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3권 청동기문화와 철기문화
  • Ⅰ. 청동기문화
  • 4. 주변지역 청동기문화의 비교
  • 2) 중국
  • (1) 청동거울을 통해 본 중국과의 관계

가. 중국 은주시대 청동거울의 특징

 중국 은주시대와 우리 나라 古朝鮮時代의 청동거울은 중국의 중원지구와 발해연안에서 각각 20여 면씩 출토되었다.0496)李亨求,<靑銅器文化의 비교 (Ⅰ)·(Ⅱ)>(≪韓國史論≫13, 國史編纂委員會, 1983), 401∼402쪽 黃河以北地區 渤海沿岸 初期靑銅과 殷商 및 殷末周初 靑銅器:初期銅鏡;動物紋樣分布圖 참조.

 은주시대의 청동거울로는 은대의 것이 5점, 은말 주초의 것이 2점, 주대의 것이 11점 발견되었는데0497)李亨求, 위의 글, 344∼402쪽. 이들에 대한 형식 및 장식상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형식상으로는 대체로 지름 6∼12.5㎝ 크기의 원형동판거울로, 거울면은 반짝거리며 윤이 나는 평면이거나, 볼록면 혹은 오목면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실제로 사용되었고 거울 뒷면의 중앙에는 몸에 걸 수 있도록 고리가 달려 있었다. 은주청동거울이 출토된 상황으로 볼 때, 이들 청동거울은 왕실이나 제후 등 지배계층의 권위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널리 사용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청동거울들은 형식상의 기본적 특징에서는 일치하고 있으나, 거울 뒷면에 무늬가 있고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둘째, 무늬장식상으로 은대에서는 기원전 14세기부터 기원전 13세기에 이미 기하무늬를 사용하고 있으나, 무늬가 없는 민무늬거울은 오히려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11세기 서주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특히 기하무늬동경이 기원전 14∼13세기경에 殷墟에서 출현된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은허 1005호묘(<그림 1>)와 婦好墓(<그림 2>)에서 출토된 幾何紋單鈕銅鏡의 기하무늬양식은 짧은 선을 대칭형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구성법은 발해연안 지구에서 유행하고 있는 幾何紋多鈕銅鏡의 기하무늬 구성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원전 12∼11세기경 齊家期에 제작된 7角星 기하문단뉴동경에서 보이는 별무늬와 기하무늬 구성도 역시 발해연안 지구의 기하문다뉴동경(<그림 3>)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양식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자주 비교하고 있는0498)江上波夫,<綏遠地方出土古銅鏡の二三に就いて>(≪考古學雜誌≫ 26-7, 東京;考古學會, 1936), 26∼27쪽.
金廷鶴 編,<多鈕幾何紋鏡の造形>(≪韓國の考古學≫, 東京;河出書房新社, 1972), 157쪽.
金良善,<多鈕幾何學紋鏡硏究抄>(≪梅山國學散稿≫, 崇田大, 1973), 78쪽.
‘綏遠式帶鉤’는 은대 청동거울보다 훨씬후인 기원전 5∼2세기경에야 비로소 유행한다. 따라서 기원전 14∼12세기경 은대 청동거울의 기하문 양식은 기원전 5∼2세기경의 綏遠式銅鏡보다 훨씬 앞선 양식으로 발해연안 청동거울의 기하무늬의 기원을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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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은허 1005호묘 기하문단뉴동경 실측도
<그림 1>은허 1005호묘 기하문단뉴동경 실측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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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은허 부호묘 출토 기하문단뉴동경
<그림 2>은허 부호묘 출토 기하문단뉴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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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靑海朶馬臺M25호 七星角 기하문단뉴동경
<그림 3>靑海朶馬臺M25호 七星角 기하문단뉴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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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은 및 서주시대의 여러 청동거울과 달리 虢國墓에서 출토된 서주 말 혹은 동주 초의 동물문쌍뉴동경은 거울 뒷면에 동물무늬와 함께 두 개의 고리를 주조하여 독특한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청동기의 장식으로 고리를 다는 경우는 일찍이 은대(기원전 14∼12세기)에서 널리 찾아 볼 수 있는데, 특히 기원전 14∼13세기의 부호묘0499)中國社會科學院 考古硏究所,≪殷墟婦好墓≫(北京;文物出版社, 1980).에서는 크고 작은 單鈕銅泡가 많이 출토된 바 있다. 은허 M20·M40·M202호 등 묘지에서 발견된 松綠石으로 상감한 수백 개의 7각·8각 별무늬 청동단추(<그림 5>) 및 은허 M20호에서 출토된 송록석으로 상감한 수 점의 동으로 만든 7각별무늬(단뉴)의 수레장식 등이다. 그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은허 M202호묘에서 발견된 송록석으로 상감한 雙鈕靑銅馬面具이다.0500)中央硏究院 歷史語言硏究所 編,≪小屯≫(1)(殷墟墓葬 1, 台北, 1970). 이러한 청동기들은 많은 학자들이 유일한 증거로 제시하고 있는 ‘시베리아-수원식’ 청동단추나 마면구보다도 무려 700∼500년 이상이나 앞선 것이다.0501)江上波夫,<綏遠靑銅器>(≪內蒙古長城地帶≫, 東京;東亞考古學會, 1935), 77쪽.
金良善, 앞의 글, 83쪽.
金廷鶴,<韓國民族의 源流>(≪第1回韓國史學會議講演抄≫, 國史編纂委員會, 1983), 5∼6쪽.
그러므로 발해연안에서 유행한 다뉴동경의 기원을 시베리아의 북방 초원문화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은대문화에서 유래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0502)李亨求,<渤海沿岸銅鏡與中國中原之間的關係>(≪渤海沿岸古代文化之硏究≫, 國立臺灣大 博士學位論文, 1987), 279∼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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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성천 출토 동경
<그림 4>성천 출토 동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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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은허 M202호 七角星紋 松綠石鑲嵌 銅泡
<그림 5>은허 M202호 七角星紋 松綠石鑲嵌 銅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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