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총설
  • 01권 한국사의 전개
  • Ⅳ. 한국문화의 특성
  • 5. 미술
  • 4) 고려시대 미술의 특성

4) 고려시대 미술의 특성

 고려시대에도 전대에 이어 불교를 토대로 한 미술이 지배하면서 유교적 성격의 미술도 회화와 서예 등의 분야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 미술의 주류는 역시 불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불교회화와 청자, 불상과 불교공예, 건축 등이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준다.

 그런데 이 시대의 미술은 중앙과 지방, 상층과 하층, 분야에 따라 상당히 큰 차이를 드러낸다. 예를 들면 같은 불교미술이라도 중앙에서 그려진 화려하고 정교한 불교회화에 비하여 지방에서 조영된 석조 불상들은 비례가 맞지 않는 등 큰 차이를 나타낸다. 이는 통일신라의 미술이 전성기와 말기 사이에 나타내는 차이 이상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시대의 미술은 이원화시켜서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왕실과 상층의 미술을 위주로 하여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창의성의 측면에서 더 합리적이고 또 이미 살펴본 통일신라나 삼국의 미술과 대비하여 보는 데에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왕족과 귀족, 지체 높은 승려들의 미술과 관련하여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불교회화와 청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고려시대 불교미술의 정수는 조각에서보다는 회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고려의 불교회화는 13세기말 이후의 작품들만이 남아 있는데 아미타독존상·아미타삼존상·아미타구존상 등 아미타를 주제로 한 작품들, 수월관음상·지장보살상·미륵하생경도·관경변상도 등 다양하지만 역시 아미타·관음보살·지장보살 등에 기복신앙적 측면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578)李東洲,≪高麗佛畫≫, 韓國의 美 7(中央日報社, 1989).
≪高麗, 영원한 美-高麗佛畫特別展-≫(三星美術文化財團, 1993).
菊竹淳一·鄭于澤,≪高麗時代의 佛畫≫(시공사, 1996).
洪潤植,≪高麗佛畫의 硏究≫(同和出版公社, 1984).
문명대,≪고려불화≫(열화당, 1991).
菊竹淳一·吉田宏志,≪高麗佛畫≫(東京:朝日新聞社, 1981).
鄭于澤,≪高麗時代阿彌陀畫像の硏究≫(京都:永田文昌堂, 1990).
현재 전해지는 100여 점의 유존작들은 한결같이 색채가 화려하고 문양이 섬세하며 필법이 정교하여 귀족적 아취가 넘친다. 색채는 붉은 색과 황금색, 청색과 녹색이 주를 이룬다. 깁의 뒷쪽에서 설채를 하는 이른 바 伏彩法을 구사하여 박락의 피해를 최소화한 점도 주목할만 하지만 700여 년이 흐른 현재에도 색채의 톤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안료의 우수성도 엿보게 된다. 그런데 금색과 붉은색은 불보살의 존엄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지며 푸른색과 초록색은 청자의 색깔과 상통한다고 생각된다.

 고려 불화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구비하고 있는 작품으로 화가(徐九方)와 제작연대(1323년)가 밝혀져 있는<水月觀音圖>를 꼽을 수 있다.579)李東洲, 위의 책, 圖 26 참조. 바위 위에 半跏의 자세로 빗겨 앉은 모습이다. 정교한 문양들이 있는 붉은 옷과 투명한 옷을 입고 있으며 노출된 얼굴, 목과 가슴, 팔과 발 등은 모두 금색으로 설채되어 있어 화려하고 정교하기 그지없다. 사치스러워 보이는 목걸이와 팔찌는 화려함과 정교함을 고조시켜 준다. 주변의 바위들은 푸른색을 기조로 하고 있으면서 밑부분의 照光效果는 금색으로 표현되어 있어 보석덩어리처럼 보인다. 푸른색과 금색의 결합은 청록산수 또는 金碧山水畫의 전통과 유관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으나 바위와 대나무의 푸른색이 고려의 청자색을 연상시켜 줌도 역시 역연하다. 근경의 꽃과 산호초, 왼편 바위 위에 놓여 있는 대나무가 꽂힌 정병과 그것을 담고 있는 투명한 유리 그릇, 둥근 두광과 신광도 아름다움과 화려함, 통일성과 조화로움을 고조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가늘고 긴 눈과 작은 입은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과도 상통한다. 어쨌든 그림 자체에는 화려함과 정교함, 여성적 아름다움과 우아함, 조화로움과 통일성, 귀티와 숭고함이 넘친다.

 고려 불화에 보이는 이러한 특성들은 이 시대의 청자에도 나타난다. 특히 12세기의 청자들에서 그러한 특성들을 흔히 엿볼 수 있는데 이는 곧 13∼14세기 고려 불화에 보이는 특성들이 그 이전인 11∼12세기에 이미 확립이 되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불교회화에 보이는 고려미술의 특성은 청자에서도 엿보인다.580)崔淳雨,≪靑磁-土器≫, 圖 2∼108 참조. 불교회화가 고려시대의 순수미술을 대변한다면 청자는 그 시대 공예 또는 생활미술을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백자도 만들어졌지만 청자가 단연 우위를 점하면서 그 시대 도자기를 대표하게 된 것은 역시 청자가 고려인들의 미의식이나 기호에 제일 잘 맞았기 때문이라고 믿어진다.

 청자의 특성이나 기여와 관련해서는 영국의 곰퍼츠(Gompertz)가 지적하였듯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유약의 색 이외에, 빼어난 형태미와 조형성, 상감기법의 창안, 辰沙의 최초 사용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581)G. St. G. M. Gompertz, Korean Celadon and Other Wares of the Koryo Period(London:Faber and Faber, 1963), pp. 6∼7 참조. 사실상 고려는 중국과 더불어 세계도자사상의 양대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데 청자의 경우 청출어람의 경지를 개척했음은 11세기 중국인 학자 太平老人이 그의 저술인≪袖中錦≫에서 천하제일의 하나로 청자 중에서는 고려의 秘色을 꼽았던 사실에서도 입증이 된다.582)金元龍·安輝濬,≪新版 韓國美術史≫, 261쪽, 주 29 참조.

 고려 청자와 관련해서 제일 먼저 관심을 끄는 것은 청색의 유약 색깔이다. 고려인들이 翡色이라고 불렀던 유약 색깔이야말로 고려 청자의 첫 번째 특성으로 꼽을 만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심연의 바다 속처럼 그윽하고 푸르른 유약 색깔은 불교를 토대로 한 고려시대 미의식과 잘 합치되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고려시대의 불교회화에서도 비슷한 톤과 느낌의 푸른색과 녹색이 자주 사용되었던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즉 청자색과 그와 유사한 청록색은 고려의 색채였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이러한 고려의 불교미학적인 청색은 유교미를 대변하는 조선시대 백자의 흰색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고려의 비색은 중국 청자의 색과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고려의 특성으로 꼽을 만하다. 중국 송원대 청자 색깔이 비교적 밝고 얕고 경쾌해 보이는데 반하여 고려의 비색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윽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고려시대 청자의 특성으로 형태미를 빼놓을 수 없다. 조각작품을 연상시키는 상형성,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보여 주는 조형성, 항상 존중된 곡선적 형태미 등은 유약 색깔과 함께 고려 청자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이다.583)崔淳雨,≪靑磁-土器≫, 圖 2·8·13·15∼27 참조.

 상감기법은 금속공예나 목칠공예에서도 고대로부터 자주 사용되던 것이지만 이 기법을 도자기의 장식기법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은 고려 도공들뿐이었다. 따라서 상감기법은 고려 청자를 가장 고려적인 것으로 승화시킨 요소라 할 수 있을 것이다.584)崔淳雨, 위의 책, 圖 34∼85 참조. 진사의 사용도 마찬가지라 하겠다.585)崔淳雨, 위의 책, 圖 87∼93·96 참조. 이처럼 청자는 불교회화와 함께 고려시대 미술의 수준과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두 분야 모두 그 제작을 후원하고 지도했던 고려의 왕실과 귀족들이 지녔던 기호와 미의식을 반영하였음이 분명하다. 이점은 고려시대의 나전칠기와 금속공예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고려 미술의 특성은 목조건축에서도 엿보인다. 부석사 무량수전을 위시한 고려시대의 목조건축을 보면 추녀가 하늘을 향하여 약간씩 치솟아 경쾌한 곡선미를 이루는데 이러한 특성은 조선시대로 그대로 계승되어 발전하면서 한국 고건축의 특성으로 굳어지게 되었다.586)金正基,≪建築≫, 韓國美術全集 14(同和出版公社, 1975), 圖 11.
최순우,≪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 1994), 78∼80쪽.
이러한 완만한 곡선미는, 추녀끝이 지나치게 치솟아 과장되어 보이는 중국의 건축이나 밋밋하게 수평을 이루는 일본의 건축과 크게 차이를 나타내는데 그 특성은 고려시대에 형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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