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4. 과학기술 -한국 과학기술사의 시기별 특징-
  • 3) 현대과학시대-한국전쟁 이후
  • (1) ‘원자력 과학’에서 ‘월남전 기술’로

(1) ‘원자력 과학’에서 ‘월남전 기술’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막연하게나마 원자력이 과학기술의 최첨단 분야로 개발 연구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본에 투하한 원자탄으로 전쟁을 예상보다 빨리 종결시킬 수 있었던 미국은 승전과 함께 바로 원자력의 통제와 독점체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곧 소련이 원자력 개발에 경쟁적으로 뛰어 들면서, 국제적 관심은 높아졌다. 미국은 한국전이 휴전된 직후인 1953년말 “평화를 위한 원자력”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전세계에 그들의 원자력 이용 노력을 내세우며, 그들의 원자력 개발이 세계평화를 위한 것임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그 밖의 여러 개발도상국에도 원자력을 이용한 과학기술 개발을 원조하고 나서게 되었다.

 남과 북의 전쟁으로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던 한국에 그것은 과학기술 향상의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의 한국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과학기술은 말하자면 ‘원자력 과학’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1956년부터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양 선진국에 유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했고, 1959년 1월에는 정식으로 정부에 原子力院을 세웠다. 이름은 원자력이었지만, 실제로는 당시 한국의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연구 행정 기구로 부상했던 것이다. 그에 이어 원자력연구소가 태어나기도 했다.

 아직 충분한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있던 당시의 한국 과학자, 기술자들은 이를 계기로 단기간의 외국 유학을 다녀올 수도 있었고,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켜 갈 수도 있었다. 또 그 가운데 상당수의 과학기술자들은 단기 유학을 장기로 연장해 눌러 앉거나, 일단 귀국했다가 바로 다시 유학의 길로 떠났다. 그리고 1960년대 경제발전이 시작되면서 그 배경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 절실해지기 시작하자,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 결과 월남전 참전으로 생긴 미국의 호의에 의해 1966년에는 수준 높은 과학기술연구소(KIST)가 미국의 도움으로 태어났다. 그것은 한국군을 월남에 파병해 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미국이 도와주어 가능해졌던 ‘월남전 기술’이라 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는 과학기술을 한국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마침 전세계의 중요 개발도상국에서 미국에 유학 갔던 수많은 젊은이들은 미국에서 공부가 끝나고도 자기 나라로 귀국하지 못하고 있어서, 나라 사이의 과학기술 수준의 차이는 부익부빈익빈의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 있던 시대였다.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미국 등 선진국으로의 頭腦流出(brain drain)은 심각하게 반성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의 설립은 이런 경향에 제동을 걸게 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이 연구소의 설치를 계기로 많은 한국 출신의 과학기술자들이 미국 등을 떠나 고국 대한민국으로 귀국해 왔기 때문이다.

 60년대 경제개발을 앞세웠던 시기에 과학기술은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주목되기 시작했고, 당연히 기술 발전이 그 중심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정부 기구로 처음 만든 것이 경제기획원의 기술관리국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에 이어 과학기술연구소가 탄생하고, 곧 정부부처의 하나로 1967년에는 과학기술처가 생겨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장관이 한 사람 생겨났다.

 때마침 이 시기는 세계의 과학기술이 ‘거대과학’(Big Science)으로 각광받고 있던 때이기도 하다. 거대과학의 대표적인 경우로는 제2차세계대전 중 미국의 원자탄 개발을 위한 ‘맨하탄 계획’을 들 수 있다. 이어 소련은 우주개발에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 1957년 첫 우주선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에 올려 미국과 우주 경쟁을 촉발했다. 그후 무기와 우주 경쟁을 중심으로 대규모의 국가간 경쟁이 지속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그에 이어서는 유전자 구조가 밝혀지면서 유전과학 연구가 또 한 분야의 거대과학으로 크게 성장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국가적 경쟁의 핵심 요소로 탈바꿈한 과학기술은 당연히 한국에서도 주목받기 시작하여 70년대 이후 한국은 정부 주도의 여러 연구소를 만들어 과학기술 개발에 뛰어들었고, 산업의 발달과 함께 많은 기업체 연구기관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대학에 과학기술 분야가 크게 발전하여 많은 연구자가 교수로 일하게도 되었다. 해방 당시의 빈약하기 짝이 없었던 과학기술 인력은 80년대에는 놀라운 수준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과학기술은 분야에 따라서는 세계 수준에 접근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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