본 등지와 한층 강한 밀집도를 느끼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150)金貞培,<韓國에 있어서의 南方文化論>(≪在歐 한국학회 제6차 학술회의 白山學報≫9, 1970:≪韓國民族文化의 起源≫, 고려대학교출판부, 1973), 90쪽.

 한편 변진 조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곧바로 돌로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변형시키는 습속이 있으므로 진한 사람들이 모두 褊頭라고 기술되어 있다. 일찍이 이 같은 頭蓋 가공의 습속이 옛 인도에서 행해진 것으로 본 논자도 있었으나, 실은 북 코카사스인의 무덤이나 훈족과 튀르크족 그리고 후기 선사시대의 멕시코유적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보여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만큼 삼한 사람들의 편두 습속의 원류를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151)金貞培, 위의 글, 90∼91쪽. 다만 민족학자 오오바야시(大林太良)는 편두의 문화적 계통을 어쩌면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즉 이미 기원 전 5세기 경에 두개 가공이 행해지고 있던 것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보고한 바 있다고 하며, 7세기 전반 玄奘의≪大唐西域記≫에도 屈支法沙에 이 같은 습속이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고학적 자료로 볼 때 청동기시대의 Don-Man-yeh 문화 이래 사르마트나 훈족의 무덤에서 이것이 인정되며 아이누족이나 골디족(나나이족)에게서도 그것이 엿보인다고 한다.152)大林太良씨의 敎示에 의함.

 동이전 왜인 조에는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는 동물의 뼈를 지져 吉凶을 점치는 骨卜의 습속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부여 조에는 군사적 행동을 취할 때는 하늘에 제사하는데, 이때 소를 죽여 굽을 보아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즉 굽이 벌어지면 흉조로 여겼고 합쳐지면 길조로 여겼다는 것이다. 부여의 그것은 골복과는 차이가 있으나, 일찍이 경남 창원 熊川의 조개무덤에서 사슴의 복골이 발견된 이래 김해 府院洞 주거유적에서 역시 출토된 바 있고 최근에는 경북 경산시 林堂洞 저습지의 한 유적에서 중국 화폐인 五銖錢과 함께 발견된다거나 경남 사천 勒島유적에서는 다량으로 발견되는 등 변·진한사회에서도 이 같은 습속이 널리 행해졌음이 입증된 바 있다. 이 골복은 동유럽에서 중앙아시아·북부아시아에 걸쳐 널리 행해진 습속이었으므로 일반적으로 북방계의 문화요소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이미 龍山문화 단계에서 그것이 행해졌고 특히 殷(商) 왕조에서는 龜卜·골복으로 祖靈의 神意를 점치는 습속이 크게 유행했으므로, 이 중국 기원의 습속이 전해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153)大林太良,≪邪馬臺國≫(中公新書, 1977), 52∼57쪽.

 옹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洗骨葬은 複葬 혹은 二重葬(Secondary burial)이라고도 불리고 있는데, 이 풍속은 동옥저 조에 구체적인 기사가 보인다. 이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가매장했다가 뒤에 뼈만을 추려서 가족 공동의 木槨에 다시 안치했다고 한다. 1983년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의 한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발견된 집단묘지는 세골장법에 의해 약 40여 명을 한 구덩이 안에 매장한 것으로 판명되어 학계의 주목을 끈 바 있다. 현재 세골장의 풍속은 전라도 해안 및 서해안 섬지방에 이른바 草墳 혹은 風葬으로 남아 있다. 이 세골장과 관련하여 대만의 민족학자 凌純聲은 중국 長江 중류의 洞庭湖 지구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역시 동남아시아 일대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즉 세골장은 해류를 따라 남중국 혹은 류큐(琉球), 아마미(奄美) 군도를 거쳐 한반도 해안지대에까지 퍼진 것으로 짐작된다.154)프랑스 뒤르켕학파의 종교사회학자인 에르츠는 인도네시아지방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二次葬의 의미를, 즉 死者의 뼈를 모아 가족 納骨所에 넣어두기까지의 屍身 처리과정을 死者의 영혼이 거쳐가야 할 現世에서 저승에 이르는 旅路를 물질적인 상징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았다. Robert Hertz, Death and the Right Hand(Routledge & Kegan Paul, 1960), pp. 81ff. 다만 1930년 시베리아 연해주에서 민속조사에 종사한 바 있는 능순성이 지적하듯 고아시아족에 속하는 유카기르족이나 길리야크족이 근대에도 옹관을 사용했고, 松花江 하류의 赫哲族(퉁구스 계통의 나나이족)의 세골장이 동옥저의 그것과 똑같은 점에 주목한다면 한국 고대의 세골장을 남쪽 혹은 북쪽의 어느 한쪽으로부터의 영향이라고 단정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155)金貞培,<韓國의 甕棺 解釋에 對한 一小考>(≪古文化≫5·6 합집, 1969:≪韓國民族文化의 起源≫, 고려대학교출판부, 1973), 234∼235쪽.

 이상으로 한민족의 문화계통을 주로≪삼국지≫동이전의 민속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한국 농경문화의 기층에는 이른바 남방계통의 요소가 적지 않게 발견되고 있으나, 전반적으로 보면 역시 북방계통의 문화요소가 압도적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끝으로 한민족의 계통 문제를 추구함에 있어서 가장 긴요한 과제라고 할 신앙과 종교면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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