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5권 삼국의 정치와 사회 Ⅰ-고구려
  • Ⅳ. 고구려의 정치·경제와 사회
  • 3. 경제구조
  • 3) 산업
  • (1) 농업

(1) 농업

 고구려의 주산업은 백제나 신라 나아가 중국과 같이 농업이었다. 국초에서부터 주거지역을 선정함에 있어서 ‘오곡 농사에 적당한 땅’이 문제되고 있으며645)≪三國史記≫권 13, 高句麗本紀 1, 유리명왕 21년 3월. 정착농업은 계속 확대·보급되는 추세였다.

 국초에 농업은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데 충분치 않은 수준이었다.≪삼국지≫동이전을 위시한 고구려 전반기의 사정을 전하는 중국의 사서류들을 보면 고구려의 식량사정이 충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농업의 발전과 대동강 및 한강유역 등 넓은 농업지대를 점차 확보해 가면서 식량문제는 해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농사는 논농사보다는 주로 밭농사를 지었다. 산간지방이 많았던 만큼 밭농사가 더욱 활발하게 되었을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따라서 밭농사의 산물인 조(좁쌀)가 세금을 내는 주곡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만주나 한반도의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널리 재배되고 있던 콩농사가 행해졌을 것도 물론이다.

 논농사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였다. 특히 4세기초 낙랑군과 대방군이 차지하고 있던 평양일대나 황해도지역을 차지하게 되면서 논농사의 비중이 증대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백제의 수도였던 한강유역을 장악하면서부터 논농사의 비중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이리하여 벼가 점차 널리 재배되면서 귀족들은 물론 일반민들도 드물게 쌀을 먹을 수 있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농민들의 다수는 자신의 소규모 농토를 갖고 대대로 농업에 종사하였다. 그런데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한편 다른 사람의 농사에 품을 팔아 생활에 보태기도 하였다. 고국천왕 16년(194) 왕이 사냥길에 나섰다가 만난, 길에 앉아 울고 있던 사람은 ‘자신이 가난하여 늘 남에게 품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646)≪三國史記≫권 16, 高句麗本紀 4, 고국천왕 16년 10월. 소수의 귀족들은 노비나 자신에게 투탁한 농민들을 이용하여 대규모의 토지를 경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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