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2권 구석기 문화와 신석기 문화
  • Ⅰ. 구석기문화
  • 3. 구석기시대의 생활
  • 1) 생업과 의식주생활
  • (4) 구석기시대의 사회생활

(4) 구석기시대의 사회생활

 구석기시대의 사회생활을 복원한다는 것은 가장 어려운 고고학적 작업의 하나일 것이다. 사실 거의 불가능한 것이며 설사 미약한 자료를 가지고 복원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하나의 아주 희미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구체적인 복원으로 생각한다면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구석기고고학자들은 인류가 초기에서부터 사회생활을 해왔다고 보고 있다. 이는 형태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고릴라나 침팬지 등의 인류와 비교적 가까운 유인원집단의 사회생활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추측하고 있다.

 주로 사냥과 채집을 하는 원시집단에 있어서 여자는 유아양육의 책임이 따르게 됨으로써 기동성이 많이 떨어지게 되고 주거지 부근의 채집에 종사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러한 점에서 초기에 모계사회라고 보는 유물론자들의 견해가 성립되는 것이다. 남성들은 비교적 원거리 채집과 사냥에 종사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기원 초기에 있어서도 1부1처제가 지배적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232)Johanson, D. C. & M. A. Edey, LUCY : the beginnings of humankinds, Simon and Schuster, N. Y., 1981. 이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음식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장치로서 부부관계를 보다 굳건하게 유지하고자 하였을 것이라는 점 외에도, 당시 사회집단내에서 남성간에 성적인 갈등이 있게 되면 사회안정에 문제가 생기므로 그러한 경향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고 하는 견해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류 초기의 성향은 구석기시대 전기간뿐 아니라 전인류사를 통하여 내려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고고학자나 체질인류학자들은 구석기시대에 사회집단이 아마도 가족중심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고고학적 자료는 거의 없다. 인류의 체질적 특성을 고려할 때 가까운 사람끼리의 사회적 협동은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었을 것이며 강력한 사회유대를 통한 음식물의 분배가 집단생존의 전제조건이었을 것이다. 대개 여성을 중심으로 한 가족이나 집단의 일부가 한 장소에서 자리잡고 살면서 집단의 다른 일부가 비교적 먼거리를 다니면서 식량을 구해 와서 집단내에 분배가 이루어지는 형태의 공동생활을 유지하였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된다.

 구석기시대에 사회적인 유대를 보여주는 유물들은 한반도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전곡리구석기유적에서 발견된 대형의 강돌은 한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돌은 도저히 아니므로 적어도 3인 내지 4인의 사람이 공동으로 작업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경우 이외에도 대형동물을 사냥할 수 있었던 시기의 사회는 사회적인 협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러한 동물의 사냥에는 한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상대가 힘들고 사냥감이나 채집대상의 음식물에 대한 정보교환 등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일정한 규모 이상의 집단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집단의 성격이 순수히 가족이었는지 또는 가족중심의 임의집단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연구가 불가능하다. 북한의 학자들은 후기 구석기시대에 이미 씨족사회가 형성되었으리라고 주장하고 있으나233)사회과학원 과학연구소,≪조선의 구석기시대≫(사회과학출판사, 1977). 이러한 견해는 전혀 증명이 불가능한 것이며 고고학적 의미는 없다. 이라크의 중기 구석기유적인 샤니다르동굴에서는 불구가 된 사람을 오랫동안 먹여 살려왔던 사실이 인골의 감정에 의해 밝혀졌는데 현생인류의 단계에 이르러서는 가족의 유대관계가 오늘날 현생인류만큼 강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裵基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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