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편 한국사
  • 고대
  • 08권 삼국의 문화
  • Ⅳ. 문학과 예술
  • 5. 공예
  • 1) 금속공예
  • (1) 금속공예의 종류

(1) 금속공예의 종류

 금속은 일찍부터 그 색채나 광택을 이용하여 각종의 장신구나 裝飾金具가 만들어지고, 종교·신앙관계 供養具나 法要器들이 제작되었으며, 硬度와 재생이 가능한 점을 이용하여 甲冑·무기·利器 등이 제작되었다. 열에 대한 耐性과 傳導性을 이용한 각종의 加熱 용기가 제작되었으며, 소리의 울림을 활용하여 鍾이나 방울이 만들어졌다. 용해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鑄造의 기법이 응용되고 合金도 자유롭게 하였다. 또 늘어나는 성질로 鍛造技法이 응용되었으며, 외면의 장식에는 線彫·透彫·象嵌기법이 쓰여지고 鍍金·鍍銀기법도 활용되었다.

 삼국시대의 금속 공예품을 보면 장신구로서는 금관·冠飾 허리띠 및 腰佩·귀걸이·목걸이·팔찌·반지·방울 등이 있으며, 각종의 그릇·거울(銅鏡)·거울걸이(鏡架)·바늘통(針筒)이나 바늘·자물쇠 등이 있다. 또 불상·사리장엄구·經板·梵鍾 등 불교 공예품이 있으며 장식금구로는 무기나 利器의 장식, 의복의 장식, 棺장식, 생활용품과 그 장식 등이 성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양이나 기법은 광범위하여 재생하여 활용한 것을 감안한다면 현재 남아 전하는 유물로 추산하더라도 그 양은 방대할 것이다.

 특히 신라·백제에서 금제품의 출토 예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기록에도 金製 공예에 관한 부분이 보이고 있다.≪三國史記≫에 백제·고구려·신라 모두에게 일본에서 황금을 진상했다는 기사가 보이고, 遣唐使가 금제의 문물을 가져갔다는 기사가 보인다. 또 百濟本紀 古爾王 28년(261)條에는 복식을 설명하면서 烏羅冠을 金花로 장식한다고 하였는데, 무령왕릉 출토 금제관식으로 그것이 입증되었다.

 신라에서는 왕의 하사품에 황금과 金銀器를 쓰고 있으며, 逸聖尼師今條에는 민간에서의 금은 珠玉의 제작·사용을 금한다는 기사도 보인다. 황룡사의 丈六佛 주조에 도금용으로 금을 1만1백9십8푼을 썼다는 기사도 나온다. 또≪三國遺事≫의 塔像條의 舍利 관계 기사를 보면 사리함에는 순금을 썼다든지,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금은을 제한 또는 금했다는 기사가 있는 것을 보면 상당히 즐겨 사용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출토 유물 가운데 대표적인 고구려의 유물로는 大同郡에서 출토된 금제 귀걸이, 大城山 고분군에서 출토된 귀걸이, 深貴里 고분 출토의 귀걸이 등이 알려져 있다. 藥水里 고분에서 출토한 細環耳飾이 가야계 형식과 비슷하고, 대동군의 평양출토 太環耳飾은 신라계 형식과 비슷하다. 동명왕릉 부근의 유적에서도 각종의 花形 금제장식 금구가 출토되고 있다. 한편 도금기술은 매우 발달하여 馬具·飾履·棺 장식·冠飾·불상 등에서 뛰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백제의 유물로는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일괄유물의 관식·태환이식·세환이식·뒤꽂이·목걸이·팔찌·곡옥의 장식모(冠帽)·의복이나 棺 장식 등이 있다. 관식이나 장식 금구는 金板을 透刻하여 步搖를 매달고, 귀걸이에는 정교한 누금세공기법이 보인다. 또 금제 뒤꽂이는 打出기법의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그 밖에도 곡옥을 감싼 金帽 장식에 細線과 細粒으로 누금하였고, 팔찌·목걸이 등은 7마디 혹은 9마디로 엮어서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 준다.

 한편 일본 石上(이소노가미)神宮에 보관 중인 백제 七支刀는 백제왕이 倭王에게 보낸 것으로 鐵劍 양면에 금으로 상감한 명문이 새겨져 금의 이용과 당시의 상감기법을 잘 대변하고 있다.

 가야의 유물에서도 목걸이·팔찌·반지 등에 금이 이용된다. 신라의 유물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단순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며, 馬具·器皿 등에서는 뛰어난 도금기법도 짐작케 한다.

 신라의 유물은 금제품으로 대표될 만큼 금제의 유물이 많은 종류에 걸쳐 보이고 있다. 寶冠·冠飾·귀걸이(太環耳飾, 細環耳飾)·銙帶·腰佩·팔찌·반지·방울·장식 寶劍 이외에도 장식 금구나 금제의 용기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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