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4. 과학기술 -한국 과학기술사의 시기별 특징-
  • 3) 현대과학시대-한국전쟁 이후
  • (2) 자생단계의 한국 과학기술

(2) 자생단계의 한국 과학기술

 오늘 한국에서 과학기술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것이 사실이다. 1950년대에 자라기 시작한 과학기술 인력은 70년대 이후에는 대규모의 과학기술자 집단을 한국의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로서 한국역사상 처음으로 과학기술이 한국 문화의 한 부분에 확실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로부터 한국의 과학기술이 다른 나라의 과학기술과 경쟁하고 비교되면서 발전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인력 양성은 주로 외국 유학을 통한 과학기술 교육을 통해 이뤄졌다. 이들은 1966년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의 출발과 그에 이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의 등장으로 귀국하여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인력의 등장은 정부 연구소 못지 않게 대학과 산업체 연구소를 활성화시켰고, 인력 양성의 국산화가 가속화되었다. 당연히 대학의 과학기술 교육이 충실화하여 국내에서도 상당 수준의 과학자와 기술자를 양성할 수 있게 되었다. 중등 및 초등 학교에서의 과학 교육도 훨씬 나아지고, 그리고 과학기술의 대중화도 상당 부분 발전된 것이 사실이다. 몇 가지 과학 잡지가 나와 계속 발간되고 있으며, 많은 대중과학서가 출간되었다. 과학의 주변 학문도 제법 발달하여 과학사, 과학철학, 과학정책, 과학사회학 등등의 분야는 그 동안 상당히 발전했다.

 서양 근대 과학을 처음 본격적으로 접한 개국 이후 한국사회는 급격하게 변하여 오늘에 이르렀고, 그 급격한 변화의 축에 과학기술이 자리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실제로 과학기술이 한국 사회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을 수준에 이른 것은 해방 후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중요한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한국 시대’ 이후 부터라고 꼬집어 말할 수도 있을 듯하다. 대한제국 시대에도 ‘한국’이란 표현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이란 말은 해방 이후 남쪽에서 널리 사용되었고, 그런 뜻에서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같은 시기 북한에서도 과학기술은 발달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돌이켜 보면 개화기에는 중인층과 일부 양반층에서 서양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눈뜨기 시작했을 뿐 누구도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하려는 노력을 시도해 보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식민지 시기로 들어가서는 일부 지식층 사이에 과학기술을 중시해야 하겠다는 자각은 높아지고 있었으나, 科學主義로 그것을 외치기만 했을 뿐이지 과학기술 그 자체가 뿌리내리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해방 이후, 특히 한국 전쟁 이후에서야 자리잡기 시작한 과학기술은 제도와 교육과 연구가 모두 그 규모를 급속도로 높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규모상의 성장이 한국 과학기술의 균형 있는 발전을 뜻하지는 않는다. 지난 한 세대 동안 과학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한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균형성을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불균형성은 전통적인 ‘中人意識’과 한국사회에서 특히 심한 ‘두개의 문화’현상에 근본적 원인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교육에서는 한국에 특이한 현상으로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특징이 해방 이후 계속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정치와 행정은 이공계 인재를 활용하는 데 지극히 인색하다. 예를 들면 한국 정부에는 과학기술부라는 것을 만들고, 그 자리에만 과학기술계 인사를 장관으로 앉히는 대신 모든 다른 장관 자리는 문과 출신이 차지하는 특이한 전통을 강하게 지켜오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국기술 관련 기관들을 좌우하는 행정은 거의 경제 관료들이 주도해 왔다. 1980년 이후 과학 기관의 통폐합 같은 대규모 수술 역시 경제 논리에 의해 결정된 것이 분명하다. 한국의 과학기술은 그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자체의 자율성 마저 확립되지 못한 채 한국의 ‘이과 문화’는 ‘문과 문화’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현대 한국의 과학기술자들이 알고 모르는 사이에 계승해 온 중인 의식이 한 몫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 이래 일부 과학기술 분야는 양반 아래 특수계층으로 자리잡은 중인에 의해 독점되었고, 그 독점에서 오는 달콤한 열매는 이들 중인층을 경제적으로 알맞게 혜택받게 보장해 주는 효과가 있었다. 어느 의미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과학자, 기술자들은 사회를 외면한 채 적당한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여 왔던 셈이다. 그러나 특히 2002년 초부터 심각하게 거론된 이공계의 위기 문제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더 이상 이공계를 지원하지 않는 경향이 갑자기 강하게 나타나면서 심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동안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과학기술계가 갖고 있던 ‘중인 의식’과 한국 사회 전반에 강하게 지탱되어 온 ‘이공계 천대’가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직 한국사회의 지적 풍토가 과학을 그 자체의 문화 속에 흡수소화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연히 과학기술의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는 대단히 강한 反과학과 新과학, 그리고 심지어 노골적인 미신의 풍조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어느 의미에서는 21세기 한국의 지식인들은 과학기술조차 맹목적으로 믿으려는 ‘과학을 미신하는’ 과학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전반적으로 한국사회는 미신이 아직도 성행하는 불합리한 사회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런 불합리는 사회 곳곳에 나쁜 영향을 남겨 사회 전체를 불합리한 장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고 판단된다. 표면상의 발달한 과학기술이 그 근본정신에는 전혀 영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겨우 반세기 정도에서야 자생단계에 진입한 한국 과학기술은 어느 의미에서는 아직도 자생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건강한 자생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장애가 여럿 앞에 놓여 있다고 보인다.

<朴星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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