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Ⅱ. 한민족의 기원
  • 2. 민족학적으로 본 문화계통
  • 2) 고대 한민족의 문화적 여러 양상과 그 계통
  • (4) 샤머니즘의 세계관

(4) 샤머니즘의 세계관

 주지하듯이 샤머니즘은 만주·몽골·시베리아에 널리 퍼져 있는 퉁구스족 및 고아시아족의 특유한 세계관을 반영한다. 퉁구스족은 만주족 형성의 주요 요소 가운데 하나인데, 시로꼬고로프는 만주족의 사회구성에 대한 연구의 결론부에서 샤머니즘이야말로 만주족 사회조직의 基底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 중의 하나로 샤머니즘을 떠나서는 만주족의 씨족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고까지 강조한 바 있다.156)S. M. Shirokogoroff, Social Organization of the Manchus:A Study of the Manchu Clan Organization(Shanghai, 1924).
大間知篤三·戶田茂喜 공역,≪滿洲族の社會組織≫(刀江書院, 1967), 228쪽.
하긴 샤머니즘은 전세계에 걸쳐 각양각색의 유형을 띠고 분포되어 있다. 그렇지만 동북아시아대륙이 그 대표적인 지역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한반도의 고대문화가 동북아시아대륙 샤머니즘적 문화의 亞種이 아니라 하나의 지역적 전형으로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것은 신화와 巫俗의 비교 검토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삼국지≫동이전 변진 조에는 사람이 죽으면 큰 새의 날개를 부장하는데,그 뜻은 죽은 이로 하여금 하늘로 날게 하도록 함에 있다고 했다. 이는 사람의 生靈이나 샤먼(무당)의 수호 神靈이 각종의 새 모양을 하고 나른다는 북시베리아에 널리 퍼져 있는 샤머니즘적 신앙과 서로 공통되는 점이다. 한편 마한 조에는 天君과 蘇塗에 관한 잘 알려진 기사가 실려 있어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아 왔다. 즉 마한사람들은 귀신을 믿어 國邑마다 각기 한 사람을 정해 천신에 대한 제사를 주관하게 하는데, 이를 천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또한 나라에는 각기 別邑이 있어 소도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고 귀신을 섬겼으며 도망자들이 그 속에 들어가면 밖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은 고구려 조에 10월에 행하는 國中大會 때 나라 동쪽의 큰 굴속에 있는 隧神을 맞아다가 나라 동쪽 위에서 제사지낼 때 神坐에 나무로 만든 수신을 놓아둔다고 한 점이다.

 이 천군이나 소도 혹은 나무로 만든 수신은 바로 동북아시아대륙 샤머니즘에 입각한 종교문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19세기 중엽 李圭景은 민속으로 전해지고 있던 城隍(서낭)신앙의 연원을 삼한시대의 소도신앙에서 찾았거니와(≪五洲衍文長箋散稿≫‘華東淫祀辨證說’), 1930년대 초에 손진태는 소도를 민속으로 남아 있는 ‘솟대’의 원류로 보았고, 나아가 돌을 쌓아 놓은 제단 모양의 仙王(서낭)堂이 만주·몽골의 오보(obu, 沃博·鄂博)와 형태 및 기능이 비슷한 점에 주목한 바 있다. 이 오보는 자연석을 円錐모양으로 쌓아 올린 다음 그 중앙에 神杆을 세우고 柳條를 꼽아 놓은 모습을 하고 있다. 사실 돌무더기에 나무를 세워 꼽는 습속은 퉁구스족 사이에서는 일반적이다. 골디족(나나이족)은 신간과 남녀의 木偶神, 나무에 새긴 鳥杆을 한 곳에 모아 두고 있으며, 그와 인접한 오로치족은 상단부에 사람 얼굴을 조각한 나무 기둥 세 개와 나무에 새긴 오리 네 마리를 신간의 橫木에 고정시켜 세워 두고 있다. 이와 매우 비슷한 것은 大興安嶺 동남부에 살고 있는 오로촌족이나, 오비강과 예니세이강 방면에 거주하는 핀(Finn)족 계통의 오스치야크족에게서도 보인다.157)秋葉 隆,<朝鮮の民俗に就いて-特に滿蒙民族との比較->(京城帝大文學部 편,
≪朝鮮文化の硏究≫, 朝鮮公民敎育會, 1937), 33∼56쪽 특히 46∼51쪽.

 신화만큼 고대인의 사회적 생활여건과 의식세계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은 달리 없다고 생각된다. 한국의 신화는 문헌기록으로 전해지는 건국신화와 무속 제전에서 口碑로 계승되는 무속신화로 크게 구별되는데, 여기서는 고조선의 檀君神話를 비롯한 고구려의 朱蒙신화 그밖에 신라·가야의 건국신화에 국한하여 신화의 구성 요소와 그 문화적 계통을 살펴보기로 한다.

 단군신화가 곰을 숭배하고 있던 어떤 족단의 샤머니즘을 토대로 하여 만들어진 건국신화라는 데는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지상에 내려온 桓雄이 천상의 세계를 주관하는 天帝 곧 태양신의 아들로 되어 있는 것이라든지 천상계와 지상계를 잇는 매개체가 산꼭대기의 樹木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모두 동북아시아대륙의 전형적인 샤머니즘적 세계관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더욱이 동굴 속에 살면서 사람이 되고자 했던 곰이 환웅과 결합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신화의 내용은 일반적인 곰 숭배 차원을 넘어서 일종의 獸祖 모티브까지 상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158)金烈圭,≪韓國의 神話≫(一潮閣, 1976), 21∼27·48∼58쪽.

 그런데 동시베리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종족은 곰에게는 특별한 정령이 들어있다고 믿어 이를 숭배한다. 그들 중에는 절대로 곰을 먹지 않는 족속이 있는가 하면 길리야크족처럼 곰 축제를 거행하는 경우도 있다.159)Georg Nioradze, Der Shamanismus bei den Siberischen Voelkern(Strecker und Schroeder in Stuttgard, 1925).
李弘稙 역,≪西伯利亞諸民族의 原始宗敎≫(서울신문사 출판부, 149), 76∼78쪽.
일찍이 오까강 계곡에 있는 브랏쓰끄 근처에서는 돌에 곰의 頭像을 새겨 넣은 예술품이 발견된 일이 있는데,160)A. P. Okladnikov,<신석기시대 동시베리아 種族의 곰 숭배사상>(≪소련고고학지≫14권, 1950).
金貞培,≪韓國民族文化의 起源≫(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에 國譯 收錄(같은 책, 236∼237쪽).
2000년 아무르강 하류 하바롭스크州 울치區에 있는 수추섬의 신석기시대 주거유적에 대한 한국과 러시아 양국 공동 발굴조사에서도 곰 모양을 한 매우 세련된 동물상이 출토된 바 있다.161)국립문화재연구소,≪러시아 아무르강 하류 수추섬 신석기시대 주거유적 발굴조사보고서-제1차 한국·러시아 공동발굴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0) 참조. 이 아무르강 유역은 특히 곰 숭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특별히 畏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곰 이외에도 범과 물범(鯱)이 있으나, 삼림의 주인, 짐승의 주인으로 간주되는 것은 역시 곰이다. 또한 동물과 인간과의 혼인이 씨족 혹은 민족의 기원과 결부되어 있는 전승이 현저한 지역도 바로 이곳이다. 아무르강의 몇몇 지류와 우스리강 유역으로부터 시호타·아린산맥에 걸쳐 거주하는 퉁구스족 계통의 우데헤족(≪高麗史≫에는 ‘兀狄哈’으로 표기됨)의 기원 전승에는 곰과 범이 등장하고 있어 환웅과 熊女와의 결혼 모티브와 매우 깊은 친연관계를 보여준다.162)大林太良,<朝鮮の檀君神話とツングースの熊祖神話>(東京大學≪敎養學科紀要≫7, 1975), 71∼87쪽.

 신화 연구의 중요한 과제는 신성관념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의미에서 주몽신화의 주인공이 햇빛에 감응하여 알의 형태로 태어났다는 것은 주목해야 할 점이다. 이에 대한 미시나(三品彰英)의 견해를 보면 다음과 같다. 즉 주몽이 햇빛에 감응하여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은 몽골·만주에 널리 퍼져 있는 이른바 ‘感精型’ 요소로 분류되며, 한편 알의 형태로 출생한 것은 ‘卵生型’ 요소로, 이는 文化境域(Culture-area)으로 볼 때 인도네시아·인도차이나·대만·중국 연안일대의 남방 해양 계통의 문화요소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주몽신화는 그 자체로 북방적 요소와 남방적 요소의 복합형이라는 것이다. 한편 그는 예맥족인 고구려가 난생신화와 접하게 된 역사적 계기로서 漢族이 아직 황하·장강(揚子江) 하류유역을 점령하기 이전에 이 지방을 점거하고 있던 동이족과 ‘百越’로 통칭되던 인도차이나 제족과의 접촉 교섭을 상정하고, 어쩌면 徐夷의 옛 땅인 徐州가 남북을 연결하는 링크(link)적 존재가 아니었을까하고 추측한 바 있다.163)三品彰英,≪神話と文化境域≫(1948:≪神話と文化史≫‘三品彰英論文集’ 제3권, 平凡社, 1971), 378∼381·498∼499쪽 및 530∼531쪽.

 신라의 赫居世신화나 脫解신화, 금관가야의 首露신화도 유형상으로 보면 난생형에 속한다. 다만 탈해신화에는 남방 해양 계통의 요소가 짙어 주목된다. 즉 주인공의 어머니가 바다 용왕 계통으로 되어 있다든지 알의 형태로 태어나자마자 궤짝에 담겨져서 바다 위에 버려져 표류한 끝에 신라의 동쪽 해안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러하다. 이 같은 신화의 줄거리는 버마(현 미얀마)의 파라운 설화와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바 있어 일찍이 태평양 주변에 전파된 공통문화의 잔존으로 해석하려는 논자도 있다.164)松本信廣,<古代傳承に表われた車と船-徐偃傳說と造父說話との對比->(≪日本民俗學≫1권 4호, 1954:≪東亞民族文化論攷≫, 誠文堂新光社, 1968), 247∼265쪽. 西歐학자들은 이같은 설화를 ‘coffre flottant’型으로 命名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씨 역시 卵生型에 속하는 徐偃王 전설을 남방의 해양 계통 전설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신생아의 遺棄 모티브는 汎세계적으로 분포가 클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의 민간신앙에도 유기 장소가 해변 이외에 산꼭대기, 숲 속 등으로 달라지면서 그대로 남아 있다는 의미에서 탈해신화를 굳이 남방 해양 계통과 결부시킬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은 실정이다.165)金烈圭,≪韓國의 神話≫(一潮閣, 1976), 188∼189쪽.

 앞에서 곰을 조상으로 여기는 단군신화의 모티브가 곰에 대한 지극한 숭배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런데 곰 숭배로 유명한 아무르강 유역일대가 동북아시아대륙에서는 몽골과 더불어 손꼽히는 岩刻畵의 분포지대인 점을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한국신화의 기층에는 어로 및 수렵문화를 배경으로 한 동굴문화를 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166)金烈圭, 위의 책, 125쪽.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암각화가 20여 곳 이상에서 확인되었는데, 새김 대상에 따라 크게 동물상과 器物 도형상, 생활상으로 분류된다. 그 중 경남 울주군(현 울산광역시) 언양읍 대곡리 盤龜臺의 암각화에는 사슴·고래·범·멧돼지 등 동물 모양이 193점이나 되며 그밖에 인물상이 14점, 어로 및 수렵 도구상이 11점이 된다. 반구대 인물의 모습을 통해서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기물도형상 암각화 중에서 劍鉾무늬계는 사후세계의 안녕을 비는 청동기시대 인간들의 來世觀을, 幾何무늬계에서는 농경사회의 풍요를 비는 신앙을 각각 엿볼 수 있다.167)張明洙,≪韓國岩刻畵의 文化相에 대한 硏究-신앙의 전개양상을 중심으로-≫(仁荷大學校 박사학위논문, 2001) 참조. 이 같은 한국의 암각화는 그 주제로 볼 때 동시베리아·몽골지방의 그것과 밀접히 관련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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