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Ⅱ. 불교와 도교
  • 1. 불교
  • 2) 백제의 불교
  • (1) 불교의 전래

(1) 불교의 전래

 백제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때는 沈流王 원년(384)이다. 胡僧 摩羅難陀가 東晉에서 오자 왕이 그를 맞이하여 궁전에 모시고 예의를 갖추어 경배하였다. 이보다 2개월 전에 백제는 동진에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는데, 마라난타는 백제로 오는 사신과 함께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일본서기≫推古紀 32년(624)조에 실린 백제승 觀勒의 上表文에, “佛法이 백제에 이른 지 겨우 백 년이 되었을 때, 우리 왕께서 일본 천황의 현명함을 듣고 불상 및 內典을 바친 지 아직 백 년이 되지 않았습니다.”라는 기사가 있다. 이 기사를 근거로 첫째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해는 524년이라는 설이 있다.

 둘째 위 사료를 백제에 불법이 전해진 지 백년이 지나 다시 일본에 전해진 기간을 말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이 경우≪일본서기≫에 의하면 일본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해는 552년이므로,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해는 452년이 된다. 문장상으로 보면 두번째 주장이 더 타당해 보이지만, 한국측 기록과 많은 차이가 난다. 이러한 주장들은 침류왕 원년 이후 聖王 19년(541)에 이르기까지 백제불교에 관한 기사가 전혀 없고, 漢山城(지금의 서울) 주변에 당시의 불교유적이 발견되지 않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내세운다.065)末松保和,<新羅佛敎傳來傳說考>(≪新羅史の諸問題≫, 東洋文庫, 1954), 209∼221쪽.
李弘稙,<日本에 傳授된 百濟文化>(≪韓國思想≫9, 1968), 123쪽.
田村圓澄,<百濟佛敎傳來考>(≪白初洪淳昶博士還曆紀念 史學論叢≫, 大丘史學會, 1977), 104∼105쪽.
田村圓澄,<百濟佛敎史序說>(≪百濟文化と飛鳥文化≫, 吉川弘文館, 1978), 311쪽.
鎌田茂雄,<朝鮮三國の佛敎>(≪日本古代史講座≫4, 1980), 179쪽.

 침류왕 원년설을 부정하는 시각은 애초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가 일본보다 그렇게 빠를 수는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서 출발하였기 때문에 사료에 대하여 무리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당시 백제와 동진 사이의 교류를 참작하고, 침류왕 원년설을 부정할 만한 적극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는 한 침류왕대 전래설은 여전히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066)平野邦雄,<古新羅の對外交涉に關する覺書>(≪九州大學硏究報告≫9, 1961), 6쪽.
中井眞孝,<佛敎の傳來と朝鮮三國>(≪東洋學硏究≫18-2, 1979), 22쪽.
鎌田茂雄,≪朝鮮佛敎史≫(東京大學, 1987), 18쪽.
그런데 근년에 漢城時代의 불교를 입증해주는 유물이 속속 나오고 있어, 침류왕대 전래설에 대해서는 달리 의심의 여지가 없다.067)500년대에 불교가 백제에 전해졌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글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李基白,<百濟佛敎 受容年代의 검토>(≪震檀學報≫71·72, 1991).
신종원,<불교사상과 제반문화>(≪한국사≫4, 한길사, 1994), 268쪽.
신종원,<백제 불교미술의 사상적 배경>(≪백제의 조각과 미술≫, 公州大, 1991), 56쪽.
즉 400년경에 만들어진 금동불상이 서울 뚝섬에서 나온 바 있으며,068)金元龍,<纛島出土 金銅佛像>(≪歷史敎育≫5, 1961). 이 밖에도 서울 몽촌토성에서는 연꽃무늬 瓦當 등이 출토된069)金元龍 외,≪夢村土城-東北地區發掘報告≫(서울大 博物館, 1987), 70∼72쪽.
金元龍 외,≪夢村土城-東南地區發掘調査報告≫(서울大 博物館, 1988), 404쪽.
바와 같이, 앞으로 한성시대 사찰 기와의 출토 가능성은 매우 크다.070)龜田修一,<百濟漢城時代の瓦に關する覺書-石村洞4號墳出土例を中心として->
(≪尹武炳博士回甲紀念論叢≫, 通川文化社, 1984).

 한편 더욱 이른 시기에 불교가 백제에 전해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즉 중국 江南이나 동남아시아 또는 인도에서 직접 바닷길을 따라 3세기경에는불교가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특히 海路를 통한 불교전래는 후대에 兼益이 인도에 求法하러 간 사실을 하나의 證左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적극적 시각은 고구려의 경우에도 적용되어, 天山山脈 北側 北道를 따라 2세기 후반부터 3세기초에 걸쳐 불교가 고구려에 전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071)鎌田茂雄,≪新羅佛敎史序說≫(東京大, 1988), 16∼18쪽. 이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종교의 전래를 단지 왕실간의 교류방식에 의한 것으로 보는 제한된 안목에서가 아니라 보다 넓은 시각에서 이를 다루어야 할 것임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의 근거를 가지지 못하고 추측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072)申東河,<삼국시대 불교사 연구의 현황과 반성>(≪同大論叢≫19, 同德女大, 1989), 179쪽.는 것이다.

 침류왕은 재위 2년 2월에 漢山에 절을 짓고 열 사람을 승려로 만들었다. 이것은 불교가 전해진 지 불과 반 년만의 일로,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에 절을 짓고 백제인을 불교에 귀의시키고 성직자까지 배출했다는 것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므로 침류왕 시대 이전에 이미 백제에 불교가 전해졌던 것이며, 위의 初傳 기록은 公傳에 불과할 것이라는 견해는073)睦楨培, 앞의 책, 39∼40쪽. 설득력이 있다.

 처음 백제에 전해진 불교사상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주는 자료는 없다. 그렇지만 당시 동진에서 유행한 불교가 격의불교였으므로 아마도 이러한 성격의 불교가 전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도 있겠으나, 초창기에 그와 같은 고답적 불교가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해동고승전≫에서는 마라난타를 평하여 ‘神異感通’하다고 하였듯이, 이즈음 백제불교의 성격은 오히려 신이적이었다고 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초기 불교사상이 초보적인 因果應報·勸善徵惡的이었듯이, 이즈음의 백제불교도 그러한 성격이 있었을 것임을074)金東華,<百濟時代의 佛敎思想>(≪亞細亞硏究≫5-1, 1962), 64쪽.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판단은 阿莘王 원년(392)의 下敎 즉 “佛法을 받들고 믿어 복을 구하라”고 한 데서도 확인된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