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3. 종교와 사상
  • 5) 한국 종교사의 전개
  • (3) 고려시대

(3)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도 불교·유교·도교·토착종교(민속종교)가 공존하는 종교지형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각각의 종교전통은 나름대로 역동성을 보이면서, 고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어 갔다.

 고려시대를 통하여 종교계의 흐름을 주도해 간 것은 불교였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신라 하대에 禪宗이 등장함에 따라, 敎宗과 禪宗이 양립하고 있었다. 이 중에 고려를 건국한 호족세력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은 선종이었다. 따라서 고려 초기에는 선종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했다. 그러나 문벌귀족세력이 득세하면서 교종이 부상하였고, 무신란을 계기로 무신정권이 성립되면서 다시 선종이 부상하였다.

 이러한 부침의 과정은 고려 불교계의 과제가 敎·禪의 통합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과제의 해결을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으니, 광종 때의 法眼宗 수입, 大覺國師 義天(1055∼1101)의 天台宗 운동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고, 마침내 普照國師 知訥(1158∼1210)의 定慧雙修 운동을 통해 해결되었다. 교·선을 통합하려는 시도는 중국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론에 그쳤고, 실천의 차원으로 승화되지 못했다. 이런 의미에서 지눌의 실천운동은 동아시아 불교권에서 불교가 도달한 마지막 단계였던 것으로 평가된다.531)崔柄憲,<불교사상과 신앙>(≪한국사특강≫, 서울대 출판부, 1990), 346쪽.

 고려 불교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것으로는 3차에 걸쳐 雕造된 高麗大藏經이 있다. 이것은 기왕에 나온 어떤 대장경 보다 교감이 정확하여 誤脫이 적다는 점에서 정평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승려의 타락과 사원의 폐해가 쌓여져가고 있었다. 권력과 결탁했고, 심지어 親元的 경향을 띄기까지 하면서 사회적 모순을 조장했다. 또 妙淸(?∼1135)이나 辛旽(?∼1371)처럼 황당한 術數를 이용하여 지위 유지에 급급했다. 이러한 타락상으로 말미암아, 불교는 국가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자격을 상실해 갔다.

 고려의 건국과정에서 유학자들의 역할 또한 컸다. 그들은 학문 보다 골품에 의해 사회적 진출이 좌우되는 신라를 비판하면서, 고려 건국에 일익을 담당했다. 여기에다 과거제가 실시되면서, 유교는 정치이념으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결과 고려는 문치주의 귀족사회로 나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교육기관이 발달했는데, 특히 私學의 발달이 두드러졌다. 이중에서도 崔沖의 文憲公徒의 9齋가 유명했는데, 9재의 명칭 중 造道·率性·誠明은≪中庸≫에서 따온 표현이다.≪중용≫은≪禮記≫의 한편에 불과했는데, 이를 독립된 경전으로 삼은 것은 朱子이다.532)竹內照夫(이남희 역),≪四書五經≫(까치, 1991), 179쪽. 따라서 9재의 명칭은 유교 이해의 심화과정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고려말 주자 성리학이 도입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그러나 문벌귀족사회가 장기화되면서 유교가 보수화되고 유연성을 잃어 갔다. 게다가 무인집권과 몽고 압제는 새로운 사상을 요청했다. 이에 유교의 중흥을 위해 安珦(1243∼1306)에 의한 성리학 도입이 추진되고, 나아가 성리학은 고려 사회를 비판하는 기준으로 승화되었다.

 도교에서 특기할 사실은 예종 때 최초의 道觀이라 할 수 있는 福源宮이 건립된 사실, 왕실의 除災招福을 위한 도교의례 齋醮가 빈번히 설행된 점이다.

 또 몽고압제기에는 이슬람교가 전래되어, 당시 왕경에는 그 교당이 존재했다. 그리고 개성의 大國神堂은 이슬람교가 민간신앙화한 것이라 한다.533)崔南善,<故事通>(≪六堂崔南善全集≫1, 현암사, 1973), 154쪽.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종교간의 상호 배척의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교가 보수화된 12세기부터 확인되는데, 인종 9년(1131) 국학생에게 老莊의 학습을 금지했다던지, 일관들이 무격의 축출을 건의한 것이 그것이다. 이후 유학자에 의한 불교 공격이나 민속종교 배척이 기록상 자주 확인된다. 그러나 적어도 불교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처럼 그 존립 자체까지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불교와 유교라는 고전종교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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