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3. 종교와 사상
  • 3) 종교란 용어의 출현

3) 종교란 용어의 출현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고 있는 종교란 단어는 영어·독어·불어의 religion의 번역어이다. 물론 이전에도 종교란 용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며, 중국에서 隋唐代부터 사용된 것이 확인된다. 이때 불교도들 사이에서, 역시 Sanskrit어인 siddhanta+desana의 번역어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siddhanta(宗)는 究極의 근본진리를 뜻하고, desana(敎)는 구극의 근본진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516)中村元,<宗敎という譯語>(≪日本學士院紀要≫46-2, 日本學士院, 1995), 64∼69쪽.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종교와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또 한자문화권에서는 유교·불교·도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종교 상호간의 구별을 위해 각각의 이름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儒·佛(또는 釋)·道(또는 仙)에 ‘敎’·‘道’·‘學’·‘法’ 등을 붙여 각각의 종교를 가리키기도 했다. 이들 종교들은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호간의 공통점을 찾고 공존을 모색하는 노력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문화권에서는 이들을 포괄하는 類 개념으로서의 종교란 용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religion을 종교로 번역한 것은 일본에서였다. 일본에서 religion의 번역어가 필요해진 것은 외국과의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였다. 즉 조약문 속에 일본 거주 외국인에게 religion의 자유를 보장하는 조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宗法이나 宗旨란 단어가 채택되었다. 그러나 1869년 독일북부동맹과 체결한 수호통상조약에서부터 종교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종교란 단어가 확고한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517)相原一郞介,<譯語 宗敎の成立>(≪宗敎學紀要≫5, 日本宗敎學會, 1938), 3∼5쪽.

 한편 지금까지 확인된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종교란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漢城旬報≫1883년 11월 10일자의<歐羅巴洲>란 기사에서였다.518)張錫萬,≪開港期 韓國社會의 “宗敎”槪念 形成에 관한 硏究≫(서울대 박사학위논문, 1992) 39쪽. 즉 유럽을 소개하면서 “종교는 대체로 耶蘇敎를 믿으며, … 歐洲의 역사를 보면 고금 전쟁의 발단을 반드시 기록했는데, 종교의 異同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519)≪漢城旬報≫(서울대 출판부, 1969), 37쪽.

 그러나 한동안 다른 용어도 병용되었던 것 같다. 한말 조선왕조는 구미열강들과 잇따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는데, 1883년 11월 26일에 조인된<韓英修好通商條約>부터 재한 외국인의 religion의 자유 보장이 조약문에 포함된다. 이것을 영문으로는 “They shall be allowed the free exercise of their religion”이라 했고, 한문으로는 “至於本敎典禮各儀均聽隨意自行”이라 했다.520)≪舊韓末條約彙纂≫中(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1965), 326쪽. 즉 religion은 本敎로 번역된 것이다. 이후 독일(1883년)·이탈리아·러시아(1884년)·프랑스(1886년)·오스트리아(1892년)·벨기에(1901년)는 물론, 1902년 마지막으로 덴마크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religion을 ‘본교’라 했다.521)위의 책 中, 389, 446∼7쪽.
위의 책 下, 18·101·159·212·262·326쪽.
그렇지만 결국 다른 용어는 도태되고 종교로 용어가 통일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종교라는 번역어가 처음 사용되던 시기는 한국에서 종교와 다른 사회 문화 여러 영역과의 분화가 촉진되던 때였다.522)김종서,<개화기 사회문화 변동과 종교>(≪한국 개항기 근대 국가와 문화의 모색≫,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제13회 학술론회 요지, 2001), 10쪽. 단순사회나 전통사회에서는 종교와 다른 사회·문화 영역이 미분화된 상태였다. 종교가 정치권력을 뒷받침했고, 종교적 실천이 윤리 도덕이었으며, 종교 학습이 교육이었으며, 종교적 방법으로 치료가 행해졌다. 이렇듯 종교는 사회의 모든 국면에 확산되어 있었고, 나아가 다른 사회제도들의 정당성을 평가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개화기를 거치면서 종교와 다른 사회·문화 영역의 분화가 촉진된다. 이에 따라 교육, 의료 및 정치 영역에까지 펼쳐져 있던 종교의 지평이 급속히 축소된다. 이것은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볼 때는 종교의 힘의 약화이지만, 종교로서는 자체 순수화 과정이며 독자적 영역의 구축과정이다. 그렇다고 할 때 종교라는 새로운 용어의 사용과 종교의 독자 영역화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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