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韓의 한 작은 국가로 출발한 백제는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갖춘 4세기 무렵까지 마한사회의 농경문화와 관련된 가무전통을 거의 그대로 전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백제 초기의 음악문화는 마한에서 봄·가을에 풍성한 농사일을 위해 하늘에 빌던 제천의식에서의 노래와 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4세기 무렵부터 왕권확립에 따른 국가체제 및 인접국가와의 문화교류에 의해서 백제의 음악문화는 새 발전단계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것은 중국문헌과 고고학자료에 의해서 확인되는 바이다.

　≪隋書≫와≪北史≫에 보이는 백제악기와 癸酉銘阿彌陀佛三尊石像 및 金銅龍鳳逢萊山香爐에 나타나는 백제악기들이 왕권 중심의 귀족사회와 백제사회에서 전개된 음악문화를 입증해주고 있다. 다음은≪수서≫및≪북사≫에 전하는 기록이다.

⑦ 백제 … 鼓·角·箜篌·箏·竽·篪·笛 같은 악기들이 있다(≪隋書≫권 81, 列傳 46, 東夷, 百濟 및≪北史≫권 94, 列傳 82, 百濟).

　6세기 무렵에 사용되었을 ⑦의 일곱 가지 백제악기 중에서 공후·쟁·지·적 이상 4종은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음악을 대표하는 수나라 九部伎 중 淸商樂의 악기들과 일치한다.⁶²⁹⁾.≪隋書≫ 권 15, 志 10, 音樂 下, 淸樂. 청상악은 宋의 武帝(420∼422)가 關中을 평정한 후에 얻은 남조음악이므로, 고구려가 북조의 영향을 받았듯이 백제음악은 남조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남조음악의 영향을 받은 ⑦의 백제악기들은 주로 궁중음악의 연주에서 사용되었을 뿐이고, 궁중 밖의 백제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북사≫나≪수서≫에 전하는 백제악기들이 고고학자료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백제사회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리라고 추정되는 악기들은 阮咸·거문고(玄琴)·長簫·북(鼓)·排簫가 있는데,⁶³⁰⁾백제악기에 대한 상론은≪서울신문≫1994년 1월 28일자＜百濟를 다시 본다：5人 奏樂像은≪日本後紀≫기록과 일치＞참조. 이러한 백제악기들은 1993년말 부여 능산리에서 출토된 백제향로(7세기경)에 나타난다. 이 5종의 백제악기 중에서 완함·거문고·장소는 모두가 연대적으로 앞선 고구려의 고분벽화에서 확인되므로, 고구려에서 백제로 전래된 악기로 해석되며, 따라서 그 고고학자료는 삼국시대의 백제음악이 고구려음악의 영향을 받았음을 입증해주는 증거의 하나이다.

　이 5종의 백제악기 이외에 비파가 碑巖寺의 石像에서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⁶³¹⁾李弘稙,＜韓國 古代樂器 圖像 過眼錄＞(≪李惠求博士頌壽記念 音樂學論叢≫, 韓國國樂學會, 1969), 169∼202쪽 도판 23(癸酉銘阿彌陀佛三尊石像).
宋芳松, 앞의 책(1985), 사진 33(碑巖寺 石像). 완함은 백제사회에서 더 이상 연주되지 않았고 나중에 琵琶로 대치되었던 듯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거문고의 원형과 비슷한 백제의 거문고는 후에 일본에 군후라는 명칭으로 알려졌지만, 끝까지 전승되지 못했다. 지금의 洞簫처럼 생긴 장소와 팬파이프(panpipe) 모양의 배소는 모두 비암사의 석상에도 보이는 점으로 보아서 백제사회에서 널리 연주된 관악기였다. 백제향로의 북은 땅바닥에 놓고 연주하는 특이한 연주형태의 타악기인데, 그 북은 완함·거문고·장소·배소로 구성된 관현합주의 리듬을 제공했을 것이다.

　≪고려사≫악지에 전하는 禪雲山·無等山·方等山·井邑·智異山은 모두 백제속악의 명칭 아래 소개됐는데,⁶³²⁾≪高麗史≫ 권 71, 志 25, 樂 2, 三國俗樂, 百濟. 신라의 東京이나 長漢城 및 고구려의 來遠城이나 延陽처럼 모두가 백제인의 희로애락을 담은 그 지역 민요의 일종으로 생각된다.

　요컨대 마한의 전통을 이은 백제는 고구려 다음으로 음악문화를 한반도에서 꽃피웠다. 백제의 음악문화는 크게 보아 두 갈래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성장됐는데, 하나는 중국 남조음악의 영향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구려 음악문화의 영향이었다. 백제인들은 마한의 음악전통을 근거로 외래음악을 자주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에 독특한 백제악을 일본궁중에 전해줄 수 있었는데, 이 점은 뒤에서 상론될 것이다.