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Ⅰ. 청동기문화
  • 1. 청동기시대
  • 3) 청동유물의 분포와 사회
  • (1) 각 청동유물의 형식과 그 분포

(1) 각 청동유물의 형식과 그 분포

 한반도와 만주지방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의 종류에는 무기로 단검·창·꺾창·화살촉 등이 있으며, 많지 않으나 전쟁 방어용의 방패와 투구가 확인된다. 도끼와 작은 칼 같은 공구류도 발견되나, 농기구는 별로 확인되지 않는다. 또한 儀器의 성격이 짙은 원형거울이 있는데, 이는 단검과 함께 우리 나라 청동기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그리고 巫具의 용도로서 사용되었을 각종 청동방울과 제사장의 상징물처럼 여겨지는 특이한 모양의 청동기가 있다. 이외에도 많지 않지만 청동재갈 등의 馬具가 발견되며, 장신구로서 단추용 청동기와 동물장식품 등이 있다.

 청동기 중에서 오랜 기간 여러 지역에서 제작되어 유라시아대륙 어느 지역에서나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물은 단검이다. 그런데 단검은 제작집단과 시기에 따라 그 형식적 변이가 뚜렷하기 때문에 청동유물의 지역성과 시간성을 가장 잘 반영하는 표지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한반도와 만주지역에서는 琵琶形銅劍과 細形銅劍이 제작 보급되었지만, 인접한 남부시베리아·오르도스지역에서 발견되는 북방식단검은 자루끝을 동물 모티프로 장식한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황하 중하류를 중심으로 한 중국쪽에서 나타나는 동검은 검자루는 원주형이고, 그 끝에는 삿갓모양 장식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북방식·중국식 단검이 날과 자루를 통째로 주조한 반면에, 비파형·세형단검은 별도로 주조한 別鑄型이다. 만주-한반도 출토의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이 갖는, 주변지역과 뚜렷이 구분되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이 지역에 거주하였다고 하는 濊貊族의 동검과 관계된 유물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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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동북아시아의 동검형식 ① 비파형동검
<그림 1>동북아시아의 동검형식 ① 비파형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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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동북아시아의 동검형식 ② 중국식동검
<그림 1>동북아시아의 동검형식 ② 중국식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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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동북아시아의 동검형식 ③ 북방식동검
<그림 1>동북아시아의 동검형식 ③ 북방식동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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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맥족의 지리적 범위는 대체로 서쪽으로 遼河, 북쪽으로 松花江유역 그리고 동쪽으로는 沿海州를 잇는 遼寧·吉林·黑龍江省을 포함하는 중국 동북지방과 한반도에 걸쳐 있다고 보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이러한 지리적 범위에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이 분포한다.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의 관계에 대해서는 대체로 후자가 전자를 계승한 형식의 단검이라고 보고 있다.0069)전형적인 세형동검 혹은 한국식동검에는 비파형동검에 없는 어임부가 있어 양자간의 계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견해도 있다(李健茂,<韓國의 靑銅器文化>,≪特別展 韓國의 靑銅器文化≫, 국립중앙박물관·국립광주박물관 편, 1992, 133쪽). 그 근거는 두 동검이 출토하는 지리적 범위가 상당한 부분 일치할 뿐만 아니라, 앞서 말했듯이 두 형식만이 주변지역의 다른 동검과 달리 함께 자루를 별도로 만들어 장착하게 된 데에 있다.

 두 동검의 형식의 차이는 검몸의 형태에 있는데, 양자를 이어주는 중간 형식이 있어 시기의 앞뒤에 따른 일정한 변이의 과정과 그 계승성이 확인될 수 있다. 또한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과 각각 관계되는 무덤과 토기의 형식에서도 그 계승성이 인정되므로, 두 검의 제작 사용집단은 상당한 친연관계가 있음이 인정된다.

 전형적인 비파형동검은 검몸 중간의 돌기 위치와 아래부분의 부른 정도에 따라서, 雙房式·十二臺營子式·鄭家窪子式 등으로 분류된다. 쌍방식은 길이가 짧고 돌기가 검끝에서부터 검몸 전체 길이의 3분의 1 정도 되는 곳에 있고, 검몸 하단부가 가장 부른 형식이다. 십이대영자식은 돌기가 검몸 길이의 2분의 1되는 위치에, 그리고 정가와자식은 그 이하에 있는 것으로 검몸의 폭이 보다 좁아진 형식이다.0070)비파형동검의 형식을 분류하는 방식은 세형동검의 경우와 차이가 있다. 세형동검의 경우에는 동검의 특정 部位까지의 등날 형성 여부를 큰 기준으로 하므로 명확하지만, 비파형동검은 전체길이, 검몸의 폭과 밑부분의 곡선 정도로 분류한다. 따라서 분류기준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어서 분류자마다 형식분류에 차이가 난다.
즉 비파형동검의 형식분류는 북한에서 1960년대에 遼寧 旅大市 崗上과 樓上 무덤의 비파형동검을 각각 전형과 변형으로 나눈 것으로부터 출발한다(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기원전 천년기 전반기의 고조선의 문화>,≪고고민속론문집≫1, 1967). 그러다가 1980년대 후반에 와서 전형에 앞서 새로운 二道河子-雙房式을 설정하여 초기형으로 하고, 앞서 崗上式의 전형을 중기형, 樓上式의 변형을 후기형으로 파악하고 있다(박진욱 외,≪비파형단검문화의 연구≫,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7).
한편 남한에서는 비파형동검에 대한 형식분류가 각양각색으로 전개되어 왔다. 金元龍은 松菊里式과 南山根式을 IA·IB식, 十二臺營子式·龍興里式을 ⅡA·ⅡB식으로 구분하는가 하면(金元龍,<沈陽鄭家窪子 靑銅時代墓와 副葬品>,≪東洋學≫6, 檀國大, 1976, 1∼21쪽), 金廷鶴은 十二臺營子式을 전기형, 鄭家窪子式을 중기형, 그리고 亮甲山式을 후기형으로 분류하였다(金廷鶴,<韓國靑銅器文化의 編年>,≪韓國考古學報≫5, 1978, 14쪽). 李榮文은 남한지방에서 최근에 출토한 동검 자료를 더하여, 전형과 변형의 2분법의 큰 틀을 두고 형식을 세분한 바 있다(李榮文,<韓半島出土 琵琶形銅劍 形式分類 試論>,≪博物館紀要≫7, 檀國大, 1991).
이처럼 남북한에서 공통적으로 제기한 비파형동검 형식의 3분법에 따르면 일단 十二臺營子式과 雙房式으로 구분된다. 두 형식의 분류 기준은 전반적으로 길이의 차이와, 突起의 위치가 검끝에서 어느 길이만큼 내려와 있는가 하는 데에 있다. 북한학자나 남한의 金廷鶴은 구체적으로 돌기의 위치가 검끝에서부터 검몸의 3분의 1, 2분의 1 이하이라는 치수를 제시하여 분류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잣대에 맞추면 심양 정가와자·개천 용흥리 등의 동검은 2분의 1 이상의 것이 되며, 아울러 검몸 아래의 곡선도가 약해지므로 또 다른 제3의 형식 정가와자식이 자연스럽게 분류된다. 정가와자식은 검몸 폭도 좁아진다. 또한 이 형식의 요령지방 출토 동검에는 앞선 형식에 드문 청동제 검자루맞추개가 있다. 따라서 비파형동검은 십이대영자식·쌍방식·정가와자식의 세 가지 형식으로 분류되게 된다.

 쌍방식은 지금까지 발견된 숫자가 10점이 채 안되는데, 요하 동쪽에서 압록강 이북에 걸치는 지역에만 분포한다. 이와는 달리 십이대영자식과 정가자와식은 요서지방에서부터 한반도 전지역에 걸쳐서 분포하고 있다. 한편 같은 십이대영자식이라 할지라도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확인되는 비파형동검은 자루를 삽입하는 슴베 부분 한쪽 측면에 홈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남한지방에서도 비파형동검은 정식 발굴조사된 유적의 지명을 따서 따로 松菊里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의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은 비교적 형식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될 뿐만 아니라 시간적 선후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많지 않으나 비파형에서 세형동검으로 이행하는 중간단계에 어느 쪽에도 소속시키기가 어려운 동검이 있다.

 중간형의 동검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검몸의 폭이 좁아지고, 돌기나 검몸 아래의 불룩함이 없이 밋밋한 형식이다. 요령성 윤가촌과 황해도 고산리에서 출토 된 동검이 대표적이며, 주로 요하유역과 한반도 서북한지방에 걸쳐서 분포한다.

 다른 형식은 검몸의 폭이 전반적으로 좁아졌으되, 검몸 아래의 폭이 윗 부분에 비해 갑자기 넓어진 것이다. 이 형식은 압록강 중류지방과 길림지방에 주로 분포하며 길림성 대청산과 五道嶺溝門 출토례가 대표적이다.

 세번째 형식은 전형적인 세형동검처럼 등대에 날이 있고 뚜렷한 절대를 갖고 있지만, 검몸 아래의 양측이 비파형동검처럼 곡선을 그리고 있다. 경기도 상자포리와 황해도 천곡리 및 전라북도 출토로 전해지는 동검이 대표적으로 한반도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그림 2>).0071)이들 세 가지 형식을 같은 범주에 넣기에는 기준되는 속성에 차이가 많다. 따라서 북한학자들이 모두 좁은놋단검의 초기형이라는 단일 하위형식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박진욱,≪조선고고학전서-고대편≫,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8). 즉 검몸이 밋밋한 尹家村式과 검몸 아래가 불룩한 大靑山式은 같은 형식으로 볼 수가 없다. 두 형식의 차이는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의 차이만큼 큰 것으로, 이것을 좁은놋단검으로 분류하고, 그 중 초기형이라고 하는 하위 형식에 같이 넣는 것은 분류상 문제가 있다.
또한 비파형의 최대 특징인 비파형 곡선이 없다는 점에서, 남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尹家村式을 비파형동검의 말기형이라 하여 비파형동검 범주에 넣는 것도 문제가 있다. 윤가촌식은 폭이 좁고 밋밋한 폭 좁은 놋단검 그 자체이다. 따라서 이를 비파형동검으로 분류하는 것은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의 二分論의 틀에 억지로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이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의 중간형으로 제시한 세 가지 형식 중 尹家村式·大靑山式은 중국의 林澐이 비파형동검 형식을 분류한 것 중 각각 B.C.식으로 분류한 것에 대응된다(林 澐,<中國東北系靑銅初論>,≪考古≫, 中國社會科學院, 1982-1). 또한 앞에서 보듯이 북한학자들이 초기 좁은놋단검이라고 분류한 동검에 상응한다. 이들 중국과 북한학자들이 나머지 上紫浦里式의 존재를 간과한 것은 遼寧과 서북한지방에만 관심을 두거나, 남한지방에 동단계의 동검문화의 발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李淸圭는 한반도 내지 남한에도 전형적인 세형동검 이전의 동단계에 세형동검 초기형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으며, 上紫浦里式을 포함한 앞서의 3형식 설정은 이를 고려한 결과이다(李淸圭,<細形銅劍의 形式分類와 그 變遷에 대하여>,≪韓國考古學報≫13, 1982,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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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세형동검 초기형식 ① 고산리식
<그림 2>세형동검 초기형식 ① 고산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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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세형동검 초기형식 ② 대청산식
<그림 2>세형동검 초기형식 ② 대청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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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세형동검 초기형식 ③ 상자포리식
<그림 2>세형동검 초기형식 ③ 상자포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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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 세 가지 형식은 결국 비파형동검에서 세형동검으로 발전하는 단계에 각 지역에서 나름대로 형성된 것으로, 앞서 보듯이 윤가촌식은 요령-서북한지방, 대청산식은 압록강-길림, 그리고 상자포리식은 청천강 이남의 한반도에 주로 분포하는 지역성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 가운데 상자포리식이 발전하여 검날 중간에 형성된 어임부와 등날 마디가 뚜렷한 전형적인 세형동검, 곧 한반도 출토의 한국식동검으로 되는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주요 무기로서 단검과 짝을 이루는 투겁창은 기본적으로 자루를 안으로 삽입하게 된 소켓식이다. 창몸의 형태를 보면 비파형을 이룬 것과 버들잎형을 이룬 것이 있는데, 비파형단검과 세트를 이루는 것은 주로 비파형이다.

 최근까지 비파형투겁창은 길림·장춘 지역에서 대부분 발견되어 그 지방에 특징적인 것으로 이해되었으나, 한반도에서도 거푸집과 함께 몇 사례가 발견되었으므로, 만주-한반도 전체에 공통된 청동기라 할 수 있겠다. 버들잎형의 창은 본래 중국식으로 길림과 한반도지역에 발견된 예가 있다.

 한반도 출토 창은 길이가 짧고, 자루끝에 구멍이 있는 형식과 길고 고리가 달린 형식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후자는 한반도 동남부지방에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그리고 후대로 가면 다음에 볼 한국식꺾창과 마찬가지로 더욱 길어지고, 창몸의 폭이 넓어지는 형식으로 변한다. 그러한 폭이 넓고 길어진 창은 낙동강유역과 일본 규슈(九州)지방에서 나타난다.

 자루에 검신이 직각으로 달리는 꺾창은 크게 두 가지 형식이 한반도-만주에서 발견된다. 하나는 중국식으로서 內·援·胡의 세 가닥으로 된 것이 특징이며 중국 요서지방에서부터 한반도 서북부지방에서 발견된다. 그 중 보다 이른 형식의 꺾창은 요서지방에서 발견된다. 청천강 이남의 한반도와 일본 규슈지방에서 발견되는 한국식꺾창은 내와 원만이 있는 것이다. 그 초기 것은 길이가 짧고 폭이 좁은 세형이지만 후기로 가면 점차 길어지고, 폭이 넓어진 형식으로 바뀐다. 이 후기 형식은 창과 마찬가지로 낙동강유역과 일본지방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된다.

 화살촉은 나래가 세 개인 것과 두 개인 형식이 있다. 세 나래 형식은 春秋時代 전기에 비로소 나타나는데 북방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며, 날개와 슴베, 그리고 등대에 많은 변화가 있다. 그 밖에 납작팔각형의 특수형도 있다. 대체로 만주-한반도에 걸쳐 나타나는 이들 화살촉은 아직까지 그 지역적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작은 칼은 자루끝에 동물장식이 있는 것과 고리가 달린 것이 있는데, 중국에서는 殷代에 동물장식이 있다가, 西周初에 오면서 고리달린 형식이 주종을 이룬다. 만주-한반도지역에서 발견되는 작은 칼 중에 동물장식이 있는 것은 대체로 요서지방에 분포하며 특히 요서지방의 赤峰을 중심으로 한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출토하고 있다. 요동지방에서는 몇 점되지 않지만 중국식의 고리 달린 작은 칼이 확인된다. 한반도와 길림지방에서 발견되는 몇 점은 그 형식이 애매하다.

 비파형동검과 공반하는 도끼 중 대표적인 것은 허리가 가늘고 날이 부채꼴 모양을 이루는 扇形銅斧로, 中原式銅斧와 차이가 난다. 그 중에는 소켓에 아무런 장식도 없는 것이 있지만, 기하학무늬나 2∼3중의 돌대무늬가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와 같은 선형동부는 요하서쪽에서부터 송화강유역 그리고 한반도에 이르기까지 넓게 분포한다. 선형동부의 거푸집은 길림·함경도 그리고 한반도 남부에서도 발견되며, 학자에 따라서는 선형동부를 날의 굽은 선과 도끼몸 상단의 무늬로서 2·3형식으로 구분하는데, 그 분포에 일정한 지역차이는 확인되지 않는다.

 청동도끼 중에 전형적인 세형동검과 공반하는 것으로 어깨가 있는 有肩銅斧가 있다. 이러한 청동도끼는 요령-길림지방에서는 확인되지 않고 한반도 청천강 이남지방에서 드문드문 확인되고 있다.

 대체로 의례용으로 제작 사용된 것으로 이해되는 청동 줄무늬거울은 뒷면 한가운데에 꼭지가 하나 달리고 무늬가 없는 單鈕素文式, 꼭지가 둘 이상 달리고 기하학무늬가 있는 多鈕幾何文式이 있는데, 다뉴형식 중에도 무늬가 없는 예가 가끔 출토한다. 단뉴소문식은 지금까지 요서지방에서 발견되었을 뿐이며, 다뉴기하문식은 서쪽 대릉하유역의 십이대영자로부터 시작해서 한반도 남단에까지 분포한다.

 그러나 다뉴기하문식 중에서 무늬가 보다 정교해지고, 테두리가 횡단면 반월형으로 정형화되는 잔줄무늬거울(細文鏡)은 지금까지 청천강 이남과 일본 규슈지방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세문경과 거친줄무늬거울(粗文鏡)과의 중간형식쯤 되는 粗細文鏡은 한반도는 물론, 요동과 연해주지방에서도 발견된 바 있다.

 장신구로서 표면이 고깔모양으로 볼록하고 뒷면에 꼭지가 붙어 있는 장식단추(銅泡)가 있는데, 어디에 부착하느냐에 따라 크기가 다르다. 요동지방의 심양 정가와자에서는 장화에 부착하였으며, 활집이나 옷 또는 말치레 장식으로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모양도 대체로 표면이 볼록한 원판형이다. 이러한 형식이 아주 늦은 시기에 낙동강유역의 영천 어은동에서 확인된 바 있다. 요서지방에만 발견되는 장식품으로서 연결고리·새·사람얼굴 모양 등의 장식이 있다.

 낙동강유역에서는 그 밖에 세형동검 늦은 시기에 동물을 모티프로 한 소형 장식이나 허리띠고리(帶鉤)나 검자루끝장식(劍把頭飾)에 오리모양을 한 것 등이 전한다. 이러한 동물형 조형품은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확인된 바 없다.

 한편 마구로 입에 물려 말을 제어하는 재갈과, 재갈과 고삐를 연결하는 재갈멈추개가 있다. 재갈은 마디수가 하나에서 셋까지 있는데, 각 마디끼리 그리고 재갈멈추개와 잇는 부분이 고리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이들 마구는 비파형동검 시기에는 요하지역에 출토례가 있을 뿐이며, 세형동검시기의 늦은 단계에 가서야 한반도의 서북한과 경상도지역에서 출토된다.

 심양 정가와자에서는 말 머리위를 장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나팔모양 청동기가 출토하였는데 이와 유사한 형식은 세형동검 이른 시기에 역시 남한의 금강유역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금강유역에서는 이 밖에 방패모양 청동기, 검자루모양 청동기 등의 특징적인 異形銅器가 출토되어 그 지역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 세형동검 시기에 특징적인 청동기로서 청동방울이 있다. 청동방울은 대체로 샤먼 혹은 제사장의 儀器로 추정되는 것으로 八珠鈴·二頭鈴·竿頭鈴 등 다양한 형태의 방울구로서 한반도 중에서도 금강 이남의 영산강과 낙동강유역에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청동방울은 세형동검 시기의 청동기가 일본에 전하여지는 것과는 달리 다만 남한지역에 한정하여 분포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살핀 청동기 이외에 제사용의 용기가 있다. 제기는 은과 주나라의 중심문화권에서 다량 발견되는 것으로 각 지방의 제후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하유역 중에서도 지금까지 거의 요서지방에서만 확인되었을 뿐이고,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발견된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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