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7권 고대의 정치와 사회 Ⅲ-신라·가야
  • Ⅵ. 가야의 성립
  • 2. 가야의 건국 설화
  •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2) 대가야국 이진아시왕 신화

 대가야 이진아시왕 신화는 내용이 매우 간단하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伽倻山神 正見母主가 천신 夷毗訶之에게 감응되어 大伽倻王 惱窒朱日과 金官國王 惱窒靑裔 두 사람을 낳았다. 뇌질주일은 伊珍阿豉王의 별칭이고, 청예는 수로왕의 별칭이다.

 위에서 신화의 전체적인 구조는 천신과 지모신의 결합에 의한 출생 신화로 되어 있어서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신화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서 난생의 요소는 보이지 않으나, 이는<釋利貞傳>이라는 전기의 성격상 계보만 간략하게 소개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고령 良田洞 암각화 소재지의 지명이「알터」라든지, 또는 정견모주가 알을 두 개 낳아 하나는 머물러 두고 하나는 낙동강 하류로 흘려 보냈다는 민간전승이 있는 것에서도 난생 요소가 원래 있었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대가야 시조신화의 특징으로 가야산신 정견모주의 강조를 들 수 있다. 즉 천신 이비가지가 나오기는 하나 수로왕 신화와 달리 降臨의 여부가 분명치 않고 단순한 感應에 그치고 있고, 그보다 가야산신의 권위가 선행된다는 점에서 삼한시대 이래 고령지방의 토착 재지세력이 중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釋順應傳>에 대가야국 月光太子를 ‘이비가지의 10세손’이 아닌 ‘정견의 10세손’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그 점은 다시 확인된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고령과 김해 양 지역 신화 사이의 관계인데, 대가야국과 금관국(가락국)은 둘 다 그 국명을「大加耶」·「加羅」또는「大駕洛」·「加耶」라고 칭하고 있으니, 이는 주변지역 전체의 소국연맹 즉 가야연맹에서 그 둘이 연맹장직을 맡았던 경험이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둘이 동시에 가야지역을 둘로 나누어 분할통치한 것인지 아니면 전체지역을 번갈아 통치하였는지가 문제가 된다.

 대가야 신화의 내용은 대가야국 시조 이진아시왕과 금관국 수로왕은 형제관계로 되어 있으며,≪삼국사기≫樂志에 전하는 대가야 악사인 于勒의 12曲에「上加羅都」와 「下加羅都」의 이름이 있다. 이것을 보면 상하 가야연맹에 의한 분할 통치의 형태를 상정할 수도 있으나, 이는 대가야측의 통치 명분이었을 뿐일 수도 있다.

 혹자는 대가야국이 금관국보다 앞서 가야연맹의 연맹장직을 맡았다고 보기도 하였으나711)李丙燾, 위의 책, 311쪽.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명의 사용 기간을 따져 보아야 하는데,<석이정전>의 기록을 통해서 고령이 대가야국이었을 때 김해는 금관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가락국기≫를 통해서는 김해가 가락국 또는 대가락국이었을 때 고령의 국명은 알 수 없다. 그런데≪삼국사기≫김유신전 서두에는 수로가 개국하여 이름을 가야라고 하였는데 뒤에 금관국으로 고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들을 연결지어 보면 초기에 김해가 가야국일 때 고령은 변경의 약소한 세력이었고, 뒤에 고령이 대가야가 되었을 때 김해는 금관국의 명칭을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가야지역에서 발굴 조사된 유적들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상황을 정리해 볼 때 4세기 이전 토광목곽묘 계통 분묘의 규모와 부장품의 양은 김해지역의 것이 가장 크고 많으며, 당시의 고령지역의 것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반면에 5세기 이후 수혈식 석곽묘 계통 고총고분에서는 고령지역의 것이 가장 크고, 당시의 김해지역의 것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결과가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일단 그 추세를 인정할 수 있다면, 이를 신화연구 결과에 대비해 볼 때 초기에는 김해의 가야국이 연맹장이었고 후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국이 연맹장이었으며, 고령과 김해의 대등한 형태의 상하 가야연맹은 있을 수 없다고 하겠다.

 김해세력이 고령세력보다 먼저 연맹장직을 맡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진아시왕이 수로왕의 형이라고 한 것은 대가야 시조신화가 고령 중심의 후기 상황만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진아시왕 신화는 가야연맹의 패권이 김해 금관국에서 고령 대가야국으로 옮겨 간 이후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결국 가야지역 연맹장 교체의 이념이 종래의 시조신화에 부가되어 변형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金泰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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